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 여성인 직장인 전모(29)씨는 최근 난자 냉동 시술을 받았다. 그는 서울의 한 산부인과를 찾아 약 300만원을 주고 4개의 난자를 채취한 뒤 동결했다. 난자 냉동 시술은 과배란 유도 주사를 통해 나온 여러 개의 난자를 채취해 영하 약 196도의 액체 질소에 얼려 두는 것이다. 한번 시술을 받는 데 약 300만~400만원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전씨는 과거 세 차례 ‘난소 기형종’ 제거 수술을 받은 전력이 있다. 그런 탓인지 몇 년 전 정기검진에서 실제 나이는 20대이지만 난소의 건강 상태는 40세 수준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원래 아이를 여럿 갖는 게 꿈이었던 그는 불안한 마음에 난자 냉동 시술을 알아봤다고 한다. 전씨는 “취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이나 출산 계획이 당장은 없는데 나이가 더 들면 아이를 갖는 게 힘들어질까봐 건강한 난자 15개 정도를 모아두는 게 목표”라고 했다.

최근 미혼 여성들 사이에서 난자 냉동 시술을 받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결혼이나 출산 연령이 점점 늦어지고, “결혼을 하는 것은 고민이 되지만 아이는 갖고 싶다”는 여성들이 늘어난 사회적 변화가 반영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초혼 나이는 여성의 경우 2011년 29.1세에서 작년 31.1세로 점점 높아지고 있다. 같은 기간 남성은 31.9세에서 33.4세가 됐다.

의료계에 따르면 여성은 200만~300만개의 난자를 가지고 태어나는데, 평생에 걸쳐 배란 등을 하며 이 난자를 사용한다. 계속 생성되는 남성의 정자와는 달리 난자는 여성이 나이가 들면서 함께 노화의 과정을 겪게 된다. 이런 점 때문에 건강한 난자를 보관해 두기 위해 시술을 받는다. 과거에는 여성 암 환자들이 건강한 난자를 보관해두려고 이런 시술을 받았지만 이제는 건강한 20~30대 미혼 여성들 사이에서도 확산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25)씨도 최근 난자 냉동 시술을 받을까 고민 중이다. 김씨는 현재 결혼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언젠가 아이는 꼭 낳고 싶다고 했다. 그는 “몇년 뒤 ‘나이를 먹어서 출산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걱정하며 떠밀리듯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아서 난자 냉동 시술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산부인과 등에서 집계하는 시술 건수도 증가세다. 차병원에 따르면, 미혼 여성의 난자 냉동 시술 건수는 2015년 72건에서 2021년 1194건까지 늘었다. 다른 병원도 비슷하다. 난임치료 등을 하는 서울마리아병원 관계자는 “(난자 냉동 시술 횟수가) 2015년 13건이었는데 작년 연간 300건 이상이 됐다”고 말했다. 산부인과 사랑아이여성의원 관계자도 “매년 30% 이상 난자 냉동에 대한 상담을 받거나, 시술을 진행하는 미혼 여성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20~30대 미혼 여성들은 난자 냉동 시술을 일종의 ‘보험’처럼 여긴다. 결혼 연령이 점점 더 늦춰지고 있는 만큼, 나중을 대비해 건강한 난자를 보존해두겠다는 것이다. 다만 건강보험이 따로 적용되지 않아 한번 시술을 받는 데 수백만원의 비용이 드는 것은 고민거리라고 한다. 경기도 과천시에 사는 직장인 김모(30)씨는 “결혼을 했다가 경력이 끊길까봐 걱정이라 지금은 별 계획이 없지만 앞으로 인생이 어떻게 변해갈지 몰라서 난자 냉동 시술을 받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최근 방송인 장도연, 안영미, 이지혜 등 난자 냉동 시술을 받았다고 알리는 여성 방송인들이 나오면서 이 시술이 대중에게 친숙해지고 있는 것도 젊은 여성들이 이 시술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고 있다. 걸그룹 클레오 출신 가수 채은정은 지난해 11월 자신의 시술 과정을 유튜브에 공개했고, 방송인 사유리도 냉동시킨 난자에 정자를 기증 받아 아들을 낳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