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오후 5시쯤 서울 도봉구 방학동의 한 공부방에 모인 할미팬들이 덕질을 하기 위해 스마트폰 공부를 하고 있다. /박지영 인턴기자

“열심히 스밍(스트리밍) 돌려야 순위가 올라간대요.” “우리 호중이 1위 시켜주고 싶어요.”

TV조선 ‘미스터트롯’ 출신 김호중의 새 앨범이 발표되던 지난 27일 저녁, 서울 도봉구 방학동 한 공부방엔 그를 응원하려는 팬 20명이 스마트폰 여러대와 태블릿 PC 등을 들고 모였다. 좋아하는 가수가 새 앨범을 발표하는 날, 팬들은 신곡을 음원 사이트 1위로 만들기 위해 ‘스트리밍(실시간 재생)’을 돌린다. 이날 함께 ‘스밍’하러 모인 이들은 10대 아이들이 아니었다. 뽀글 파마를 한 ‘할미팬’들이다.

이날 만난 자칭 ‘할미팬’들은 “’덕질’을 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공부한다”고 했다. 한 팬은 “스트리밍, 온라인 투표, 공동구매를 위해서는 스마트폰 사용에 능숙해야 하는데, 우리는 조작조차 어려워 일종의 스마트폰 스터디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연순(72)씨는 “우리 호중이 도와주고 싶은데 손은 마음만큼 안 따라주고, 집에만 있으면 죽도 밥도 안될 것 같았다”며 “이곳에서 같은 할머니 팬들에게 배워 열심히 스트리밍을 돌리려고 한 걸음에 달려왔다”고 했다.

공부방 한 가운데 놓은 책상에는 ‘음원 사이트 따라잡기’라는 표지가 붙은 얇은 안내서가 놓여있었다. 책을 들춰보니 ‘음원 사이트 열기’, ‘하단 오른쪽 돋보기 클릭’, ‘맨 위 검색창에 가수 이름 입력’ ‘자판 속 돋보기 클릭’ 등 음원 사이트 스밍법을 16단계로 세세하게 적어뒀다. 스밍 방법을 잘 모르는 ‘할미팬’들을 위해 한 팬이 만들어 비치한 것이다.

서울시 도봉구에 사는 박옥연(왼쪽)씨가 27일 다른 할미팬에게 스마트폰 사용법을 배우고 있다. /박지영 인턴기자

공부방도 한 할미팬이 덕질을 위해 공부방으로 제공한 것이다. 임대업을 하는 박옥연(77)씨는 지난 5월 공부방으로 꾸미기 위해 이곳을 매입했다. 다른 할미팬들도 돈을 보탰다. 공부방 벽마다 ‘사랑하는 별님을 응원해요!’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와 김호중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10년 전 남편과 사별했다는 박씨는 “항상 공허하고 불안했는데 덕분에 하루하루가 행복해졌다”며 “다른 할머니팬들도 여기와서 편하게 공부하라고 공간을 마련한 것”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만난 할미팬들은 스마트폰이 덕질을 가로막는 장벽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전옥화(73)씨는 “스트리밍 돌리는 것보다 돈 내는 것이 더 쉽다”며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주고 싶은데 스마트폰을 모르니까 답답해서 요즘은 복지관에서 스마트폰 활용 수업도 듣고 있다”고 했다.

비교적 젊은 홍은숙(62)씨가 이곳에선 선생님이다. 홍씨는 “다른 할미팬들에게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려주니 함께 덕질할 맛이 난다”고 했다. 또다른 할미팬 손기옥(73)씨는 “처음에는 스마트폰이 두려워서 신주단지 모시듯 모셔놨지만 덕질을 위해 공부하다 보니, 이제는 모임을 나가면 친구들이 30대 같다고 부러워 한다”고 했다. 손씨는 “팬 활동을 한 덕분에 배달앱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키오스크도 두렵지 않다”며 “세상 살기가 너무 편해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