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의 재조사 결과 발표로 라임자산운용 사태에 민주당 관련 인사가 연루돼 있다는 의혹이 재조명된 가운데, 검찰이 지난 2020년 2월 이미 라임펀드 자금 횡령 사실을 확인하고도 부실수사한 정황 역시 확인됐다. 원종준 라임 대표, 이종필 라임 부사장, 김영홍 메트로폴리탄 회장, 채모 메트로폴리단 공동대표 등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혐의로 고소한 고소인의 진술을 확보하고 자금이 민주당 강원도당 후원회장을 지낸 전모씨 등에게 전달된 내용을 인지했음에도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고소인 진술 3년 만에야 금감원의 재조사로 라임펀드 자금이 민주당 관련 인사들에게 흘러들어간 정황이 알려진 셈이다. 이에 따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시절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 폐지되면서 라임 사건의 수사 동력이 상실됐다는 비판에도 힘이 실리게 됐다.
“증권범죄합동수사단 폐지는 라임 수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전관 검찰과 금융계의 카르텔로 범죄의 온상이 돼버려 폐지된 것이다.”
금감원 발표 다음날인 지난 8월 25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라임·옵티머스 사건 수사를 뭉개기 위해 금융·증권범죄합수단을 폐지했다는 의혹을 이렇게 반박했다. 당시 합수단은 2020년 1월 28일 법무부가 직접수사 부서를 축소하면서 폐지됐다. 대검찰청으로부터 라임 사건을 배당받은 지 2주 만이었다.
추 전 장관의 해명과는 달리 당시 법조계 안팎에서는 폐지가 확정된 ‘시한부’ 합수단에 라임 사건이 배당된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컸었다. 속도가 중요한 금융범죄 수사가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이유에서다. 합수단 폐지 이후 라임 사건은 형사6부로 넘어갔지만, 정치권 연루 의혹이 제기되면서 수사에 힘이 빠진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왔다. 결국 2022년 5월 합수단이 복원되고 나서야 올해 초부터 환매중단 펀드를 대상으로 재수사가 시작됐다.
검찰 역시 합수단 폐지로 수사 지체 등의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있다. 지난 8월 29일 남부지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수사의 동력, 신속하고 집중적으로 움직이는 건 (합수단의) 영향이 컸다”며 “책임을 떠넘기는 게 아니라 합수단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차이가 많이 난다”고 말했다.
3년 전 고발인 진술에도 멈춘 수사
검찰은 현재 라임펀드 자금 중 일부가 라임 사태 ‘몸통’으로 지목돼 해외도피 중인 김영홍 메트로폴리탄 회장에 의해 장모씨와 전모씨에게 흘러들어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김 회장은 라임펀드 자금 약 300억원을 투입해 필리핀 막탄섬에 위치한 이슬라리조트를 인수, 실질적으로 지배했던 인물. 지난 8월 29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금감원은 추가 검사를 통해 라임펀드 투자금 중 19억6000만원이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지지단체인 ‘기본경제특별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장모씨에게, 5억3000만원은 민주당 강원도당 후원회장을 지낸 전모씨에게 흘러간 것으로 파악했다. 두 사람이 민주당과 가까운 인사인 만큼, 향후 수사 향방에 따라 ‘라임 정치권 연루 의혹’의 키맨이 될 가능성이 크다.
