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행사나 축제 때 안전 수칙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본지가 31일 인터뷰한 안전 문제 관련 전문가 10명은 우선 대규모 행사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사고에 대비해 ‘밀집도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1m²당 5명이 넘을 경우 더는 행사장 등에 진입을 못 하게 하거나, 다른 곳으로 사람들을 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하철이나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꽉 찼을 때 보통 1m²에 3~4명이 들어간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참사 때 이태원 현장에는 ‘1m²당 16명’ 수준으로 밀집도가 높았다고 지적했다. 밀집도 기준이 있었다면 사람들을 사전에 분산시켜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제진주 전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명확한 기준을 세워서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리지 않게 차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예방책”이라고 했다. 일본도 2001년 효고현 아카시시(市) 불꽃놀이 때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한 후, 인파가 몰릴 것 같은 장소에는 사람 수를 통제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들었다.
밀집도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인도에서도 일방통행로를 두게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골목의 경우도 지하철역에서 세계음식문화거리 방면으로 올라오는 사람과, 반대로 내려오는 사람이 얽히고설키는 상황이 생겼고 그게 대형 참사의 요인이 됐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미국의 경우 핼러윈 퍼레이드를 하면 사람들을 계속 한 방향으로만 돌게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면서 “대규모 인원이 거리에 몰려도 질서가 유지되는 비결”이라고 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도 “골목 하나를 통째로 일방통행로로 지정해도 되고, 골목 가운데에 안전선을 설치해 우측통행을 하도록 유도해도 인파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고 했다. 이슬람 최고 성지인 메카도 순례 기간에는 양방 통행이 압사 사고 위험을 키울 수 있다며 일방통행을 유도하고 있다.
이번 이태원 참사처럼 행사 주최 측이 불분명할 경우를 대비해 안전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소셜미디어가 발달하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거리에서 여는 행사가 늘고 있는데, 자칫 안전 사각지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소방방재청은 2006년 롯데월드 인파 사고 직후 공공장소에 인파가 몰릴 경우에 대비해 ‘공연·행사장 안전 매뉴얼’을 발간했었다. 이 매뉴얼에는 ‘동선 관리로 인파 분산’ ‘좁은 공간 운집 금지’ ‘안전관리 요원 배치’ 등이 담겨 있지만, 행사 주최자가 없으면 발동되지 않게 돼 있다.
현행 재난안전법은 대규모 행사 주최 기관이 안전관리계획을 관할 시·군·구청장에게 보고하도록 해놨지만 주최하는 기관이나 사람이 없는 경우에 대해서는 별도 규정이 없다. 문현철 숭실대 재난안전관리학과 겸임교수는 “국가재난관리시스템에서 현장 예방 대응 기구는 기초지방자치단체라는 걸 이참에 명시해야 한다”고 했다. 정기성 원광대 소방행정학과 교수는 “한국은 넓은 광장이 적고 대체로 좁은 공간에서 많은 행사가 열리기 때문에 미국보다 더 까다롭게 안전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각종 행사의 소음도 문제다. 안전사고가 생겼을 때 이를 제때 알리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 있었던 생존자들은 “주변 음악 소리가 너무 커 주변에서 사람이 쓰러지는데도 이를 알아차리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또 시민들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주저하지 말고, 자신의 위험을 주변에 적극적으로 분명하게 알리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주변 사람들도 다른 사람의 위험 신호를 적극적으로 전파하는 데 참여하는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고도 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이태원 참사 당시 일부 시민이 ‘밀어, 밀어’를 외쳤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밀집한 군중 속에서 ‘밀어’라는 소리가 들리고 군중심리가 작용하면, 여기에 맞서 단호하고 간결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사람들이 안전을 위해 빠르게 행동할 수 있도록 ‘사람 죽어’와 같은 말이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반복해서 외쳐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