photo 제페토 캡처

A씨는 딸의 스마트폰에서 딸이 직접 찍은 성기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A씨의 딸은 메타버스 앱 ‘제페토’에서 만난 한 캐릭터가 아이템을 사줄 테니 성기 사진을 보내달라고 해서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이를 나무라는 A씨에게 딸은 “얼굴이 드러난 것도 아니고 무엇이 문제냐”고 대답했다고 한다.

메타버스가 디지털 성범죄의 새로운 플랫폼이 될 수 있다는 경고는 계속해서 흘러나온다. 메타버스의 주 이용층이 10대라는 점에서다. 닐슨코리아가 지난해 1월 앱 이용자를 연령별로 분석해본 결과, 제페토 이용자 중 나이가 7~12세인 이용자는 50.4%, 13~18세인 이용자는 20.6%였다. 제페토보다 이용률이 높은 메타버스 게임 로블록스도 비슷한 분포를 보여, 7~12세 이용자가 49.4%, 13~18세 이용자가 12.9%를 차지했다.

메타버스 이용자의 절대다수가 10대라는 점은 메타버스가 성범죄에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상당수가 10대이기 때문이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발표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보고서’를 보면 2018년부터 4년간 디지털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 중 연령이 확인된 수는 8136명이다. 이 중 38.3%인 3117명이 10대 피해자였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10대 청소년을 상대로 벌어지는 디지털 성범죄는 10대의 미성숙한 인식과 부족한 상황인지능력을 이용한 것이다. 메타버스에서도 다른 디지털 플랫폼과 마찬가지로 A씨의 딸처럼 보상을 미끼로 성착취물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유포·협박을 하기도 한다. 또는 그루밍(길들이기)도 종종 일어나는데, 디지털 플랫폼에서 대화를 통해 친분을 쌓아나가다가 성범죄에 이르게 되는 과정이다.

실제로 지난 4월 약 1년간 아동·청소년 11명을 대상으로 성착취물을 제작한 혐의로 30대 남성이 구속되기도 했다. 이 남성은 제페토에서 거래되는 아이템을 미끼로 피해자들을 유인해 성착취물을 받아내는 등의 수법을 썼다.

메타버스에서는 이에 더해 아바타끼리의 성범죄도 일어난다. 아바타에게 특정 자세를 취하게 해서 성행위 묘사를 하게 했다는 피해 사례도 보고된 바 있다. 그러나 이런 새로운 유형의 성범죄에 대해서는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다.

지난 6월 15일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디지털 성범죄 대응 4법’은 대안이 될 만하다. 법안에는 메타버스 아바타를 향한 성적 괴롭힘을 제재하는 내용도 포함돼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법안이 통과되기까지는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신민영 변호사(법무법인 예현)는 “아무리 법이 사회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한다 해도 간극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결국 환경과 인식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짚었다.

“구석에서 뽀뽀나 하자” 성희롱도

기자는 한동안 메타버스 앱 제페토에 13세 여학생 신상으로 가입해 캐릭터를 꾸며 활동해봤다. 대부분의 활동은 가상공간에서 산발적인 대화를 나누는 데 그쳤지만 종종 위험한 순간이 있었다. 멋들어진 양복을 입은 한 이용자는 기자에게 몇 살이냐고 묻더니 곧바로 일대일 음성대화를 요청했다. 자신은 ‘오빠’라며 말을 걸었다.

혹은 갑자기 “구석에서 뽀뽀나 하자”고 대뜸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닉네임으로 해둔 여자 중학생에게 계속해서 음성으로 대화를 이어나가던 남자 직장인도 있었다. “이름이 예쁘다”는 등 추파를 던지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다른 이용자들은 대화에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이것은 메타버스 플랫폼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이용자들이 메타버스 플랫폼을 소셜미디어처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5년 동안 1만회 이상 성교육을 실시해 온 성교육 전문기관 ‘자주스쿨’의 이석원 대표는 “중·고등학생들은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요즘 초등학생들은 메타버스를 소통의 도구로 사용한다”고 증언했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새로운 친구들을 못 만난 아이들은 메타버스 같은 가상의 플랫폼에서 관계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킨다.

그래서 메타버스 같은 새로운 디지털 플랫폼에서 일어나는 성범죄에 대해 제대로 알고 대응하려면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자주스쿨 김민영 대표의 설명이다. 양육자는 물론 정책입안자부터 행정기관까지 메타버스에 대한 리터러시(지식과 정보를 획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를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양육자의 예를 들면, 요즘 메타버스 성범죄가 심각하다고 하니 아이가 메타버스에서 노는 걸 보고 ‘이런 걸 왜 하느냐’고 나무라기만 하는 분도 있어요. 아이를 통제하려고만 하지 아이가 그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왜 하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양육자들이 있어요.”

이런 경우 아이는 메타버스에서 일어나는 일을 양육자에게 숨기게 된다. 일어날 수 있는 성범죄 피해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은 물론, 피해를 당했을 때 피해 사실을 알리고 적절한 대처를 받을 수 있는 환경까지 없애게 된다.

“N번방 사건도 그렇고, 메타버스 성범죄 피해 사례도 그렇고, 굉장히 많은 피해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문제가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부모에게 알린다’ ‘학교에 유포한다’는 협박이 정말 유효합니다. 그만큼 아이들이 양육자와 기관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것입니다.”

김민영 대표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아동·청소년에 대한 신뢰와 플랫폼에 대한 리터러시를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 감수성을 기르고 판단력 등 인지 능력을 키우는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리터러시와 성교육이 핵심

여기서 성교육이란 단순히 성에 대한 지식을 주입하는 교육이 아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구별하는 판단력과 분별력을 키우는 것이 성교육이다. 김민영 대표와 이석원 대표는 이를 ‘성 메타인지’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이 메타인지 능력은 아이들만 길러서는 되는 일이 아닙니다. 모든 양육자, 성인들이 갖추어야 하는 능력이죠. 그러니까 메타버스 성교육이라는 것은 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라 성인에게도 필요한 것입니다.”

김민영 대표의 말처럼 디지털 성범죄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제도적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인식의 변화, 피해자를 위한 지원 체계 같은 것이 모두 갖추어져야 하는 일이다.

메타버스 성범죄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 온 정희진 탁틴내일 아동청소년성폭력상담소 팀장도 같은 맥락에서 양육자에 대한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과 피해자 지원 컨트롤타워 정립을 주장했다. “디지털 성범죄가 일어났을 때 적극적으로 피해를 신고할 수 있고 기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불어 “양육자와 교육 관계자를 위한 성평등 교육과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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