주간조선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은 2020년 2월 라임펀드 자금이 횡령돼 부동산 시행사인 메트로폴리탄, 이슬라리조트를 거쳐 차명계좌로 흘러들어간 정황을 파악하고도 관련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2020년 1월 13일 김 회장 등 라임 관련 인물들을 고소한 고소인은 라임펀드 자금이 이슬라리조트로 흘러들어간 것을 직접 확인한 후 관련 자료를 검찰에 전달하며 수사를 요청했다. 당시 고소장에는 김 회장 등이 라임펀드 자금 300억원이 투자된 메트로폴리탄을 통해 이슬라리조트를 인수한다는 명목으로 자금을 불법 대여하고, 이슬라리조트 운영자 A씨를 통해 A씨 지인 명의 계좌로 자금을 옮겨 전모씨 등에게 지급했다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얼마전 금감원 조사 내용과 일치한다. 고소인은 이슬라리조트 운영자 A씨 지인 명의 계좌로 옮겨간 자금이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전달됐는지 계좌를 추적해 나머지 자금 흐름을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2020년 2월 18일 고소인의 진술을 받았다. 합수단 폐지로 라임 사건이 형사6부로 재배당된 지 약 2주 만 이다. 최근 고소인은 기자에게 “(남부지검이 수사 지휘하던) 영등포경찰서로부터 긴급한 요청을 받아 8시간 동안 진술했다”며 “경찰이 검찰에 빨리 진술조서를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고, 다음 날 검찰에 전달할 것이라고 전해 오후부터 밤까지 진술했다”고 말했다. 이 진술 후 관련 자료를 추가로 제출하기 위해 2020년 3월 25일 남부지검을 방문해 당시 라임 사건을 담당하던 나모 검사를 만났는데 나 검사가 사무실로 불러 ‘라임 사건을 수사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는 취지로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후 남부지검은 이슬라리조트에 라임 자금이 흘러들어간 내용을 들여다보지 않았다고 한다. 나모 검사가 라임 사건 핵심 인물로 지목된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으로부터 2019년 7월 ‘검사 술접대’를 받았던 검사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은 2020년 10월 김봉현의 옥중편지와 박훈 변호사의 폭로에 의해 알려졌다.
합수단 복원 이후에도 김영홍 회장과 이슬라리조트 관련 수사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오히려 남부지검은 지난 2월 15일 고소인에게 불기소 처분을 통보했다. 진술 3년 만에 결정된 불기소 이유서에는 ‘이슬라리조트 관련 내용을 조사해야 피의자들의 혐의 유무를 명확히 할 수 있는데, 피의자 김영홍은 현재 소재불명이다. 피의자 채모씨는 김영홍의 소재가 발견될 때까지 참고인중지하고, 피의자 김영홍은 소재가 발견될 때까지 기소중지한다’고 명시돼 있었다. 금감원의 발표가 아니었더라면 라임펀드 자금이 김 회장에 의해 횡령돼 이슬라리조트를 통해 장씨와 전씨에게 흘러들어간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할 뻔한 것이다. 검찰은 지난 9월 8일 김 회장 비리 관련 기록을 확보하기 위해 금감원을 압수수색한 것으로 전해진다.
장모씨 둘러싼 상장사의 수상한 거래
이재명 대선후보 지지단체의 임원이던 장씨의 경우 김 회장보다 먼저 이슬라리조트 인수를 시도했던 인물로, 김 회장이 리조트를 인수하면서 4억원가량의 차익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지역도당 후원회장을 지낸 전씨는 2014년 3월 이슬라리조트 내 회람 문서 속 조직도에서 회장(chairman)으로 기재된 인물이다. 김 회장이 이슬라리조트를 인수하기 전 운영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검찰이 장씨와 전씨에게 전달된 라임펀드 자금을 추적하면 정치권 연루 의혹의 진위를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장모씨와 김영홍 회장을 둘러싼 의혹은 이름이 알려진 상장사에서도 불거진 상태다. 장씨는 2022년 1월 국기원과 JC파트너스가 체결한 업무협약(MOU)을 소개한 언론보도에 ‘JC파트너스 회장’으로 등장한다. 장씨는 실제 2021년 후반부터 2022년 중반까지 JC파트너스 회장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등기부에는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JC파트너스 관계자는 장씨에 대한 질문에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2021년 11월 장씨가 회장으로 활동한 JC파트너스의 사모펀드(PEF)에 리더스기술투자가 자금을 출자한 점은 지금도 시장의 의심을 사고 있다. MG손해보험을 인수한 JC파트너스의 자본조달 능력에 금융당국의 의구심이 깊었던 상황에서, 리더스기술투자가 JC파트너스가 운용하는 사모펀드 출자를 통해 MG손보 관련 투자에 3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더욱이 2021년 3월 리더스기술투자의 경영권을 인수한 모회사 ‘에이티세미콘’에는 김영홍 메트로폴리탄 회장의 첫째동생이 2020년 3월부터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리더스기술투자에도 김 회장의 첫째동생과 둘째동생이 각각 사내이사와 감사로 이름을 올렸다. 에이티세미콘은 지난 1월 리더스기술투자를 매각했고, 현재 대표이사 등 주요 경영진이 횡령 혐의로 구속된 데 따라 거래정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