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용인시에 사는 김모(26)씨는 지난 22일 오전 10시쯤 서울 관악구 남부순환로에서 불법 좌회전하는 택시를 목격했다. 몇시간 후 김씨는 차량 블랙박스 속 SD카드(저장장치)를 뽑아 노트북에 꽂은 뒤, 녹화 영상을 다운로드했다. PC로 ‘스마트 국민제보’ 웹사이트에 접속했다. 위반 사항과 날짜 등을 입력하고, 1분짜리 영상까지 첨부하는데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이틀 후인 24일 경찰에서 김씨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왔다.
김씨는 “명백한 잘못인 걸 알면서 당당하게 법을 어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행위를 반복하는 사람에겐 금융치료가 답”이라며 “신고하는데 10분도 안 걸리는데 안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신고, 폰으로 5분이면 끝
현재 교통법 위반 신고는 경찰청 ‘스마트국민제보’, 국민권익위원회 ‘국민신문고’, 행정안전부 ‘안전신문고’ 등에서 가능하다. 세 곳 모두 웹사이트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앱으로도 할 수 있다. 신고 절차와 시간을 알아보기 위해 기자가 직접 신고해봤다.
경찰청 ‘스마트국민제보’ 앱을 사용했다. 이 앱은 올해 상반기(6월 30일 오후 2시 기준)에만 148만여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교통법규 위반 신고의 경우 첫 화면에서 신고 유형을 선택한다. ‘교통위반’, ‘보복운전’ 등이 있다. 이중 하나를 클릭하면 ‘경고 처분 기준 알림’이 뜬다. 신고일자가 위반일로부터 7일이 지난 경우, 위험을 발생시키지 않는 경미한 위반인 경우는 경고 처분만 하겠다는 일종의 사전 설명이다.
알림을 닫으면 본격 접수가 시작된다. 위반 현장이 담긴 동영상 또는 사진이 필요하다. 직접 촬영하거나 스마트폰에 저장된 영상, 사진이면 된다. 이어 ‘신호위반’, ‘중앙선침범’ 등 위반 항목을 선택하고, 발생 장소·일시를 입력한다. 신고 내용과 차량 번호를 적고, 화면 하단에 있는 ‘신고’를 클릭하면 끝이다.
회원 가입에 필요한 시간을 제외하고, 기자는 신고 완료까지 약 5분이 걸렸다. 증거 영상이 스마트폰에 있었고, 발생 장소와 시간을 기억해뒀기 때문에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물론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하지 않다면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
◇신고 웹·앱, 고성능 카메라의 등장
경찰청에 따르면, 도로교통법 위반 신고는 2015년 49만6475건에서 2018년 104만281건, 2021년 290만7254건으로 늘었다. 3년마다 2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올해는 300만건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신고가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는 가장 큰 이유를 ‘IT 발달’로 본다.
과거에는 증거자료를 들고 경찰서 민원실 등을 직접 찾아야 신고가 가능했다. 지난 2005년 각종 민원을 통합해 관리하는 국민신문고 웹사이트가 생겼고, 2012년에는 앱도 출시됐지만 교통법 위반 신고는 별도 분류 없이 단순 민원으로 처리됐고, 증거 불충분으로 처벌이 안 되는 일이 잦았다. 경찰은 “2015년 ‘스마트 국민제보’ 웹사이트와 앱이 운영되면서 신고가 활성화됐다”고 한다.
고성능 카메라와 고화질 블랙박스 확산도 주요 원인이다. 교통법 위반 사례 ‘증거’로 쓰려면, 사진이나 영상에 위반 차량 번호판이 식별 가능할 정도로 선명하게 찍힌 상태에서, 위반 순간이 담겨야 한다. 발생 장소와 시간도 정확해야 한다.
경찰 관계자는 “과거에도 교통법 위반 신고가 있었지만, 요건을 엄격하게 따지다 보면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고화질 영상이 증거자료로 활용되고, 신고 웹사이트와 앱이 운영되는 등 신고가 쉬워지면서 건수가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통법규 위반 신고, 교정 효과는?
경기도 안양시에 사는 변모(44)씨는 매주 일요일 집 근처 교회에 불법 주·정차하는 자동차를 신고하고 있다. 나름대로 ‘기준’도 있다. 차량 번호를 기록했다, 2주 연속 주차 위반을 할 경우 신고한다. “이런 식으로 신고를 하니 3주 연속 불법 주차하는 차량이 사라졌다”는 게 변씨의 말이다.
‘한문철TV’ 라이브 방송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소개됐다. 신고자 A씨는 출근길에 반복적으로 신호 위반을 하는 차량을 발견, 두 차례에 걸쳐 신고했다. 며칠 뒤 A씨는 경찰로부터 운전자에게 7만원 범칙금이 두 번 부과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후 A씨는 또다시 출근길에 해당 차량을 목격하는데, 차량은 평소와 다르게 신호를 잘 지키고 있다. A씨는 영상에서 “이야, 대단하네”라며 연이어 감탄했다.
◇보복·감시... 신고가 신고를 낳는다
신고를 하는 이들은 ‘행동 교정 효과’가 분명히 있다고 하지만,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있다. 도로 곳곳에 과속 단속 장치와 CCTV가 달려있고, 여기에 개인의 스마트폰, 차량 블랙박스까지 더해지면 사실상 24시간 ‘감시(監視)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신고가 활성화된 이후 운전자들은 ‘언제 어디서 신고를 당할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도로교통법을 보다 잘 지키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신고 당한 이가 ‘보복 신고’를 하고, 사소한 신고가 늘어나는 등 남발(濫發) 우려가 있다”고 했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신고가 교통 환경을 개선하고, 단속의 빈자리를 채우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있지만 시민들이 ‘파파라치’가 돼 서로를 감시하고, 신고를 반복하는 상황은 경찰 국가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