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서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대규모 압사사고가 발생한 지역을 수습하고 있다. /뉴스1

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경찰, 소방, 구청 등 재난 대응 기관들이 실시간 소통할 수 있는 첨단 무전기를 보급했지만, 이번 ‘이태원 핼러윈 참사’ 때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첨단 무전기를 준비해 놓고 사고가 터졌을 때 쓰지 못한 것이다. 재난 전문가들은 “기관 사이에 여전히 높은 ‘칸막이’를 먼저 제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3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용산경찰서, 용산소방서, 용산구청은 지난해 이른바 ‘4세대 무선통신기술(PS-LTE)’이 적용된 무전기를 구입했다. 용산경찰서 100여 개, 용산소방서 81개, 용산구청 21개다. 이 무전기를 쓰면 현장에 출동한 경찰과 소방, 구청 직원이 동시에 대화하면서 구조 활동을 할 수 있다.

행정안전부는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총 1조5000억원을 들여 재난안전통신망 구축 사업을 벌였다. 세월호 참사 당시 해경과 해군이 서로 다른 통신 채널을 사용하는 바람에 구조 작업이 지연된 점을 반면교사 삼아 재난 대응 기관들의 무선 통신 주파수를 통일시키는 사업이다. 첨단 무전기 보급 사업은 그중 하나다.

행안부는 2018년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해 지난해 3월 전국 단일 재난안전통신망을 구축했다. 이에 따라 전국의 경찰·소방·군·지자체 등에 약 20만 개의 무전기가 도입됐다.

행안부는 지난 7월 ‘재난안전통신망 기본계획’도 수립해 발표했다. 당시 김성호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경찰, 소방 등 재난 안전 관련 기관이 재난·재해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고 했다.

하지만 이 무전기는 이태원 참사 현장에선 쓰이지도 못했다. 각 기관들이 실전에서 사용하기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용산소방서 관계자는 “경찰, 지자체가 동시에 써야 위력을 발휘할 텐데 관련 매뉴얼을 아직 보지 못했다”며 “내년부터 실전에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전화, 카카오톡 등으로 충분히 소통할 수 있는데 다급한 참사 현장에서 무전기를 활용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한 관계자는 “기관 내부의 정보나 치부까지 흘러나갈까봐 기피하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이에 따라 재난 담당 기관 사이의 엇박자는 이번 참사 때도 재연됐다. 이태원로의 교통 통제를 맡은 경찰과 소방 구조대가 제때 소통하지 못해 구급차 진입로 확보가 늦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용산구청은 현장 상황을 뒤늦게 파악해 참사 발생 2시간쯤 후인 30일 0시 20분에서야 재난안전대책본부를 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