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화물연대 하이트진로 지부 소속 노조원들이 16일 오전 6시쯤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하이트진로 본사에 기습적으로 진입해 점거 농성을 시작했다. 이들은 지난 6월 파업을 시작한 후 이달 초까지 하이트진로의 충북 청주와 경기 이천, 강원 홍천 공장을 봉쇄하려 하거나 공장에서 제품을 싣고 나오는 차량 통행을 방해해왔다. 경찰은 지난 4일 강원 홍천 공장 앞 통행로를 막고 불법 시위를 하던 노조원들에 대한 강제 해산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그 후 13일 만에 본사 점거를 한 것이다.
특히 이날 본사 건물에 들어온 노조원 중 일부는 인화 물질인 시너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9층짜리 하이트진로 본사 건물은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 데다 평소 직원 등 250명 안팎이 머무는 곳이다. 경찰 안팎에서는 자신들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일반 직원 등까지 큰 위험에 노출시키는 노조 측 파업 행태에 엄정한 법 집행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 등에 따르면 화물연대 조합원 70여 명은 이날 오전 6시 10분쯤 경비원의 제지를 뿌리치고 정문을 통해 본사 건물로 들어왔다. 일부는 하이트진로 직원들이 출근할 수 없도록 건물 정문 앞을 몸으로 막고, 10여 명은 옥상으로 올라가 농성을 시작했다. 옥상에서 건물 외벽에 ‘손배 가압류 철회’ ‘해고철회 전원복직’ 문구가 적힌 대형 현수막도 걸었다. 경찰은 신고를 받고 현장에 기동대 240여 명을 투입했고, 서울 강남소방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본사 앞에 큰 에어 매트를 설치했다. 하이트진로 측은 “사업장에 대한 불법 점거는 있어서는 안 된다”며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 역시 “사측의 고소·고발이 들어오는 즉시 수사에 착수해, 불법행위에 대해 엄정하게 대처할 계획”이라고 했다.
화물연대 노조원들은 지난 6월 초부터 운임료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한 후 하이트진로 공장 등에서 불법 집회를 벌여왔다. 노조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회사가 협상에 적극 나서지 않으면 16개 지역본부를 동원해 하이트진로와 관계된 5개 공장에 불시에 가서 집회를 할 것”이라며 “하이트진로가 작년 17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올린 만큼 조합원의 요구는 과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16일 오전 6시 10분쯤 강남구 청담동 하이트진로 본사 사옥. 정문을 지키고 있던 경비원이 잠시 건물 밖으로 나간 틈을 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화물연대 소속 조합원 수십 명이 건물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당시 CCTV 등을 보면 일부 조합원은 이들을 제지하려는 경비원의 팔과 목을 붙잡고 한쪽으로 밀어붙였다. 건물 안으로 진입한 노조원들 일부는 곧바로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농성을 시작했다. 나머지는 1층 로비를 차지한 채 정문을 막아서며 직원들도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오전 8시 40분쯤 노조 측은 직원 출입은 허용했지만 이날 밤까지 점거를 계속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인화 물질인 시너도 건물 안으로 반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화물연대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시너를 들고 올라간 이유는 홍천 농성 당시 경찰이 진압하는 것을 보고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라며 “이번에도 경찰이 밀어닥치면, 시너를 사용해서 우리를 방어하는 동시에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해 가지고 올라간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시너가 건물 안에 들어왔다는 것을 직원들도 알고 있어 무섭다고 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다”고 전했다.
하이트진로에 대한 화물연대의 불법 행위는 2개월 이상 이어지고 있다. 하이트진로 경기 이천 공장과 충북 청주 공장에서 운송 업무를 맡은 계열사 ‘수양물류’ 소속 화물차주 132명이 지난 3월 화물연대에 가입했다. 그 뒤 6월부터 파업이 시작되며 운송 방해 등 불법행위가 잇따르는 중이다. 조합원들은 유가 상승 등을 감안해 운송료 30% 인상, 공병 운임 인상, 공회전 비용과 차량 광고비 지급 등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지난 7월 22~23일에는 하이트진로 소주 생산량의 70%를 담당하는 이천·청주 공장 앞에서, 지난 2일부터 4일까지는 강원 홍천 공장에서 각각 소주나 맥주 등 제품을 실은 차량 통행을 막았다. 특히 2일 강원 공장에서는 공장으로 통하는 유일한 통행로인 다리 위 차로를 점거한 후, 다리에 매달리는 방식의 시위도 벌였다. 경찰이 출동해 이들을 강제 해산했는데, 몇몇 조합원은 이 과정에서 실제 12m 아래 강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법원이 화물연대 측 조합원들의 행위에 대해 수차례 불법이라고 판단했지만, 화물연대 측은 이날 또 본사 점거를 시작하는 등 불법 행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수원지법 여주지원은 “공장 출입로와 인근 도로에 다수의 화물 차량을 장기간 주차해 도로를 점거하는 행위는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지난달 22일 회사 측이 낸 업무 방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춘천지법도 이달 초 강원 공장 진입로를 막고 시위한 화물연대 간부 4명 중 2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추가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와 별개로 하이트진로 측은 화물연대의 영업 방해 등으로 60억원가량의 피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 소송도 낸 상태다.
화물연대 측은 “하이트진로는 운송 회사인 수양물류를 앞에 내세워 (운송료 인상 등은) 운송 회사와 화물차주 간의 문제이니 본사는 이 일과 무관하다며 선을 긋고 교섭에 제대로 나서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하이트진로가 (화물연대에 가입한) 130여 명의 화물차주와 계약을 해지하기도 했다”며 “운송료 인상과 전원 복직, 손해배상 소송 철회를 해야 점거를 풀 것”이라고 했다.
반면 회사 측은 “추가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운송료에 유가 인상분을 계속 반영해왔고 법적으로 원청이 아닌 화물차주들과 계약 당사자인 수양물류가 각 사안에 대한 협상을 하는 게 맞는다고도 주장했다. 계약 해지와 관련해서도 “불법 집회 등을 주도한 10여 명을 제외한 나머지 화물차주는 업무에 복귀한다면 수양물류가 언제든 재계약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경찰은 서울 강남 한복판 건물에 시너를 가진 채 농성을 하는 만큼 이 사건을 엄중하고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특히 지난 4일 하이트진로 강원 공장 앞 다리에서 시위를 하다가 경찰이 투입되자 강물로 뛰어들 만큼 강성인 조합원들이 있어 만에 하나 공권력이 투입될 경우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 될지 사실 관계를 분석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