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 경남 거제시 거제 해양문화관 내 위치한 이른바 짝퉁 거북선이 철거되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오전 8시 30분 경남 거제의 조선해양문화관 야외 광장에서는 지난 2011년 경남도가 16억원을 들여 복원한 거북선을 해체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굴착기는 거북선 머리 부분부터 내리쳐 분리시킨 다음, 부식이 심한 선체 부분을 종잇장 찢듯 뜯어냈다. 거북선은 금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됐다. 23일까지 이뤄지는 거북선 해체에는 1800여 만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이를 지켜보던 주민 이모(45)씨는 “세금 들여 만든 걸 12년간 방치하고 이제 와 부수는 걸 보니 속이 상한다. 개인 사업이라면 저렇게 하겠느냐”고 했다. 거제시는 해체된 거북선의 목재 부분은 인근 화력발전소로 보내 땔감으로 쓰고 철근 부분은 고물상에 넘길 예정이다.

길이 25.6m, 너비 6.87m, 높이 6.06m, 무게 120t의 이 거북선을 만드는 데는 국비와 경남도의 예산 등 16억원이 들어갔다. 김태호 전 경남지사 시절인 2011년 6월 경남도가 ‘이순신 장군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거제시에 만들었는데, 녹슬고 부서진 채 방치되다 결국 ‘땔감’이 된 것이다.

이 거북선은 줄곧 논란을 불렀다. 국내산 금강송이 아니라 외국산 목재를 80% 넘게 쓴 사실이 드러나 제작 업체 대표가 구속됐다. 승선 체험 등 관광용으로 쓰려고 바다에 띄웠는데 물이 새고 한쪽으로 기울었다. 그래서 뭍에 올려 전시했는데 태풍 등에 선체가 파손돼 방치됐다. 거제시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유지관리비로 1억5000여 만원을 썼다고 한다. 작년 11월에는 ‘충격을 가하면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는 진단이 나왔다. 이후 공매에 부쳐 154만5380원에 낙찰됐지만 운반비만 1억원 넘게 들어 무산됐다. 전문가들은 “지자체 세금 낭비를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전형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그래픽=양인성
그래픽=양인성

‘거제 거북선’과 같은 무책임한 예산 낭비 사례는 전국적으로 널려 있다. 지자체들이 문화·관광을 위해 앞다퉈 조성한 공공 시설물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채 방치되는 경우들이다. 사업 타당성 검토나 수요 예측 등을 제대로 하지 않고 ‘일단 예산을 따내 짓고 보자’는 식의 사업 추진이 이 같은 결과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강원도 원주시는 옛 반곡역 중앙선 폐철로를 활용해 테마관광열차를 운행하겠다며 전임 시정인 2021년 5월 54억원을 들여 열차를 구매했다. 정작 열차가 달려야 할 중앙선 폐철로 매입은 이뤄지기도 전이었다. 폐철로 소유권이 있는 국가철도공단 등과 행정 절차를 마무리 짓지 못한 것이다. 원주시는 아직도 폐철로를 매입하지 못해 먼저 구매한 열차들을 놀리고 있다고 한다. 열차는 현재 26억원을 들여 만든 정비고에 보관돼 있다. 원주 시민 박모(55)씨는 “운전면허증도 없이 자가용부터 산 셈”이라며 “혈세가 어처구니없이 새고 있다”고 했다.

지난 2020년 5월 국비 등 50억원을 들여 개장한 경남 통영의 VR(가상현실)존은 개장 3년 만에 존폐 위기에 놓였다. 개장 후 좀처럼 방문객이 늘지 않아서다. 통영시에 따르면, 지난해에 이곳을 찾은 사람은 평균해서 평일 15명, 주말 25명 정도라고 한다. 관람객은 없는데 인건비와 전기료 등 유지비는 계속 나가고 있다. 지난해 총수입 대비 지출을 보면 1억3900여 만원의 적자가 났다.

경북 군위군은 2020년 7월 ‘삼국유사테마파크’를 개장했다. 72만2000㎡(약 22만평) 부지에 1223억원을 들여 삼국유사에 나오는 소재로 놀이공원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개장 첫해부터 3년 동안 매출액은 총 25억여원이었는데 운영비는 49억여원이 들어갔다. 쓰는 돈이 버는 돈보다 2배가량 많은 셈이다. 입장객 수도 개장 초기인 2020년 8만여 명에서 2021년 12만여 명으로 늘었다가 작년엔 다시 10만명으로 줄었다. 주민들은 “애당초 무리한 사업이었다”고 했다.

부산 기장군이 군비 524억원을 들여 만든 ‘정관 아쿠아 드림파크’는 27개 레인을 가진 수영장 등을 자랑하며 지난해 6월 개장했다. 하지만, 개장 두 달 만에 곳곳에서 하자가 발생하면서 문을 닫았다. 기계실과 전기실 침수 탓에 시설 운영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후 보수공사로만 약 4억원이 추가 투입됐다고 한다. 운영 중단 등으로 인한 손실만 최소 30억원으로 추정된다. 현재 감사원 감사가 진행 중이다.

울산시 중구에서 지난 2015년 9억원을 들여 조성한 시계탑 위 기차 조형물은 고장과 수리를 반복하다 지난 2020년부터는 아예 멈춰 섰다. 1920년 첫 울산역이 있었던 자리를 관광 명소로 만들기 위해 움직이는 기차를 시계탑 상부에 설치했고, 매 시간 정각이면 기차가 기적 소리를 내며 달리도록 설계됐다. 그러나 고장이 잦아 2019년 6000여 만원을 들여 보수도 했다. 그러나 2020년 8월 또 고장이 나면서 현재까지 멈춰 있다. 중구는 내년쯤 2억원을 들여 고장 난 바퀴와 선로를 보수해 기차 조형물을 다시 운행할지, 아니면 기차 모형을 전시만 할지 검토 중이라고 한다. 중구청 관계자는 “세금을 들여 고쳐도 또 고장 날 수 있는 상황이어서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한국지방자치학회 이사인 송광태 창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선출직 지자체장에게 인사권, 예산 편성권, 각종 인허가권이 과도하게 몰려 있다”면서 “단체장으로서는 임기 내 뭔가를 보여줘야 재선·3선을 노릴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권한을 활용해 과욕을 부리는 일이 너무 많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