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2년 차 직장인 이모(26)씨는 요즘 9개월째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작년 7월부터 일주일 중 사흘 이상은 잠자리에 누워도 3~4시간 동안 잠들지 못한 채 뒤척이다 다시 출근하는 일이 반복됐다. 그는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업무가 익숙지 않아 실수가 많아 지적을 종종 받아 퇴근을 해도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았다”며 “술을 먹지 않으면 잠을 조금도 잘 수 없고, 잠을 못 자서 또 스트레스를 받는 악순환이 이어졌다”고 했다. 결국 그는 견디다 못해 정신과에 가 불면증 진단을 받고 최근 수면제를 먹고 있다.
국내에서 불면(不眠)의 밤을 보내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의학적으로는 ‘비기질성 수면장애’를 겪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심리적·정신적 원인으로 인해 제대로 잠을 잘 수 없는 불면증이나 몽유병 등을 한데 일컫는다. 20일 민주당 남인순 의원실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비기질성 수면장애로 건강보험 혜택을 받은 환자는 2017년 32만4701명에서 2021년 38만1403명으로 4년간 18% 늘었다. 지난해 상반기에도 환자 수는 27만2719명을 기록, 급증세가 이어졌다. 작년 하반기까지 합하면 작년 전체 환자 수는 50만명 안팎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전 세대에 걸쳐 환자 수가 늘어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20대 불면증 환자의 수가 가파르게 늘어나는 걸 우려하고 있다. 이 숫자는 2017년 1만8070명에서 2021년 2만4273명으로 34% 늘어 전체 평균보다 더 빠르게 증가했다. 50~60대 이상의 경우 고령화로 전체 인구 자체가 늘어난 면이 있고, 호르몬 변화 등으로 불면증이 일부 생기는 것이 노화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라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20대 등 젊은 층은 사회적 변화가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취업난과 직장 생활 등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 과도한 카페인 섭취와 지나친 디지털 기기 사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대학생 김모(23)씨는 “올해 본격적으로 수험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하루 12시간 이상 공부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겨서 밤에 잠을 제대로 자기 어려워졌다”며 “매일 머리맡에 유튜브로 파도소리나 빗방울 소리를 틀어놓고, 최근에는 잠드는 방법을 말해주는 ‘숙면 가이드’ 영상을 들으면서 억지로 잠을 자려고 한다”고 했다. 경기도에서 교사로 근무하는 정모(43)씨는 지난해 담임을 맡았던 학급에서 한 학생·학부모와 갈등이 생긴 이후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면증에 시달리다 결국 정신과를 찾았다고 했다.
하지만 시민들이 수면제를 처방받는 일이 많아지는 것에 대한 우려도 크다. 병원에서 주로 처방하는 다수 수면제는 과용(過用)할 경우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의존성·부작용 우려가 있는 향정신성의약품이다. 특히 젊은 층의 경우 일찍부터 약물 의존증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실제 대표적인 수면제인 졸피뎀류 처방량은 2019년 1억4520만정(錠)에서 2021년 1억5813정으로 2년 새 10% 가까이 늘었다. 이 기간 환자 한 명당 처방량은 79정에서 87정으로 늘었다.
익명을 요구한 경기 지역 한 정신과 의사는 “20~30대는 다른 세대와 달리 상대적으로 병원에 와서 수면제 처방을 너무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경향이 있어 우려스럽다”면서 “불면 등을 참지 말고 병원에 와 진료받는 건 중요하지만 약은 불가피할 때만 먹는 게 좋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환자가 빠르게 늘어나는 만큼, 불면증을 개인의 건강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다뤄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한다. 수면 부족이 근로자의 집중력과 업무 효율을 떨어뜨려 생산성 저하나 각종 안전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지난해 3월 글로벌 여론조사업체 갤럽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수면 부족으로 인해 발생하는 연간 생산성 손실이 440억달러(약 57조7280억원)에 달했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불면증은 우울증 등 다른 정신질환과 동반되는 경우가 많은데 처음부터 약물에 의존하기보다는 국가적 차원에서 심리 상담이나 정신 건강 프로그램을 더 효율적으로 제공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