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설계 기술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민주노총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국내 원자력발전소 설계 전문 기업인 한국전력기술 노조는 지난 10일 민노총을 탈퇴했다. 하진수(54·사진) 노조위원장은 그 이유에 대해 “‘원전으로 밥 먹고 사는 우리가 탈원전하자는 민주노총에 머물 필요가 있느냐’는 (조합원들) 불만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1987년 출범한 한전기술 노조는 1995년 민노총 설립과 동시에 가입했지만, 이번에 조합원 1242명 중 1114명의 찬성(89.6%)으로 28년 만에 민노총과 결별했다.
지난 15일 김천 혁신도시 내 한전기술에서 만난 하 위원장은 “한전기술은 원전 설계를 하는 회사이고, 조합원들은 세계적인 우리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며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꺼내 들고, 민노총이 지지를 선언하자 그 자부심은 한순간에 자괴감으로 변했다”고 했다. 하 위원장은 한전기술 노조위원장만 네 번째다.
한전기술은 탈원전 정책의 직격탄을 맞았다. 탈원전 전(前) 연 매출은 6500억원 수준이었는데, 탈원전 이후 4300여 억원으로 30% 이상 급감했다. 하 위원장은 “회사가 어려워 조합원들이 불안해했지만 민노총이 별다른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2017년 민노총에 탈원전 정책 토론회를 열자고도 했지만 불발됐다”며 “사실 이때부터 갈라섰다. 우리는 스스로 ‘원자력 노동조합 연대’를 만들어 전국을 돌며 탈원전 반대 집회를 열고, 서명운동을 벌였다”고 했다.
하 위원장은 “전 정부는 국가 기간산업에 대한 정책을 너무 고민 없이 결정했다”며 “탈원전 시기를 겪으면서 기업이나 노조나 정책에 휘둘리지 않는 기술력과 대안을 갖춰야 한다는 걸 절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민노총과 가는 방향이 완전히 다르고, 조합원 90%가 찬성하니 탈퇴는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며 “민노총 집행부도 우리가 수차례 탈퇴 의사를 전했던 만큼, 입장을 이해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5년간 무너진 원전 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이 우리 노조에 남은 숙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