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 일대가 50년 만에 최악의 가뭄에 시달리면서, 영산강 보(洑)의 처리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문제가 되는 보는 지난 이명박 정부 때 ‘4대강사업’ 결과 영산강에 들어선 광주 승촌보와 전남 나주 죽산보다. 이들 보는 ‘4대강 사업’을 이른바 ‘4대강 삽질’로 규정하고 ‘4대강 재자연화’를 공약한 지난 문재인 정부 때부터 줄곧 눈엣가시였다. 급기야 문재인 정부 말기인 2021년, 대통령 직속 국가물관리위원회(당시 위원장 정세균 국무총리)는 “승촌보는 상시개방하고, 죽산보는 해체하라”는 결정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농업용수 고갈을 우려한 주변 농민들의 반발로 인해 이 같은 결정은 아직까지 집행되지 못하고 있다. 승촌보와 죽산보를 관할하는 한국수자원공사 영산강보관리단에 따르면, 현재 승촌보와 죽산보는 각각 상시개방과 해체에 앞서 부분개방만 실시 중이다. 흘러온 강물 일부는 가두고 일부는 흘려보내는 방식이다. 수자원공사 영산강보관리단의 한 관계자는 “들어오는 물은 대부분 내보내는 것이 원류구조인데 수위만 2m 정도 낮추되 다 내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한데 광주·전남 일대가 농업용수는커녕 씻고 마실 물조차 부족해지면서 과거 ‘4대강 적폐’로 몰렸던 영산강 보의 가치가 재조명되는 것이다.
실제 지난 3월 21일 광주 남구 승촌동에 있는 영산강 승촌보를 찾았을 때 보의 상류에는 강물이 그득히 담겨 있었다. 승촌보는 전남 담양에서 발원해 광주를 휘감아 내려오는 영산강, 광주 시내를 동서로 관통하는 광주천, 전남 장성에서 발원해 광주 광산구까지 내려오는 황룡강 등 3개 하천의 물을 1차로 가둬두는 곳이다.
보의 수문을 열고 닫아 수위를 조절할 수 있는 최신식 가동보로, 보 위로는 왕복 2차선 도로도 조성돼 있다. 유역면적은 1327㎢로 저수용량은 900만㎥에 달한다. 50년 만에 닥친 최악의 가뭄에서 물을 가둬두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셈이다.
승촌보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죽산보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나주시 다시면에 있는 죽산보는 이명박 정부 때 4대강 사업 당시 승촌보와 함께 영산강에 들어선 가동보다. 유역면적은 2359㎢로 저수용량은 승촌보보다도 큰 2570만㎥에 달한다. 승촌보와 마찬가지로 죽산보 양옆으로도 영산강 상류에서 내려온 강물이 그득히 고여 있었다. 그 위로는 수질조사를 실시하는 선박까지 유유히 운행하고 있었다. 적어도 영산강 보 주변으로는 50년 만에 가뭄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최악 가뭄 속 영산강 덕흥보 맹활약
사실 광주·전남 일대가 1973년 이후 최악의 가뭄에 시달리기 전까지는 영산강물은 그대로 흘려보내도 무방했다. 영산강물은 광주에서 배출하는 생활하수와 공업폐수, 농약과 비료로 찌든 농업폐수, 가축배설물이 섞인 축산폐수로 사실상 ‘똥물’ 수준이라 생활용수로는 사용하지 않았다. 과거 광주 북구 산동교 인근 제3수원지에서 영산강물을 퍼다가 마신 적이 있지만, 지금은 영산강물이 아닌 섬진강물을 끌어다가 마신다. 광주 최대 식수원 역시 전남 화순에 있는 동복호와 순천에 있는 주암호다. 각각 동복댐과 주암댐을 축조해서 만든 인공호수로 영산강이 아닌 섬진강 수계에 해당한다.
하지만 최악의 가뭄이 덮치자 광주시는 그간 외면했던 영산강물을 다시 길어 올리고 있다. 지난 3월 2일부터는 영산강 덕흥보에 담긴 강물을 퍼올려 광주 동구에 있는 용연정수장까지 공급하는 비상도수관을 만들었다. 광주 서구 덕흥동의 덕흥대교 아래에 있는 덕흥보는 영산강물을 일시적으로 가둬두는고정보다.
지난 3월 21일 찾아간 덕흥보 일대에는 그득하게 담긴 강물 위로 쓰레기 등 이물질의 유입을 방지하는 수중펜스가 쳐져 있었다. 임시로 설치한 취수장 옆에는 “가뭄 극복을 위한 임시 취수시설이 위치해 있다”며 “쓰레기 무단투기를 금한다”는 현수막도 내걸려 있었다. 수자원공사 영산강보관리단의 한 관계자는 “덕흥보는 영산강의 주 오염원이 아직 유입되기 전에 있는 곳에 위치해 있어 정수만 하면 생활용수로 공급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시는 이 같은 방식으로 영산강에서 하루 3만t가량의 물을 퍼올려 용연정수장으로 보내 정수한 뒤 광주시민들에게 생활용수로 공급하고 있다. 오는 4월 말까지는 광주 동구 소태동에 있는 광주천 원지교에 임시 가압시설을 설치해 하루 5만t의 영산강물을 광주시민들에게 추가 공급한다는 것이 광주시의 계획이다. 이런 방식으로 영산강물을 쥐어짜내 오는 4~5월까지만 제한급수 없이 버티면, 장마가 시작되고 태풍이 내습하면서 우기에 접어드는 6월경에는 가뭄이 어느 정도 해갈될 것이란 게 광주시 측의 기대다.
보 해체할 돈으로 고도정수처리장부터
영산강을 재자연화한다고 수백억원을 들여 이미 축조한 보를 또다시 돈 들여 해체할 것이 아니라, 같은 돈으로 영산강물을 생활용수로 재활용할 수 있는 고도정수처리장부터 설치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례로 죽산보 해체에는 400억원가량의 사업비가 필요한 것으로 추산됐는데 여기에 100억원만 추가하면 고도정수처리장 확보가 가능하다.
광주시 상수도사업본부에 따르면, 광주에 있는 2곳의 정수장 가운데 고도정수처리가 가능한 정수장은 용연정수장 한 곳에 그친다. 500억원을 들여 2021년부터 가동한 시설이다. 영산강 본류와 가까운 남구 덕남정수장에는 고도정수처리시설이 없다. 환경부에 따르면, 광주와 전남을 합친 고도정수처리장도 9곳으로, 부산·울산·경남(21곳)의 절반도 안 된다.
이로 인해 박정희 정부 때 ‘영산강 유역 종합개발계획’에 따라 영산강 본류와 그 지류의 상류에 축조한 담양댐, 장성댐, 광주댐, 나주댐 등 4개 댐에서 모은 물은 농업용수 정도로만 사용하고 영산강을 따라 그대로 흘려 보내고 있다. 반면 낙동강 하구에 있는 부산에서는 상류인 대구에서 흘려보낸 오폐수를 취수해 고도정수처리한 뒤 생활용수로 공급 중이다. 광주시 상수도사업본부의 한 관계자는 “덕남정수장은 영산강과 이어지는 관로도 없고 고도정수처리시설이 없어 하천수를 정수하는 데 무리가 있다”며 “승촌보에서 물을 끌어오는 것도 중장기 대책으로 논의만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