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파행 이후 공개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새만금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이 대거 삭감되면서 새만금 개발사업이 또다시 표류할 조짐이다. 정부는 새만금 기본계획 전면 재검토를 통해 오는 2025년까지 ‘새만금 빅피처’를 다시 그리겠다는 계획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새로운 기본계획이 나올 때까지 일시적으로 예산 투입이 줄어들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야권을 비롯한 지역 정치권은 “잼버리 파행의 책임을 지자체에 넘기는 보복성 예산 삭감”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앞서 국민의힘은 잼버리 파행과 관련해 “SOC사업 예산 강탈에 혈안이 돼 1171억원에 달하는 혈세가 투입된 행사가 파행했다”며 더불어민주당과 전라북도에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새만금 사업은 전북 군산시와 부안군을 연결하는 세계 최장의 방조제(33.9㎞)를 쌓고, 간척토지(291㎢)와 호소(118㎢)를 조성해 여의도 면적의 140배에 이르는 409㎢ 규모의 땅을 새롭게 개발하는 사업이다. 2050년 완공을 목표로 현재까지 사업비 22조7900억원이 투입됐다. 1989년 노태우 정부 시절 사업이 시작된 만큼 34년의 세월 동안 새만금이 이미 완공됐거나, 매립이 완료된 것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매립이 완료된 면적의 비율은 33.1%(진행 중 14.9%)에 불과하다. 다만 방조제는 1991년 착공을 시작해 2010년 4월 완공됐다. 내부 개발을 위한 SOC사업으로는 간선 도로망인 동서도로가 2020년 11월, 남북도로가 잼버리 개막을 앞둔 지난 7월 완공됐다. 이 밖에 항만과 철도, 국제공항 사업 등이 진행 중이거나 착공을 앞두고 있던 상황이다.
예산 78% 삭감, ‘잼버리 보복’ 논란
2017년 세계잼버리대회 유치는 정치권과 전북도 간 공조로 새만금 사업에 속도를 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새만금개발청은 관광레저용지 내 호텔 건설, 국립새만금간척박물관 건설, 배수지 건설 공사 등 다수 사업을 추진하면서 ‘잼버리’를 언급했다. “세계잼버리대회를 차질 없이 지원하기 위해 옥구·계화 배수지 건설 공사에 착수했다” “국내외 청소년들에게 새만금 가치를 홍보하고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명소로 박물관을 활용하기 위해 잼버리 이전에 개관할 수 있도록 했다”는 식이다. 정부도 장단을 맞췄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3월 6일 제29차 새만금위원회에서 “새만금 개발을 가속화하는 데 범정부적으로 노력하겠다. 물류·교통의 핵심 기반인 공항·철도·항만 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여름휴가 중 새만금 2차전지 투자협약식에 참석해 “가장 중요한 것은 개발 속도”라며 힘을 실었다.
그러나 준비 부족으로 잼버리대회가 파행을 빚고, 정부와 전북도가 책임 공방을 벌이며 분위기가 급변했다. 지난 8월 29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새만금 SOC 예산이 당초 부처 반영액(6626억원)보다 78% 삭감됐다. 기획재정부 심사 단계에서 5147억원이 잘려나갔다. 새만금항 인입철도 건설(100억원)과 새만금 환경생태용지 2-1단계(62억원), 새만금 간선도로 건설(10억원), 새만금 환경생태용지 2-2단계 조성(9억5000만원) 등 사업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내년 착공 예정이던 새만금 국제공항 예산은 부처 반영액 580억원 대비 11%인 66억원만 배정됐다. 새만금~전주 간 고속도로와 새만금 신항만 예산 역시 각각 28%, 26%만 남았다.
국토교통부의 설명자료는 ‘예산보복’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지난 8월 29일 국토부는 설명자료를 내고 “새만금 잼버리 행사 이후 새만금 SOC사업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는 바, 8월 29일부터 공항, 철도, 도로 등 새만금 SOC사업의 필요성, 타당성, 균형발전정책 효과성 등의 적정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자체 점검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한덕수 총리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등에게 새만금 개발 계획의 전면 재검토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날이다. ‘잼버리 이후 문제가 제기돼 적정성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설명은 잼버리 파행과 새만금 예산 삭감의 연관성을 의심하게 했다.
