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서울 동작구 남성사계시장에 폭우로 피해를 입은 상인들이 복구 작업을 하며 생긴 폐기물이 쌓여 있다. 2022.8.9/뉴스1

“밤새 꼼짝없이 당했어요.”

9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진흥아파트 상가에서 만난 오모(62)씨는 허망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오씨가 운영하는 부동산 내부에는 지난 밤 차오른 빗물이 아직도 고여있었고, 밀려든 흙찌꺼기로 바닥은 아수라장이었다. 오씨는 “어젯밤 7시에 퇴근했는데 오늘 새벽에 와보니 발목 위 20cm 높이까지 물이 차있었다”며 “선풍기와 냉장고도 모두 침수돼 혼자 계속 물을 퍼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서울 강남 일대에서는 전날 밤 시간당 100mm 이상의 ‘기습적 물폭탄’이 휩쓸고 간 흔적이 속속 드러났다. 상점과 아파트 단지에서는 침수·정전으로 인한 피해가 속출했다.

9일 오전 서울 관악구 신대방역 1번출구 인근 보도블럭이 폭우로 인해 파손 돼 관계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2022.08.09./뉴시스

이날 오전 진흥아파트 상가에서는 오씨를 비롯한 상인 너덧명이 매장 내부에 고인 물을 퍼내고 있었다. 상가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40대 A씨는 “상가 앞 사거리는 지대가 낮아서 우리 가게를 포함해 대부분이 침수됐다”며 “건물 지하주차장도 침수되는 바람에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상태”라고 했다. 약국을 운영하는B(37)씨도 “젖은 물품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건물 전체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언제 영업을 재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이번주 내내 폭우가 쏟아진다고 해 가게 입구에 둑을 쌓는 등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했다.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진흥아파트 상가 인근 한 카페에서 전날 폭우로 인해 밀려들어온 흙 찌꺼기가 바닥에 쌓여있다/김제완 인턴기자

지난 밤 차량 치붕까지 잠길 정도로 침수가 심각했던 강남역 주변 상점가의 피해도 심각했다. 강남역 인근 한 편의점은 매장 바닥에 빗물이 고여있었고, 쓰러진 진열대 옆으로 과자봉지와 물품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점주 박모(37)씨는 “가게를 정리하느라 잠을 거의 못잤다”며 매장 입구에 쌓인 쓰레기들을 연신 쓸어냈다.

8일 오후 내린 폭우로 인해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인근 도로가 침수돼 차량들이 운행을 멈춘 채 떠다니고 있다/인스타그램

강남 일대 아파트에서도 밤사이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일부 동에서 8일 오후10시부터 이날 오전 10시까지 12시간 이상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지하실이 완전히 침수되면서 전기 설비 작동이 멈춘 것이다. 입주민 송모(53)씨는 “정전 때문에 냉장고에 있는 물건들이 다 녹았고, 전자레인지도 쓸 수 없어 편의점 김밥을 사먹었다”고 했다. 은마아파트 경비원은 “물을 다 퍼낸다고 해도 전기가 다시 작동하려면 설비가 말라야하는데, 오늘 또 비가온다니 걱정”이라고 했다. 대치동 미도아파트도 같은 이유로 8일 밤 11시부터 4개 동이 정전됐다. 이 중 2개 동은 이날 오전까지 엘리베이터조차 작동하지 않는 상태였다. 입주민 권모(37)씨는 “전쟁을 겪은 것처럼 일상생활이 마비됐다”며 “복구가 늦어질 것 같은데, 아이들이 있어서 어떻게든 임시 거처를 구해 피난을 가려고 한다”고 했다.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반포자이 아파트 지하주차장 입구에 전날 침수됐던 차량이 창문이 열린 채 방치되어있다/김지원 기자

전날 차량 지붕만 보일 정도로 침수 상황이 심각했던 서초구 반포자이 지하주차장에는 창문이 열린 승용차와 캠핑카·버스 서너대가 흙 찌꺼기에 뒤덮인 채 입구에 방치돼있었다. 주정차 금지 지역인 지하주차장 출입로에는 침수를 피하기 위해 대피시킨 고급 외제 차량 30~40여대가 줄지어 놓여있었다. 입주민 강기용(76)씨는 “10년 넘게 여기 살았는데 이런 피해는 처음 본다”며 “고속터미널이 가까운 동은 지대가 약한 편이라 물난리가 난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