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4일 전남 나주시의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KENTEC·켄텍). 한국전력공사에서 주도적으로 설립해 ‘한전공대’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지만, 재학생들은 학교를 ‘켄텍’이라고 부른다. 지난 여름학기 수업을 듣기 위해 본관 건물을 찾은 1학년 학생 A(19)씨는 본관에 임시로 지어진 도서관이 좀 아쉽다고 했다.
“아직은 도서관에 빈 책장이 좀 많은 것 같아요. 오늘 에너지행동경제학 관련 책을 빌리려고 했는데 다 한 권씩밖에 없고 거의 다 대출 중이네요.”
지난 3월 2일 개교 전까지 본관 건물 한 동밖에 건물을 짓지 못한 켄텍은 본관에 226㎡ 넓이로 도서관을 임시로 조성했다. 소장된 장서 중 에너지·전기공학 관련 책은 ‘에너지경제학’ ‘글로벌 그린 뉴딜’ ‘2050 에너지레볼루션’ 등을 비롯해 15권 정도밖에 없다. 도서관은 여타 강의실동·연구동을 비롯해 2025년까지 건축이 완료될 예정이다.
수업이 끝난 학생들은 기숙사 및 생활관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야 한다. 걸어서 20분 정도 소요된다. 기숙사는 부영그룹의 골프장 리조트를 리모델링한 건물이고, 학생식당과 모임 공간이 있는 ‘테슬라 생활관’ 역시 골프장 클럽하우스를 거의 그대로 활용했다. 뙤약볕 아래 공사장 가림막으로 겨우 가려놓은 길을 A씨는 거의 매일 오간다고 했다. 본관에서 생활관까지를 오가는 셔틀버스가 있긴 하지만, 학생들 수요에 맞춰서 운행되기 때문에 배차 간격이 넓다고 한다. A씨는 “아직은 학교에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하긴 하지만 그래도 좋은 점도 많다고 생각해서 여기 왔다. 에너지 신소재랑 전력 반도체를 전공할 수 있는 곳은 전국에 여기밖에 없지 않나”라며 “다만 내년에 후배들을 좀 많이 뽑아서 학교가 좀 복작복작해졌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지난 3월 2일 문을 연 켄텍은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다. 세계 유일의 에너지 분야 특화대학을 표방하며 2050년까지 에너지 분야 세계 10위권 대학으로 올라선다는 중장기 목표가 있지만, 당장 연구시설과 강의실 등을 마저 짓고 연구 인력을 확충하는 게 먼저다. 지금은 본관에 마련된 강의실 4개, 컴퓨터 등이 마련된 실습실 1개, 연구 스튜디오 2개가 강의시설의 전부다. 전공 교육과정도 아직 미완이다. 켄텍은 개교 당시 △에너지 AI △에너지 신소재 △수소에너지 △기후변화·환경 △에너지 그리드 등 총 5가지 연구분야로 설계된 교육과정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개교 한 달이 채 안 된 지난 3월 말에도 ‘원전 관련 교과과정을 포함하고 교수진을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원전까지 종합적으로 포함된 교과과정은 아직 수립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계적 수준의 에너지 연구 대학’이라는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막대한 자금 지원과 투자를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이다.
켄텍 발전 계획 차질 불가피
이런 가운데 켄텍 설립을 주도한 한전이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대규모 적자를 기록해 켄텍 발전 계획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전은 2019년부터 2031년(개교 후 10년)까지 대학 최종 설립에 필요한 자금 1조471억원을 주도적으로 지원하기로 되어 있다. 이 중 1670억원에 달하는 부지는 부영주택이 나주시에 도시계획 변경안을 요청하는 대가로 무상 제공했고, 2591억원은 향후 대학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감안해 정부, 지자체와 민간 투자 유치분을 고려해 상정한 금액이다. 이 경우 한전은 총 6210억원을 지원해야 하는데, 향후 투자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경우 부담 금액은 8801억원까지 늘어난다.