이에 야권과 전북 정치권은 ‘예산보복’을 주장했다. 전북도의원 14명은 지난 9월 5일 “전북도를 향한 잼버리 파행 책임 공세가 도를 넘더니 급기야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예산폭력이 자행됐다”며 집단 삭발을 하고 릴레이 단식에 돌입했다. 9월 7일에는 국회 본청 앞에서 ‘윤석열 정부 새만금 예산 삭감 규탄대회’도 열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 김원기 전 국회의장 등 전북 정치 원로들도 “부당하게 삭감된 예산을 회복하는 데 전 도민의 뜻을 모을 것”이라며 공동성명을 냈다. 국민의힘은 예산보복 논란에 ‘가짜뉴스’라며 맞섰다.
하지만 전북도 역시 잼버리대회를 SOC사업의 명분으로 삼았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전북도가 2018년 8월 발행한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유치활동 결과보고서’에는 “전라북도가 세계스카우트잼버리를 새만금에 유치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새만금 개발의 조속한 추진이 필요했기 때문” “전라북도는 국제공항 건설 및 SOC 구축 등 새만금 내부 개발에 박차를 가할 명분이 필요했다”는 내용이 명시됐다. 2017년 12월 새만금위원회가 ‘잼버리대회의 시급성’을 강조하며 당초 관광레저용지였던 갯벌을 농업용지로 바꾼 뒤, 농지관리기금 1800억원을 들여 갯벌을 매립해 새만금 잼버리 야영지를 조성한 점도 문제가 됐다. 용도가 농지로 변경되면서 관광레저용지일 경우 받았어야 할 환경영향평가와 사업타당성 조사 등이 생략됐기 때문이다.
새만금 SOC사업 예산 삭감을 두고 중앙 정치권에서는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정작 지역에서는 각양각색의 목소리가 나온다. 전북환경운동연합과 전북녹색연합 등 시민·환경단체와 정의당 전북도당은 생태계 보전과 도민을 위한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일단 기본계획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정부·여당과 의견이 같다. 다만 전북환경운동연합은 “기존 사업의 한계에 대한 진단과 분석, 평가 없이 내린 결정이라는 점에서 보복성 예산 삭감이자 책임 떠넘기기 꼼수로 보인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예산 삭감에도 ‘지역민 분노’ 없어
반면 정의당 전북도당은 지난 8월 24일 기자회견에서 “노출지(매립되기 전부터 수면 위로 노출돼 있던 곳)를 거부하고 새롭게 갯벌을 매립하느라 잼버리가 파행으로 치달았다. 잼버리를 명분 삼아 SOC사업을 추진했다”며 여당과 유사한 논리로 지역 정치권을 비판했다.
민주당 전북도당 의원들이 “도민의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라며 삭발 투쟁에 나섰지만, 정작 예산 삭감에 대한 지역민들의 불만이 크지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당초 새만금 사업이 중앙정부 주도로 계획되며 지역 어민들은 피해를 본 반면, 그간 새만금 SOC 개발에 투입된 예산은 매립공사 등을 수주한 대기업으로 흘러들어갔다는 것. 새만금살리기공동행동 대표를 지낸 한승우 전주시의원은 “새만금 기본계획은 중앙정부, 국토부를 중심으로 한 관련 부처가 일방적으로 세운 것이지 지역민의 의견이 반영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새만금 사업에 투입된 예산의 85%는 서울에 있는 대기업 건설회사들이 가져가고, 전북도의 어업은 연간 1조원 이상의 피해를 보고 있어 예산에서 소외된 도민들이 이중 피해를 당하는 것이 새만금 사업의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새만금 사업에서 지역민들은 소외”
실제로 수산경제연구원은 2019년 9월 발간한 연구보고서 ‘새만금사업에 따른 수산업 영향 및 대응 방안’을 통해 “어업활동의 중단에 따라 어촌 주민들의 안정적인 소득 확보에 어려움이 나타나고 있으며, 어촌이 기능을 상실해 생계유지를 위해 마을을 떠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방조제 착공 전인 1990년 전라북도 수산물 생산량은 15만234t이었으나, 방조제 완공 직후인 2011년에는 7만1309t으로 52.5% 감소했다. 반면 유사한 어업환경을 보유한 충남지역 수산물 생산량은 같은 시기 85.1% 증가했다. 면접조사 결과 새만금지역 어업인들의 소득 수준은 어업을 통한 소득이 있던 이전과 비교할 때 30~40% 수준으로 낮아졌다. 새만금간척사업 초기 정부는 간척농지 일부를 어업인에게 분양할 것을 약속했으나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기본계획 변경으로 일부 사업이 중단된 데 안도하는 분위기도 읽힌다. 지역 시민단체들은 새만금 신공항 건설과 생태용지 조성, 수상 태양광 사업 등에 대한 재검토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특히 쟁점이 되는 사업은 내년 7월 착공이 예정됐던 새만금 신공항이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신공항 예정지인 수라갯벌에서 전투기와 민물가마우지 무리가 충돌하는 버드 스트라이크(조류충돌) 사진을 공개하며 위험성을 알렸고,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은 지난해 9월 국토교통부 장관을 상대로 ‘새만금국제공항 개발사업 기본계획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만 1308명에 달한다. 새만금 신공항의 경우 환경영향평가가 진행되고 있어 추후 환경부의 동의를 받아야 사업을 진행할 수 있지만, 국토부는 지난 8월 14일 공항 건설업체 선정을 위한 입찰을 진행했다.
