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팀 한화 이글스 정은원 선수의 팬인 김모(33)씨는 지난해 4월 한 은행에서 자유적립식 적금 통장을 만들어 자기 혼자 ‘정은원 적금’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 후 매 경기마다 정 선수가 안타를 치면 5000원, 홈런을 치면 1만원씩 적금을 넣었다. 1년 동안 70만원을 모았다고 한다. 김씨는 “좋아하는 선수가 경기에서 잘할 때마다 돈을 넣다 보니 기분 좋게 돈을 모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연예인과 운동선수 등 좋아하는 스타들의 음악CD나 유니폼 등 물건을 구매하는 소비 중심의 팬 문화가 고물가·고금리 시대를 맞으면서 나를 위한 ‘저축형’ 팬 문화로 변하고 있다. 요즘 젊은 층 사이에서는 ‘최애(가장 좋아하는 스타)’가 특정한 활동을 할 때마다 일정한 금액을 저축하는 ‘최애 적금’이 인기다. 자유적립식 적금 통장을 만들어 좋아하는 연예인이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올리면 2000원, 라이브 방송을 켜면 3000원을 모으는 식이다. 아이돌 그룹 NCT 멤버 재민의 팬인 A(28)씨는 지난 5월부터 ‘최애적금’을 들었다. 재민에 관한 새로운 소식이 올라올 때마다 3만원씩 통장에 입금했더니 3개월 만에 80만원을 모았다고 한다.

이런 저축형 팬 문화가 유행하는 것은 올해 들어 예·적금 금리가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실제 ‘최애적금’에 많이 사용되는 한 인터넷은행의 12개월짜리 자유적금 상품 금리는 작년 8월 1% 중반 안팎에서 1년 만에 3.5% 안팎까지 올랐다.

아이돌그룹 ‘데이식스’를 좋아한다는 정아름(31)씨는 금리가 오르자 지난 3월부터 ‘최애적금’ 통장 3개를 잇따라 만들었다. 정씨가 좋아하는 멤버의 생일과 전역일을 만기일로 설정해두고, 각각의 통장에 매일 4028원(4월 28일 생일), 1127원(11월 27일 전역일)을 넣고 있다고 한다. 나머지 1개의 통장에는 멤버의 사진이나 영상이 새로 올라올 때마다 돈을 넣는다. 정씨는 “돈을 쓰지 않고 모으면서 덕질(연예인을 좋아하는 행위) 할 수 있어서 뿌듯하다”고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재미있는 요소와 의미를 추구하는 Z세대의 특성이 반영되면서 이런 식의 저축 문화가 확산하는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