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DB

얼마 전 소셜미디어에서 이른바 ‘#예약곤란점’으로 유명한 오마카세 식당 예약에 성공한 회사원 고모(29)씨. 정작 방문 당일 그는 식당에서 문전박대를 당했다. “일행이 간판 없는 가게를 찾느라 골목을 헤매는 바람에 딱 12분 늦었는데, 원칙에 따라 ‘노쇼’ 처리했으니 나가라는 거예요. 미리 걸었던 예약금 5만원도 돌려받지 못했죠.”

차가웠던 식당 주인은 이튿날 가게 인스타그램 계정에 고씨를 겨냥한 듯 이런 게시물을 올렸다. ‘1인 셰프가 운영하는 업장입니다. 시간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분에 한해 신중하게 예약해주세요!!’ 문장 말미에는 두 손을 정중하게 모은 이른바 ‘합장 이모티콘’(이하 합장티콘)이 세 개 달려있었다.

고씨는 “10분 지나면 예약이 자동 취소되는 식당 룰을 어긴 내 잘못도 크지만, 고작 2분 차이에 고압적인 태도로 나가라고 해서 속상했다”며 “그 후 SNS에서 ‘합장티콘 당부 글’만 보면 화가 난다”고 했다.

합장(合掌): 두 손바닥을 합하여 마음이 한결같음을 나타냄. 또는 그런 예법. 본디 인도의 예법으로, 보통 두 손바닥과 열 손가락을 합한다.
표준국어대사전

최근 2030 소비자들 사이에서 합장티콘이 분노를 유발하는 새로운 밈(meme·유행 콘텐츠)으로 떠오르고 있다. ‘합장 포즈’는 그동안 뮤지션 지디(GD) 등 유명인들의 ‘쿨한 인사법’으로 애용됐지만, 요즘 소셜미디어에선 ‘불친절한 상인’을 풍자하는 용도로 쓰이는 중이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혜성처럼 나타난 꼴보기 싫은 이모지’ ‘요즘 인스타 팔이피플 필수 이모티콘’이라며 합장티콘을 성토하는 게시물이 넘쳐나고 있다.

뮤지션 지디가 지난 5월 인천국제공항 출국길에 취재진을 향해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합장' 인사를 하고 있다. /OSEN

◇밉상이 된 합장티콘

‘가격 문의 주실 때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주세요. (합장티콘)’

‘DM(다이렉트 메시지) 문의하실 때 예쁜 인사 부탁드려요. 저는 대답만하는 로봇이 아닙니다. (합장티콘)’

합장티콘은 음식점·헬스장·카페·쇼핑몰 등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손님에게 ‘거절’과 ‘당부’의 메시지를 전할 때 자주 사용하는 기호다. 업체에선 격식과 정중함의 표현으로 두 손을 모으는 이모티콘을 쓰지만, 정작 받아들이는 소비자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식의 강요와 명령으로 느껴져 불편하다는 반응이다.

합장 이모티콘을 사용한 가상의 인스타그램 대화 예시. /한경진 기자

그러니까 합장티콘의 밉상화는 거창하게 말하면 쇼핑·서비스업의 디지털 대전환기에 ‘판매자-소비자 간 온라인 직접 소통’이 급증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ICT 강국이자 동방예의지국인 한국에서 손님과의 팽팽한 긴장 관계를 ‘합장’으로 승화시키려던 주인의 시도가 오히려 ‘환장’을 유발하면서 탄생한 밈인 것이다.

합장티콘 밈과 비슷한 사례로 ‘헬스 트레이너 예의 논쟁’이 있다. 과거 한 헬스 트레이너가 ‘다짜고짜 연락해서 PT 가격부터 물어보는 분은 돈 주셔도 안 받는다. 기본 예의 매너 지켜달라’고 인스타그램 계정에 공지한 내용이 확산하며 온라인 상에서 큰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다. 소셜미디어가 없었다면 커지지 않았을 소동이다.

기업 위기관리 전문가인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는 “이제 기업은 물론이고 골목 소상공인도 SNS를 통해 ‘공적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는 시대”라며 “비즈니스 계정을 통한 소통은 사적 대화가 아니라 많은 공중이 지켜보고 있는 연극 속 ‘방백(傍白)’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인스타그램 DM으로 얘기한다고 해도, 그건 특정 불만 고객과의 일대일 대화가 아니라 관중이 지켜볼 수 있는 무대입니다. 평소 다른 업장이 어떤 SNS 운영 방식으로 칭찬·비판 받는지 케이스를 분석해 소통 감각을 키워야 합니다.”

인스타그램에 따르면 매달 전세계 1억3000만명이 인스타 쇼핑 콘텐츠를 클릭하고, 전체 이용자 중 90%가 하나 이상의 비즈니스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다. 블로그 마켓 등 소셜 채널에서 활동하는 국내 세포 마켓도 15조원 규모(2020년 기준)로 팽창한 상태다. 소비자는 이마트 냉동식품 맛이 변했다고 느끼면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인스타그램을 찾아가 언제든 댓글을 남길 수 있으며, 변두리 작은 커피숍 주인도 ‘소셜 감성’을 파고 들어 수십만 팔로워를 거느리는 대박 상인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소셜미디어가 B2C(Business to Consumer) 시장의 판도를 뒤흔드는 요즘, ‘세상 친절한 합장티콘’이 ‘고압적 서비스 제공자’를 상징한다는 사실은 무척 흥미롭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합장티콘 밈에 대해 “불쾌한 쇼핑 경험을 겪은 일부 소비자들이 애먼 이모티콘에 과도한 해석을 덧붙이면서, 아무 잘못 없는 포즈가 희화화되고 있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