새만금 신공항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은 “지역 정치권에서 ‘동남아 허브공항’이라고 홍보했지만 미군기지(군산공항)로부터 1.3㎞ 거리에 있어 사실상 미공군 제2활주로 증설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편다. 미군기지 인근이라 중국 노선 취항이 어려운 데다, 주기장이 5개에 불과하고 활주로 역시 군산공항 활주로(2.7㎞)보다 200m 짧아 C급 소형 항공기만 취항할 수 있다는 것. 인근의 전남 무안국제공항은 50개의 주기장을 확보했지만 ‘고추 말리는 공항’이라는 오명을 썼고, 결국 지난해 12월에는 공항의 활성화를 위해 활주로를 기존 2.8㎞에서 3.16㎞로 연장하기로 했다.
새만금 약사
정권마다 ‘갈지자’… 밑그림만 세 차례 바뀌어
새만금 사업은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노태우 후보의 선거공약으로 등장했다. 가장 낙후된 전북의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치권의 선물이자, 표심을 자극하기 위한 카드였다. 1991년 7월 여야 영수회담(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김대중 평민당 총재)에서 개발 착수에 합의해 추경예산을 배정하고, 같은 해 11월 노 전 대통령이 ‘새만금 간척 종합 개발사업’의 착공식에 직접 참석하면서 본격적인 사업에 들어갔다. 노태우 정부는 새만금을 ‘농업 식량 생산기지’로 만들 계획이었다. 이후 김영삼 정부는 ‘대중국 교두보’, 김대중 정부는 ‘환황해경제권 생산교역 물류 전진기지’를 약속하고 방조제 공사를 이어갔다. 1996년에는 시화호 오염 사태가 발생하며 새만금에도 여파가 미쳤다.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새만금 사업 재검토가 논의되고, 1999년부터 2001년까지 민관 공동조사단의 조사가 진행되며 방조제 공사가 중단됐다. 2003년 7월 환경단체 소송으로 새만금사업의 잠정 중단이 결정되며 공사가 멈췄다가 2006년 3월 대법원 판결로 공사가 재개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는 2007년 4월 새만금 내부 토지개발 기본구상을 발표하면서 기존 농지 100%에서 농지 72%, 산업·관광 등 비농지(복합산업농지) 28%로 토지이용계획을 전환했다. 2010년 4월 착공 19년 만에 방조제가 준공된 이후에도 새만금 개발계획은 정권마다 변경됐다. 이명박 정부는 2011년 3월 2030년까지 21조원을 투자해 새만금을 동북아 경제 중심지로 개발한다는 ‘새만금 종합개발계획’을 발표하고 산업관광 용지 비율을 70%로 전환했다. ‘국제 경제협력특구’를 내건 박근혜 정부는 2013년 9월 새만금개발청을 개청한 후 2014년 9월 새만금기본계획을 변경했다. 이명박 정부가 개발계획을 발표한 지 3년6개월 만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9월 새만금개발공사를 설립했고, 2021년 2월 글로벌 신산업중심지 조성을 목적으로 새만금 기본계획을 다시 변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