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전 경기 안성시의 한 아파트 건설 공사장 앞. 민주노총 산하 건설노조 조합원 30여 명이 ‘세금 한 푼 안 내는 불법 외국인 고용하는 A 건설사 규탄한다’는 피켓을 들고 집회를 열었다. 공사장 정문 출입문 앞엔 ‘내국인은 굶어 죽어도 건설사 비호하는 윤석열 정부 규탄한다’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불법 체류 외국인 고용’을 문제 삼는 내용이었지만 건설사 측은 ‘외국인 노동자 대신 민노총 조합원을 쓰라’는 압박으로 받아들였다. A 건설사 관계자는 “우리가 자체 파악해 본 결과, 불법 외국인 노동자는 없고 모두 정부의 고용 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경찰에 따르면, 건설노조는 지난달 19일부터 이 아파트 공사 현장 앞에서 12차례 집회를 벌였다. 오전 6시부터 30~200여 명이 모여 30~40분간 확성기로 “세금 한 푼 안 내는 불법 외국인 고용하지 말라”는 구호를 외친다고 한다. 몇몇 노조원은 출입 통로 부근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향해 구호를 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사 현장 관계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아침 출근길마다 겁에 질려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며 “가뜩이나 인력이 부족한 마당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떠날까 싶어 달래주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했다. 건설노조는 오는 17일까지 집회를 열겠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건설업계 안팎에서는 이와 같은 민노총 건설노조의 시위가 이율배반이란 지적이 나왔다. 민주노총은 그동안 산하의 ‘이주노조’와 함께 “이주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해 왔다. 지난 1월 한 제조업체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숨지자 민노총은 “예방할 수 있는 사고였음에도 안타까운 생명이 유명을 달리했다”며 추모했다.
일부 공사 현장에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가 채용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민노총 출신 B씨는 “고용 허가제로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 중에서도 비자 연장 신청 때를 놓쳐 불법 체류하는 경우가 생긴다”며 “현실적으로 공사장에 이런 외국인 노동자가 한두 명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민노총은 이 점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보편적 인권’을 주요 가치로 삼는 진보당이 최근 민노총 건설노조의 시위에 동조했다가 철회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달 22일 안성시 아파트 공사장 입구엔 진보당 안성지역위원회가 내건 현수막이 있었다. ‘국민 일자리 빼앗는 불법 외국인 고용 권장, 윤석열은 어느 나라 대통령입니까’라는 내용이다.
진보 성향 사학자로 꼽히는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교수는 페이스북에 “불법 외국인 타령하는 게 진보 정당이 할 일인가요”라며 이를 비판했다. 진보당은 ‘외국인 노동자 혐오’ 논란이 계속되자, 현수막 게시 3일 만에 공식 사과문을 내고 현수막을 철거했다.
정부는 올해 국내에서 취업할 수 있는 외국인 근로자를 11만명으로 확대했다. 초저출생·고령화로 부족해진 노동력을 외국인 근로자들로 대신 채우는 차원이다. 2004년 고용 허가제가 도입된 이후 최대 규모다. 고용 허가제는 국내 인력을 구하지 못한 중소기업이 정부에서 허가를 받아 외국 인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건설업계에서는 “노조 때문에 건설사들이 고용 허가를 받은 외국인 노동자도 고용하기 쉽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검찰은 지난달 7일 민노총 건설노조 간부 우모씨를 공동 공갈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우씨는 2020년 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서울 지역 공사 현장 10곳에서 ‘민주노총 노조원 고용률을 70% 이상으로 하라’고 요구하고 이를 들어주지 않으면 ‘불법 체류 외국인이 현장에서 일하는 것을 다 안다’고 협박해 노조원 300여 명을 고용하도록 강요한 혐의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