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범죄처벌법’이 시행된 지 11개월 째다. 지난 1999년 논의가 시작돼 무려 22년 만에 국회를 통과 후 작년 10월 시행됐다. 하지만 ‘신당동 스토킹 살인사건’처럼 스토킹으로 인한 충격적인 강력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다.

신당역 살인사건 피의자 전모씨가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영장 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지난 14일 서울지하철 신당역에서 28세 역무원이 스토커 전모(31)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2021년 11월 스토커 김병찬(35)은 경찰 신변보호를 받고 있던 전 여자친구를 살해했다. 12월에는 이석준(25)이 전 여자친구 어머니를 살해하고 동생을 중태에 빠뜨렸다. 잊을 만 하면 나오는 스토킹 살인 사건에 시민들은 경악하고 있다. 16일 신당역, 하루 종일 숨진 역무원을 애도하는 시민들이 찾아들었다.

신당역 추모공간을 찾은 시민들을 만나 심경을 들어봤다. “무력감을 느낀다” “분노조차 느껴지지 않는다”는 시민도 있었다.

“같은 여성으로서 나한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 무섭다.”(직장인 이지형·26)

“스토킹 범죄는 흔하다. 알바, 직장 등 곳곳에서 일어난다. 출퇴근 시간에 기다리고, 거절해도 따라오고, 신고를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직장인 이모·29)

“인근에서 직장을 다니는데, 출퇴근하는 역 화장실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잠이 안 왔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다.”(직장인 남모·33)

“반복되는 일이라서 더 이상 분노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무력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이런 일을 막을 수 있을지, 남녀를 떠나서 함께 고민이 필요하다.”(대학생 김모·24)

“다른 나라는 구속영장도 빨리 나오는데, 우리나라만 유독 영장 기각으로 스토킹 범죄를 제대로 막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대학생 권모·20)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 국가가 나서서 문제를 고쳐야 한다.”(대학생 이모·20)

“서울 강서구에서 2시간 걸려서 왔다. 피해자는 2019년부터 스토킹을 당했고 경찰에 신고까지 했지만 끝내 살해 당했다. 피해자는 죽어서야 고통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피해자가 겪었을 스트레스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대학생 이모·23)

“부산 철도공사에서 근무한다. 교통공사와 마찬가지로 적자, 인력난에 직원들이 힘든 상황이다. 최소한 2인 1조 근무만이라도 지켜졌으면 좋겠다.” (직장인 김모·34)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나. 딸이 있는 아버지 입장으로 가슴 아프다.” (인근 주민 최모·56)

“지하철 역 화장실조차 마음 편히 못 쓰는 현실이 답답하다.” (직장인 김모·32)

이번에는 추모글이다. 신당역은 지금 포스트잇 물결이다. 여성, 남성 가리지 않았고, 중년과 청년들이 고루 글을 남겼다. 문제를 지적하는 시선도 다양해졌다. 시민들이 손글씨로 쓴 추모 메시지를 편집없이 그대로 싣는다.

포스트잇에 글귀를 적어 ‘범죄 피해자’를 추모하는 문화는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 때 처음 등장했다. 지난 2016년 서울 강남역 인근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김성민(40)이 일면식도 없는 20대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다. 김씨가 경찰조사에서 “여자들이 무시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사건은 ‘여성 혐오 범죄’라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다. 범죄학자들 다수는 정신병을 앓는 김씨의 행위를 ‘여혐 범죄’라 규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여혐 범죄’라는 주장은 대중 사이에 급속히 퍼졌고,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젠더 갈등이 촉발됐다.

젠더 갈등 기폭제 된 '강남역 살인사건' - 2016년 서울 강남역 인근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조현병을 앓던 남성 김모(40)씨가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 발생, 여성들의 범죄 불안감이 극대화되면서 젠더 갈등의 기폭제가 됐다. 사진은 당시 시민들이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글을 남긴 모습.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