최근 급격히 재무구조가 악화한 한전에서 이 금액을 온전히 지원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최근 고유가 등으로 한전은 그야말로 ‘역대급’ 적자를 기록했는데, 올해 적자 규모가 최대 30조원에 달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는 5조8601억원의 영업적자가 났고 올해는 1~3월에만 7조7869억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에너지정책학과)는 “한전은 지금 돈이 너무 없어서 전기를 외상으로 사오는 상황이다. 회사채를 발행해서 돈이 들어오면 구매 대금을 지급하고 있다”며 “개발도상국에서나 벌어지는 일이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한전은 지난 6월 27일 오는 7월부터 전기요금을 kWh당 5원씩 올리기로 결정했다. 한전이 ‘버티느냐 마느냐’를 논해야 할 만큼 심각한 상황인데, 비수익성 사업인 에너지공과대학에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하기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어처구니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유 교수는 “인적 자원에 투자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의미는 있지만, 그만큼 적자를 보면서 (대학에) 돈을 또 쓴다는 건 일반 민간기업 같으면 생각도 못 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인재는 다 뽑았는데…
켄텍은 무상 등록금, 기숙사 생활비 지원과 장학금 혜택 등 파격적인 지원을 내걸고 우수한 학업 인재를 대거 끌어들였다. 2022년 신입생 모집 당시 정시 경쟁률이 95.3대 1에 달했다. 이때 에너지공학 단일학부 학부생 108명, 대학원생 49명을 최종적으로 뽑았는데 학부생 수시모집에만 2000명이 몰린 것으로 드러났다. 신입생 중에는 서울 연세대, 한국과기대 등 대학에 동시 합격했지만 켄텍을 택했다는 합격자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에너지 전문가가 되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갖고 켄텍을 선택한 학생들이 모인 만큼, 학생들이 학교에 요구하는 교육 수준도 높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15일, 개교 후 보름 정도 지나고 기자가 캠퍼스를 찾았을 때 만난 학생들 역시 자부심과 전공 공부에 대한 열의가 느껴졌다. 학교 로고가 새겨진 점퍼를 입고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생활관으로 들어온 한 여학생은 “국내 유일 에너지 전문대학에서 공부하러 왔다는 자부심을 느낀다”며 “소규모 토론식으로 수업이 진행되는 점도 좋고 교수님과 다른 학교보다 일대일로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다는 점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한전과 정부 지원금이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이 같은 고품질의 교육을 흔들림 없이 이어가기 위한 켄텍만의 재정적 자구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치적 의지로 밀어붙인 대가
켄텍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 아래 세워졌다. 문 전 대통령은 2017년 대선 공약으로 한전공대 설립을 내세우고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설립 목표를 반영했다. 2019년 한전은 이사회에서 ‘한전공대 설립 기본계획’을 의결하고 착공에 들어갔는데, 대다수 시설이 2025년 완공되는 계획이었음에도 2022년 3월 문 전 대통령이 퇴임하기 직전 문을 열었다. 이처럼 계획 수립부터 개교까지 빠르게 추진할 수 있었던것은 정부와 민주당의 ‘입법 독주’ 덕분이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020년 전기사업법 시행령을 일부 개정해 전력산업기반기금의 일부를 한전공대 비용으로 전용할 수 있도록 했다. 전력산업기반기금은 전체 전기료의 3.7%를 떼 조성하는 기금인데, 전 국민이 낸 전기료 일부를 한전공대 설립·운영 비용에 보탤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만든 것이다. 민주당은 특별법을 강행 처리해 2022년 한전공대 개교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원래 대학 설립 규정에 따르면 개교 1년 전까지 교지와 교사를 확보해야 대학을 개교할 수 있다. 그러나 켄텍은 민주당이 단독으로 통과시킨 특별법으로 1년 전이 아닌 개교일 전까지로 부지 확보 기간이 늘어났다. 해당 법안은 당시 국민의힘 의원들이 법사위에서 퇴장한 채 밤에 가결됐다.
이렇게 강력한 정치적 의지 아래 세워졌기 때문에 켄텍은 정권이 바뀌면서 지원금이 줄어들 위기에 처했다. 매년 500억원에 달하는 대학 운영비를 충당하려면 정부 지원금이 필수적인데, 윤석열 정부에서 의지를 가지고 켄텍을 도와줄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개교 이후 운영비는 전라남도, 나주시에서 10년간 각각 1000억원, 정부에서 전력산업기반기금을 활용해 지자체만큼(약 2000억원) 조달하고, 나머지 부족분은 한전이 메우는 방향으로 조성한다는 게 원 계획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아직 정부의 지원금 계획이 구체화하지 않은 가운데 정부 지원금이 줄어들면, 매년 500억원에 달하는 운영비를 한전과 지자체가 짊어지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재정 자립도가 낮은 나주시와 전남도에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에너지 인재 양성’ 성공하려면
전문가들은 ‘에너지 인적자원에 투자’한다는 점에서 켄텍의 설립 목적에는 공감하지만, 입지 선정과 인재 양성 방향 등에 있어 보다 신중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의 전기학과 등에서 비슷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 무엇보다 인근에 있는 광주과학기술원과 켄텍의 역할이 중복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켄텍이 결국 광주과학기술원과 합쳐지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계속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어떻게 보면 광주과학기술원을 확대·개편하고 강화하는 게 맞지 않았을까 하는 문제 제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대통령) 공약이기도 했고 해당 지역에서 하나 더 만드는 걸 원했기 때문에 그대로 간 측면이 있다. 이전에도 한창 정보통신이 뜰 무렵 민영화되기 전의 KT가 주도적으로 설립한 대전 ICU(한국정보통신대학교)도 결국 카이스트와 통합되지 않았나. 지역 통합 차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광주와 나주에 비슷한 대학이 있는 게) 비효율적인 방식이긴 하다.”(서울과기대 유승훈 교수)
뒤늦게라도 교과과정에 추가된 원자력 연구를 비롯해 융합 에너지 인재를 양성하는 방향으로 교육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종배 건국대학교 전기공학부 교수는 “수소, 신재생, 원자력발전 등을 비롯해 에너지 전반에 대한 흐름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아무리 신재생을 전문으로 한다고 해도 전체를 모르고 그것만 공부하면 (시야가) 왜곡될 수도 있다”며 “전력사업에서는 이렇게 전 분야를 폭넓게 이해하는 융합형 인재, ‘T자형 인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