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양진경

서울 용산의 한 중학교는 최근 교실 칠판에 ‘학교에 가져오지 말아야 할 물품’이 적힌 안내문이 붙었다고 한다. 커터칼, 가위, 손톱깎이는 학교에 가져오지 말고 소지도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조금이라도 흉기가 될 만한 물건은 지니지 말라는 취지다. 이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에게 선한 마음을 갖고 서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생활하자”는 안내 방송도 나온다고 한다. 교감은 본지 통화에서 “최근 일부 학교에서 흉기 위협 사고가 벌어지면서 학부모들로부터 학생 안전을 우려하는 전화가 많이 오고 있다”며 “결국 학교 차원에서 수시로 학생회장, 선생님들이 교내 순회를 돌며 교내 분란을 예방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고 했다.

신림역·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에 이어 신림동 대낮 성폭행 살인 사건까지 흉악 범죄가 잇따르면서 21일 시민 불안은 커지고 있다. 특히 학교에서의 ‘포비아(공포증)’가 심각하다고 한다. 어린 학생들이 밀집해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사건이 일어나면 피해가 크고, 실제로 흉기 난동까지 일어났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중학교 교무실에서는 재학생이 흉기로 소동을 벌여 경찰이 출동했다. 이 학생은 흉기를 들고 선생님에게 친구 간 다툼에 대한 상담 등을 요구했다고 한다. 인터넷에는 “학교에서 칼부림을 하겠다”는 예고 글도 빈번하게 올라오고 있다. 대전시교육청은 대덕구 한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교내 칼부림 사건을 계기로 교육청 사이트에 교사 이름을 입력하면 재직 중인 학교를 확인할 수 있는 ‘스승 찾기 서비스’를 잠정 중단했다.

본지가 서울 초등학교 6곳에 문의한 결과 4곳은 흉기 난동 사건 이후 가위, 칼 등 날카로운 물건에 대한 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있었다. 서울 성동구의 한 초등학교는 최근 학부모들에게 ‘커터칼 등 날카로운 물건을 학교에 가져오지 못하도록 지도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안내했다. 학교 관계자는 “가위, 칼 등이 문구류이긴 하지만 학교 폭력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결국 교내 반입을 금지하기로 결정했다”며 “가위 사용이 필요한 미술 수업 시간 등에 한해선 담당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직접 가위를 나눠주고 수업 직후 바로 회수할 예정”이라고 했다. 서울 중구의 한 초등학교는 일부 학생들을 상대로 칼, 가위 사용법을 교육했다. 학교 관계자는 “담임 선생님 판단으로 그동안 학교에서 폭행, 폭언 등 공격 성향을 보인 학생들에 대해선 추가로 칼, 가위 안전 요령을 안내하고 있다”고 했다.

흉기 위협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20일 오후 바지춤에 흉기를 소지하고 신림역사거리 인근을 배회한 혐의로 20대 남성 A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신림동이 무서워 방어 차원에서 흉기를 가지고 다녔다”고 진술했다. A씨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청 사이버테러수사대는 21일 오전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 경찰 직원 계정으로 ‘오늘 저녁 강남역 1번 출구에서 칼부림한다’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작성자를 추적 중이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사회 구성원을 위협하고 경찰의 명예를 훼손한 작성·게시자를 확인해 엄정 처벌하겠다”고 했다.

윤 청장은 이날 신림동 성폭행 살인 사건과 같은 ‘사각지대’에서 일어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지자체와 협조해 CCTV 설치 등 보완책을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는 흉악 범죄 대책으로 ‘안심귀가 스카우트’ 등 안전 예산 확대를 검토하기로 했다. 서울경찰청, 서울시교육청은 서울 초등학교 통학로를 전수 조사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시설물 개선 등을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