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사람 누울 곳도 없는 형편인데, 죽은 사람 차례는 어째 하것노.”
8일 경북 포항시 남구 대송면 대송목적복지관 임시 대피소 1층과 2층 강당의 임시 텐트 35개에 주민 100여명이 머물고 있었다. 11호 태풍 힌남노가 시간당 100mm가 넘는 집중호우를 뿌리며 인근 하천이 범람할 때 이곳으로 겨우 몸만 피한 주민들이다.
이용남(86) 할머니는 폭우가 내릴 당시 생각만하면 아찔하다. 집에 혼자 있던 이 할머니에게 이웃주민이 “비가 심상치 않으니 같이 대피하자”는 말을 듣고 집을 나섰다. 얼마지나지 않아 집은 하천이 넘치면서 들이닥치는 물에 침수됐다. 이 할머니는 “휴대전화고, 옷이고 다 놔두고 헐레벌떡 나왔다”면서 “어려운 형편에 조금씩 돈을 모으며 마련한 장농이며, 환갑 때 자녀가 사준 침대도 모두 물에 잠겼다”고 말했다.
제내2리 이장인 김용철(60)씨는 “성한 집 하나 없지만, 목숨이라도 건진게 어디냐”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김씨는 “6일 새벽 1시 30분쯤 미리 복지관 문을 열었고, 바로 동네 주민들에게 방송했다”면서 “다행히 주민들 모두 몸을 피해 다친 사람 없이 무사하다”고 했다. 제내리 마을은 인근 공단 조성 당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모여 조성된 마을이다. 김씨는 이곳 인근 자연부락에 살다가 40년 전 지금의 집에 터전 삼아 살아왔다.
김씨는 “보시다시피 추석연휴가 어딨겠느냐”며 “집 바닥 장판도 다 걷어내고 가구도 모두 젖었다. 산 사람 앉을 곳, 누울 곳도 없는데 돌아가신 분 차례는 생각도 못하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포항시에 따르면 8일 오전 기준 포항 전체 24곳의 대피소에 322명이 긴급 대피 중이다.
추석 대목을 앞뒀던 상인들도 울상이다. 대송면 오천시장에서 떡집을 하는 송종연(67)씨는 침수 피해로 떡 찌는 기계 6개 중 4개가 고장났다. 추석이라 주문 전화는 빗발치는데 물건을 맞춰줄 형편이 아니다. 송씨는 “명절 고객은 대처도 못하고, 봉사하는 사람들 줄 떡 주문만 겨우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포항에 있는 기업들도 멈췄다. 포스코는 지난 7일 포항제철소의 2~4고로가 동시에 휴풍(가동 중단)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49년 만에 모든 고로 가동 중단이라는 사상 초유의 위기를 맞은 것이다. 포항제철소는 전날 새벽 최대 500mm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는데, 시점이 만조 때와 겹치면서 인근 하천이 범람해 침수피해를 입었다. 여기에 한전의 전기공급 시설인 수전변전소를 비롯한 제철소 대부분 지역이 침수와 정전으로 가동이 중단되면서, 고로가 멈춘 것이다. 업계에서는 포스코가 하루 매출 최대 500억원의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현대제철 포항공장도 힌남노 영향으로 일부 시설에 정전과 침수가 발생해 제품 생산을 중단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피해 설비를 복구하고 있다”고 했다. 포항의 재산 피해는 총 1조7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는 지난달 수도권 집중호우 피해의 6배에 달한다.
포항 지역 학교 27곳도 힌남노로 인해 침수·파손 피해를 입은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포항 남구 대송면 남성초등학교는 건물 1층 절반 이상이 물에 잠겼고, 같은 남구의 청림초등학교와 인덕초등학교 역시 사람 허리 높이까지 물이 차올라 침수 피해를 입었다. 포항교육지원청에 따르면 8일 기준 태풍 힌남노 피해로 원격 또는 단축수업 등 학사일정을 조정한 초중고는 모두 13곳이다. 이 중 초등학교 5곳은 아예 재량휴업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