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백선엽 장군 제2주기 추모식이 열린 8일 오전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적기념비에서 백장군의 딸,백남희 여사가 추념사를 하고 있다. 행사가 열린 다부동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대공세를 저지하고 반격의 발판을 제공한 결정적인 전투로 북한군에선 2만 5000여 명 , 국군에선 1만여 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김동환 기자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과 한미동맹을 지켜달라는 아버님 유언은 여러분이 지켜주고 계십니다.”

8일 경북 칠곡 다부동 전적기념관에서 열린 고(故) 백선엽(1920~2020)장군 2주기 추모 행사에서 큰딸 백남희(73)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이같이 말했다. 백씨는 “아버님은 6·25 전쟁 중 받은 훈장과 첫 4성장군 명예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분들과 국민의 것이라고 하셨다”며 장군을 회고했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8월 백선엽 장군이 지휘한 육군 1사단은 칠곡 다부동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며 낙동강 전선 방어에 성공했다. 이듬해 4월 칠곡 주민들은 ‘대한민국 제1사단장 육군준장 백선엽 호국구민비’를 세워 장군의 공적을 기렸다. 지난 2020년 7월 10일 서거 전까지도 백 장군은 꾸준히 칠곡군을 찾아 호국 정신과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설파했고 이곳을 장지(葬地)로 고려했을만큼, 칠곡군과 장군의 인연은 깊다.

이날 한미동맹재단 등이 주최한 추모식에서 백 장군의 유가족과 전우·후배 등은 “굳건한 한미동맹을 지켜내자”고 입을 모았다. 비가 내리고 더운 날씨에도 백남희씨, 이종섭 국방부장관, 폴 러캐머라 한미연합사령관을 비롯해 180여 명이 추모식에 참석해 백 장군을 기렸다.

백씨는 “아버님이 (유해를 묻기 전)국립서울현충원에서 전우들을 만나고 평택 미군부대를 찾아 한미동맹을 다짐할 기회를 달라고 (유언에서)부탁하셨지만, 정치적 이유로 눈치를 보는 주변 사람들의 강력한 반대로 부탁을 못 들어드린게 후회스럽다”면서도 “아버님 유언인 조국 수호와 한미동맹 강화를 함께 해주시는 분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고 백선엽 장군 제2주기 추모식이 열린 8일 오전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적기념비에서 (왼쪽부터)폴 러캐머라 한미연합사령관,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참석하고 있다. /김동환 기자

이종섭 국방부장관 역시 “오늘 우리는 조국 수호의 영웅이자 한미동맹 상징인 백선엽장군을 기리기 위해 왔다”면서 “한미동맹의 정신적 뿌리인 장군님의 헌신 덕에 한미동맹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모범적인 동맹으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또 “북한이 지속적 미사일 도발과 핵실험 준비를 하고 있지만, 북이 도발할수록 한미동맹은 더욱 굳건해질 것”이라고 했다.

폴 러캐머라 한미연합사령관도 “2년전 우리 한미동맹은 진정한 지도자이자 애국자(백 장군)에게 마지막 인사를 올렸다”며 “군인의 길은 명예롭지만 외롭고, 그렇기에 우리는 동맹을 굳건히 해 평화를 지켜야한다”고 했다.

지난해 추모식에서 국가보훈처와 육군은 각각 국가보훈처장과 육군참모총장의 참석없이 화환으로 추도를 대신했다. 하지만 올해는 박민식 국가보훈처장과 박정환 육군참모총장이 직접 칠곡을 찾아 백 장군을 추도했다. 박 처장은 이날 추도사에서 “한미동맹 가치가 굳건해질 수 있도록, 제복 입은 영웅들이 존중받는 나라가 될 수 있도록 보훈 체계를 확실히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시대에 따라 영웅이 되고 안되는 일은 없어야한다”면서 “내년엔 백선엽 장군 동상을 다부동 전적기념관에 모셔 동상 앞에서 추모식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백 장군은 32세이던 1952년 최연소로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됐고, 이듬해 1월 우리 군 최초 4성 장군이 됐다. 1959년 합참의장을 지냈고, 이듬해 예편했다. 지난 2020년 7월 10일 향년 100세로 타계해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고 백선엽 장군 제2주기 추모식이 열린 8일 오전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적기념비에서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김동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