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2시쯤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신대방역 인근 도림천. 맑지 않은 물이지만 1m도 채 안돼 바닥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포크레인 1대와 작업자 4~5명이 하천 가에 쌓여 있는 흙을 덤프트럭에 싣고 있었다. 한 작업자는 “작년 홍수 때 관악산 쪽에서 떠내려온 흙과 자갈을 이제야 퍼내 치우는 것”이라며 “이런 게 쌓여 있으면 비가 조금만 와도 물이 넘어버린다”고 했다. 이곳 제방 높이는 14.36m, 홍수 위험 수위는 13.95m.

5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대방역 인근 도림천 가에 준설작업 후 쌓아놓은 흙과 자갈 등이 수북이 쌓여 있다. / 고유찬 기자

작년 8월 도림천은 범람했다. 산사태 경보까지 발령돼 낮은 지대에 사는 주민들이 긴급 대피했고, 차로엔 차량의 절반 정도가 잠길만큼 물이 찼다. 신림동 주민 김태호(76)씨는 “도림천 물이 넘치는 것보다 배수가 잘 안돼 역류하는 일이 잦다”며 “작년엔 하수구 구멍으로 물이 분수처럼 치솟는 곳도 있었다”고 했다. 자동자 용품점 주인 김종준(66)씨는 작년 폭우로 지하창고에 보관하던 자동차 부품이 몽땅 침수돼 3억원 상당의 피해를 입었다. 김씨는 “여의도쪽으로 물을 뺀다는 등 대책은 쏟아내는데 도데체 언제 완료해서 마음편히 장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계획만 세우다가 비가오면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호우 대책은 내놓지만 비오면 또 난리날 듯”

기록적인 ‘물 폭탄’이 한반도를 강타해 서울 강남 일대와 포항 하천 주변이 빗물에 잠겼던 작년에 이어 올여름도 집중 호우가 예상되자, 전국 곳곳이 비 피해 대비에 분주한 모습이다. 하지만 폭우 대책의 실효성이나 현장 대비 상황을 볼 때 작년과 같은 폭우가 또다시 쏟아지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서울시는 지난달 15일부터 재난안전대책본부를 24시간 가동 중이며 빗물 펌프장, 저류조 등 8233곳을 점검했다. 이재민을 위한 임시 주거 시설도 1169개 확보했다고 서울시는 밝혔다.

지난달 초 오언석 도봉구청장이 집중호우 때 배수가 잘되도록 하기 위해 빗물받이에 쌓인 담배꽁초 등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도봉구 제공

하지만 현장은 달랐다. 지난해 서울 지하철 7호선 이수역에선 천장에서 물이 새다가 아예 무너졌다. 9호선 동작역 등도 빗물이 계단으로 흘러들어 역 자체가 침수됐다. 이후 두 역에는 현재 높이 30cm짜리 차수판(범람 차단 장비)이 입구마다 설치됐다. 스테인리스 재질로 만약을 대비해 2장씩 덧대어 설치했지만 역류하는 물을 막기엔 어려운 수준이다. 지하철역 관계자는 “모두 수동이어서, 역 출입구 수의 절반도 안 되는 역 근무자가 비상 상황에 대처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강남역 등 상습 침수지역에서는 배수구 역할을 하는 ‘빗물받이’ 상당수가 담배꽁초와 종이 같은 쓰레기로 막혀 있는 등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고 있었다. 서울시는 7~9월 집중 호우기간에 시민 30만명(20세 이상)에게 ‘빗물받이 무단투기 금지’ 알림 메시지를 보내기로 했다.

반지하 방이 물에 잠겨 일가족 3명이 숨졌던 관악구 신사동 일대 반지하 방이나 저지대 주택에 설치하기로 했던 물막이 판도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았다. 서울시는 빗물을 저장했다가 비가 그치면 강으로 방류하는 ‘대심도 빗물터널’ 6곳을 짓기로 했지만, 아직까지 설계도 못했다.

지난해 9월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지하주차장이 물에 차 주민 7명이 목숨을 잃은 경북 포항시 남구의 한 아파트. 군인들이 물에 잠긴 차량 내부를 수색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7명 숨진 지하주차장엔 아직도 차수판 없어

이날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동 한 아파트. 지난해 9월 태풍 힌남노가 닥쳐 지하주차장에 차를 빼러갔던 주민 7명이 갑자기 들어찬 물에 목숨을 잃었던 곳이다. 이때도 원인은 인근 하천(냉천) 범람이었다. 지하주차장이 완전히 물에 잠기는 데 불과 8분밖에 걸리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사고 이후 포항시는 차수판을 설치하는 시민에게 공사비 80%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인명 피해가 났던 아파트들 주차장에는 아직도 차수판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입구에 모래주머니 몇개만 쌓여 있을 뿐이었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시청이 보조금을 준다고해도 주민들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공사가 미뤄지고 있다”고 했다. 포항시의 태풍 피해 복구는 40% 정도 이뤄졌다. 원상 복구에는 2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포항시 관계자는 “냉천은 제방 곳곳이 무너져 모래주머니로 임시 제방을 만드는 등 응급복구만 한 상태”라며 “원상복구를 위한 공사는 시작도 못했다”고 했다.

울산의 상습 침수 지역인 중구 태화시장과 우정시장도 집중호우가 내리면 피해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울산 중구청은 태화동 일대에 지하 30m 깊이에 약 260m길이의 배수터널을 만들려고 하는데, 주민 반대로 멈춰있다. 주민들은 배수터널 공사 때 노후된 아파트와 주택 등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며 반대하는 것이다. 중구청은 또 저류시설인 배수펌프장도 건설 중이지만 이 역시 내년 상반기나 돼야 완공된다. 울산 중구 관계자는 “올해 집중호우를 대비해 모래 주머니와 60~70m 높이의 차수판을 상가와 인근 공동주택 등지에 설치하고는 있는데 태풍 ‘차바’때처럼 큰 홍수가 나면 침수 피해가 생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4월 큰 산불로 산림이 몽땅 타버린 충남 홍성군 서부면 일대 야산. 홍성군은 올 여름 호우 기간 산사태를 막기 위해 위험지역 15곳 인공 구조물을 설치하고 있다. /신현종 기자

◇산불 났던 홍성은 산사태 걱정.. 전남도 긴장

올봄 큰 산불로 13.37㎢의 산림이 불에 타버린 충남 홍성군도 비상이다. 산불로 인해 산사태가 우려되는 15곳에 인공 구조물로 둑을 쌓고 있다. 집중호우가 내릴 때 산사태를 막기 위한 긴급 조치다. 홍성군 관계자는 “산불 이후 나무는 뿌리까지 모두 죽어 흙을 잡아주는 힘이 줄면서 산사태 위험성이 훨씬 높아진다”며 “비까지 내리면 와르르 무너질 위험도 있다”고 했다.

지난해 집중호우는 피해갔지만, 올해 많은 비가 예상되는 전남도는 오는 16일까지 여름철 집중 호우와 태풍 피해에 대비해 주요 공사 현장 307곳을 점검한다. 토사 유실과 붕괴가 우려되는 곳을 점검하고, 타워크레인 안전장치 작동 여부 확인, 공사장 주변 배수로 정비 상태 점검 등을 벌이고 있다. 문금주 전남도 행정부지사는 “산사태 취약 지역과 급경사지, 둔치주차장 등 인명 피해 우려 지역 안전관리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