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라퍼(드라퍼·마약 운반책)가 동선(動線), 주의점 교육시켜 줄 거야.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일해서 돈 많이 벌어 가라.”

본지 기자는 10일 텔레그램을 통해 마약 운반책을 모집하는 마약 판매상 3명에게 연락했다. 신분을 숨긴 채 ‘17세 학생’이라고 소개했다. 그러자 마약 판매상들은 “문제없다”며 “교복 입고 마약을 운반하면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테니 오히려 더 낫다”고 했다. 10대 청소년으로 가장한 기자가 마약 운반책이 되는 데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날 텔레그램 마약 판매 대화방 5곳에 들어가 보니 모두 ‘드라퍼 상시 모집’ 공고 글이 게재돼 있었다. 드라퍼는 판매자 지시에 따라 정해진 장소에 마약을 갖다 놓는 말단 유통책이다. 마약 구매자는 드라퍼가 놔둔 이 장소에서 마약을 가져간다. 마약 판매책들은 드라퍼에게 많게는 월 2000만원, 적게는 월 1000만원을 보장한다고 광고 중이었다. 지방으로 마약 운반 시 모텔을 대신 예약해 주겠다는 판매상도 있었다. 한 판매상은 “건당 3만~5만원, 주 70~100건 정도 생각하면 된다”며 “열심히 일할수록 부자가 될 수 있는 정직한 구조”라고 했다.

마약 판매상들이 운반책 ‘자격 조건’으로 요구한 건 두 가지였다. 보증금 100만~500만원과 신분증 사본으로, 나이·성별을 제한한 판매상은 한 곳도 없었다. 10대 청소년으로 가장한 기자에게 판매상들은 사진이 들어간 학생증을 대신 요구하기도 했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관계자는 “마약상들은 개인 정보를 고스란히 넘겨받은 뒤, 10대 청소년들이 나중에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도록 협박하는 용도로 쓰곤 한다”고 전했다.

서울 강남구 학원가에 퍼진 '마약 음료' 사건 관련 제조 및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는 20대 남성 길모씨(왼쪽)와 번호조작 혐의를 받고 있는 30대 남성 김모씨가 10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2023.4.10/뉴스1

마약은 10대부터 젊은 층에 급속히 확산 중이다. 단순 투약이 아닌 마약 운반책으로 10대가 가담한 사례는 꾸준히 늘고 있다. 전체 마약 사범 중 10·20대 비율은 2017년 15.8%에서 작년 34.2%로 5년 만에 2.4배로 늘었고, 10대 마약 사범은 2017년 119명에서 작년 481명으로 4배 증가했다.

말단 마약 운반책으로 고용된 10대는 고수익을 노리고 뛰어들었다가 결국 경찰에게 붙잡히거나 마약 판매상들에게 협박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찰 관계자는 “미성년자들은 대부분 무심코 마약 운반에 발을 들였다가 마약 피라미드의 맨 밑에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된다”고 했다.

마약 판매상들은 10대 청소년들을 고수익 보장으로 유혹하는 한편, 경찰 수사망을 피하기 위한 수법 등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있었다. 한 판매상은 운반책을 하고 싶다는 기자에게 휴대전화를 ‘아이폰’으로 반드시 바꾸라고 지시했다. 그는 “아이폰 보안 세팅 설정 방법을 알려줄 테니 걱정 말라”며 “경찰에 걸리더라도 네가 입만 다물면 절대 범죄 사실이 드러날 일이 없다”고 했다. 또 다른 판매상은 일종의 ‘수습 기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이틀간은 설탕으로 배달 연습을 해보자”며 “익숙해지면 실전에 투입될 수 있다”고 했다.

마약 판매상들이 10대 청소년들을 운반책으로 이용하는 건 ‘꼬리 자르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마약을 운반하다 경찰에 걸려도, 판매상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기 때문에 윗선이 잡힐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을 노리는 것이다. 수원지검은 지난달 ‘던지기 수법(특정 장소에 마약을 숨겨 놓는 수법)’으로 마약을 유통한 10대 4명 등 5명을 구속 기소했다. 경찰 관계자는 “30대 이상 마약 범죄자들은 핵심 조직원이라 봐도 무방할 만큼 조직 운영 시스템에 대해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반면 10대 마약 사범들은 말단 운반책으로 윗선 지시를 텔레그램을 통해 전달받기 때문에 자신이 어느 정도 규모의 범죄에 가담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이렇게 10대까지 동원한 마약 유통이 활발해지고, 젊은 층에서 마약 복용을 일종의 놀이로 여기는 현상이 더해지면서 피해 사례는 더욱 극단적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작년 5월 광주에선 클럽에 다녀온 20대 남성이 돌연사했는데, 지인 4명이 이 남성과 함께 클럽 화장실에서 신종 마약을 복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20대 남성은 마약이 포함된 스리라차 소스를 자신의 집에 온 친구 3명에게 건네 과자에 뿌려 먹게 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