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이버 담론장과 공간에서 중국과 북한에 직간접으로 연계된 사람들이 활개치고 있다. 한국 사회에 깊숙이 파고들어 최근 확산되고 있는 마약 범죄에도 중국 인민해방군이 관련돼 있다. 한국내 마약 주 공급원 중 하나는 마약생산국 북한이다.”
한국세계지역학회가 2023년 5월 25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전체주의(全體主義) 국가들의 영향력 공작 실태 및 우리의 현실’을 주제로 개최한 2023년 춘계학술회의에서 이지용 계명대 국제학부 교수가 한 말이다. 미국 뉴욕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국립외교원 교수를 지낸 이 교수는 최근 <중국의 초한전(超限戰) : 새로운 전쟁의 도래>라는 연구서를 냈다.
◇“中 목표는 한국을 ‘親中 국가’로 만드는 것”
이 교수는 “중국이 가짜뉴스, 거짓정보, 루머 확산 등을 통해 한국사회를 분열·이간시키고 내부 갈등을 증폭시켜 한국의 여론과 정치를 중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 사이버 공작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반일(反日) 감정을 이용한 반일 운동 조장, 반미(反美) 운동 촉발 등은 물론 주요 선거와 이슈가 한국에 터질 때마다 중국 당국은 댓글부대에 지령문을 내려 댓글의 방향과 수위를 지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자는 이날 학술회의를 전후해 이 교수와 일문일답(一問一答)을 가졌다.
- 중국이 한국에 사이버 공격을 가할 특별한 이유가 있나?
“한국은 미국의 동아시아 동맹 체제의 최전방에 위치해 있다. 2049년까지 세계 패권국이 되려는 ‘중국몽’ 달성을 위하려면 중국 입장에선 한국을 반드시 친중(親中)화하고 한미(韓美)동맹을 해체시켜야 한다. 그래야 서태평양에서 미국이 무력화된다고 중국은 보고 있다.”
그는 “한국은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자유민주주의의 모범 국가이다. 이런 한국을 중국의 세력권에 넣는다면, 중국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치명적 타격을 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윤석열 정부 들어 중국의 침투 공세는 어떠한가?
“더 강화되고 있다. 이번 정부가 한미동맹 강화를 통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수호 및 자유시장 경제 활성화, 북핵 위협에 대한 단호한 대응체제 구축 등을 공식 표방하며 추진하고 있어서다. 윤석열 정부는 중국 공작 당국과 북한에게 사실상 ‘타도 1순위’가 되고 있다.”
◇“한국 겨냥 댓글부대 인원, 최대 수 백만명”
- 다른 나라에서도 중국은 사이버 공작과 정치 개입을 하고 있나?
“이미 대만 총통 선거와 미국 대통령 선거, 호주 및 캐나다 총리 선거 등에서 중국의 그런 행적이 명확한 증거와 함께 드러났다. 중국은 각국에서 친중(親中) 후보자에 대한 음성적 자금 지원과 댓글 지원 공세, 반중(反中) 정치인에 대한 온라인 테러와 흑색 선전 등을 하고 있다.”
- 외국을 겨냥한 중국의 여론전·사이버전·사상전 등 능력을 평가한다면?
“중국 인민해방군은 세계 최고 수준의 ‘뇌통제전[制腦作戰]’ 능력을 갖추고 있다. 중국이 운영하는 사이버 댓글 공작부대는 최대 3000만명 이상이며, 생계형으로 매일 활동하는 인원만 1000만~1500만명으로 파악된다. 한국을 겨냥해선 중국 조선족을 중심으로 수 십만~수 백만명을 동원하고 있다.”
- 최근 국내에 급증하는 중국산 마약류 반입·거래에 중국인들 연계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구글 등 인터넷 사이트에 마약 비밀거래 관련 내용이 뜰 만큼 상황이 심각하다. 한국 사회에 급속 확산하는 마약의 주요 통로는 중국과 북한이다. 그 중심에는 중국공산당(약칭 중공)이 있다. 북한 마약은 중국으로 들어갔다가 중공·인민해방군·삼합회 또는 중남미 마약 카르텔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온다.”
이 교수의 이어지는 말이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1983년 무렵 중국의 범죄조직인 삼합회와 본격 제휴했다. 해외에 침투해 공작하는 데 범죄조직만큼 좋은 게 없다. 캐나다의 탐사 전문 기자인 샘 쿠퍼(Sam Cooper)가 2021년에 발간한 저서 <윌풀 블라인드니스>(Wilful Blindness)에도 이런 사실이 기록돼 있다.”
◇“마약 거래로 번 돈으로 한국인 매수할 가능성”
- 중국은 마약 유통으로 번 돈을 어디에 쓰고 있나?
“중공은 마약으로 벌어 들인 돈을 갖고 한국내 범죄조직들과의 연대를 구축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돈은 한국에 들어와 있는 중국 통일전선 조직들에 전달돼 한국의 권력 기관, 정치인, 교수·교사, 사업가 등 매수에 쓰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 중국의 공세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2023년 말 국정원의 대공(對共) 수사권 폐지를 명문화한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을 즉시 폐기해야 한다. 국정원의 국내방첩 정보 수사권을 강화하고 확대해야 한다. 국정원의 국내 방첩 수사권 무력화는 ‘중공과 북한의 침탈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국가 자살행위’이다.”
- 다른 대책이라면?
“중공과 북한의 조직적이고 파상적인 정치 공작전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반(反)침투법’을 빨리 제정해야 한다. 국내 친중 단체, 재한(在韓) 중국인 통일전선조직과 중국인 유학생 등의 한국 정치 개입을 차단하고 불법적 행위를 강력 처벌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미주연구부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학술회의에선 이지용 교수 외에 신범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주재우 경희대 교수, 김진하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조현규 한국국방외교협회 중국센터장 등이 중국, 러시아, 북한의 대미(對美) 및 대(對)한국 영향력 공작 실태와 대응 전략을 각각 발표했다.
허버트 맥마스터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조셉 디트라니 전 미 국무부 대북 특사는 이날 행사에 영상 축사(祝辭)를 보내왔다. 조셉 디트라니 전 특사는 “중국과 러시아는 자국 이익에 반하는 사안이 대두할 때마다 영향력 공작을 사용해왔다”며 “한미(韓美) 양국이 더 큰 노력을 통해 공작의 실체를 밝혀내고 불법 행위를 차단하는 데 함께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 국무부가 여론 공작 대응 임무를 수행하는 ‘글로벌 인게이지먼트 센터’(Global Engagement Center)를 최근 설립했다”며 “이 조직이 한국의 동맹 기관과 협업하고 있다”고 밝혔다.
◇“韓美, 중국·북한의 불법 공작 행위 차단 힘써야”
허버트 맥매스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 우방국 중 일부는 워싱턴과 베이징 중 하나를 선택하고 싶지 않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지만 이들 국가가 직면한 선택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선택이 아니라 주권(主權) 예속(隸屬) 간의 선택”이라고 지적했다.
행사를 주관한 주재우 한국세계지역학회 회장은 “미국·호주·캐나다·유럽 등의 선진국에선 중국, 러시아 등의 영향력 공작을 파헤치는 학술 논의를 넘어 단행본 출간과 입법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나 한국에선 오늘 학술회의가 첫 번째 시도”라며 “학자들과 관료, 언론, 국민이 이 문제에 깊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조현규 한국국방외교협회 중국센터장은 “중국의 영향력 공작의 최종 목표는 한국을 완전히 ‘친중(親中) 국가’로 만드는 것”이라며 “지금 이 순간도 중국의 대한(對韓) 영향력 공작은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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