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목적고등학교(특목고)에 다니던 신혜진(17·가명)씨는 지난 9월 18일 충북 영동군에 위치한 ‘해맑음센터’에 들어왔다. 해맑음센터는 전국 유일의 학교폭력 피해 학생을 위한 기숙형 지원 시설이다. “같은 반 학생 한 명으로 인해 따돌림을 당하게 됐다. 전원 기숙생활을 하는 학교여서 하루 종일 가해 학생을 마주해야 했다. 특목고다 보니 반을 바꾸거나 전학을 가는 게 쉽지 않았다.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서 해맑음센터에 왔다.”
4개월 만에 다시 문을 열기까지
주간조선이 신씨를 만난 건 지난 9월 19일 열린 해맑음센터 개소식에서였다. 전날 들어와 해맑음센터에서 하룻밤을 보냈다는 신씨는 “하루밖에 안 됐지만 이전 학교에서도 기숙사 생활을 해서 그런지 적응이 잘되는 것 같다”고 했다. 2013년부터 대전 유성구에 있었던 해맑음센터는 지난 5월 시설 정밀안전진단 결과, 시설 사용 제한 등급인 ‘E등급’을 받아 폐쇄됐다. 당시 입소 중이던 학생 7명은 소속 시도교육청의 가정형 위(Wee)센터 등으로 연계되거나 원적교로 복귀하는 등 뿔뿔이 흩어졌다. 이후 대체 부지를 찾지 못한 해맑음센터는 충북의 학생수련원을 빌려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 이날 기준 입소 학생은 2명이었다.
“같은 학교에서 생활하는데도 그 안에 절대 소속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굉장히 절망적이었다. 반 친구들이 제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느껴지는데 직접적으로 심하게 뭘 한 것은 아니고…. 누구한테 이야기하더라도 예민한 사람 취급받을 것 같고, 내가 진짜 예민한 건가 아니면 이 친구가 나한테 잘못하고 있는 게 맞나 혼자서 끊임없이 고민했다. 내가 뭔가를 잘못한 건 아닌지 자책하기도 했다. 따돌림을 주도한 학생만 그런 것이 아니라 주변 학생들 다 저를 불편해하고 이상하게 보는 것을 아니까 압박감이 상당했다.”
“따돌림은 가벼운 폭력이 아니다”
신씨는 ‘따돌림은 다른 학교폭력보다는 가벼운 것 아닌가’라는 사회적 인식이 가장 억울하다고 말했다. “물리적 폭행, 사이버 폭력 등에 대한 심각성이 많이 다뤄지고 있지만, 사실상 현장에서 가장 많이 일어나는 건 따돌림이다. 대부분의 따돌림 피해 학생들은 피해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해 증거를 못 모았을 가능성이 크고, 증거가 있어도 가해자가 무혐의 처분을 받는 경우가 많다. 저는 지난 4월에 학교폭력 신고를 했는데 아직까지도 학폭 관련 문제가 마무리되지 않았다. 고등학생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끝난 뒤에도 행정심판·행정소송을 걸어 입시가 끝날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경우가 많다. 저는 통화녹음, 카카오톡 대화 내용 등을 모았고, 같은 반 아이들의 진술서가 잘 통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신씨는 자신의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는 해맑음센터에 계속 머무를 생각이라고 말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학교폭력 발생건수는 2015년 1만9968건에서 2017년 3만1240건, 2019년 4만2706건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코로나19 시기 주춤했던 수치는 2021년 4만4444건으로 올라가더니 지난해 6만2056건으로 10년간 최고치를 찍었다. 학생 수는 줄어드는데 학교폭력 발생건수는 높아지자, 정부는 지난 4월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신씨를 비롯해 저마다 다른 아픔을 겪은 학교폭력 피해자들이 그동안 해맑음센터를 거쳐 갔다. 조정실 해맑음센터장에 따르면 2013년 문을 연 이후로 10년간 335명의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이 다녀갔다. 개교 10주년을 겸해 열린 이날 개소식에는 10명 남짓한 해맑음센터 수료생들도 함께했다. 뚜렛증후군(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발생하는 순간적인 움직임과 소리를 내는 등 경련을 일으키는 신경 질환)을 가지고 있는 최모(20)씨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왕따를 당했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뚜렛 장애가 있었는데 (가해자들이) ‘장애인’이라고 손가락질하거나 대놓고 심한 욕을 하고 뚜렛 장애 증상을 따라 했다. 초등학교 때는 반 학생 몇 명이 저를 화장실로 끌고 가서 소변기 앞에서 발로 차기도 했다. 중학교 1학년 때 해맑음센터에서 6개월 정도 지내고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로 돌아갔지만 사실 계속 왕따를 당했다.”
대학교에서 신학을 배운다는 최씨는 “이제는 다 성인이라 그런지 저를 놀리는 사람은 없지만, 학교폭력 트라우마가 사라지지는 않더라”라고 말했다. “우연히 가해자를 만난 적이 있다. 제가 다니던 학원 선생님이 밥을 먹자고 불렀는데 그 자리에 가해자가 있었다. 그때 숨이 막히고 체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등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왔다. 무척 두려웠다. 이후에 선생님께 학폭 피해 사실을 알렸더니 몰랐다고 사과하셨다.”
“어른이 돼도 트라우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2019년 10월부터 4개월간 해맑음센터에 있었던 김모(21)씨는 중학교 때 학교 선배에게 찍혀서 신체적인 폭력 피해를 입었다. “‘티볼’이라고 투수 없이 타자가 공을 치고 달리는 운동이 있는데 이 수업을 2학년과 3학년이 같이 들었다. 여기서 못하면 수업 끝나고 선배들 2~3명에게 불려가서 ‘내리 갈굼’을 당했다. 고등학교도 동네 사람들이랑 같이 다니다 보니 선배들에게 찍혀서 학교를 다니는 게 쉽지 않았다. 제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20년에는 저를 괴롭히던 선배들이 졸업해서 원래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학교에서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김모(19)씨는 “중학생 때 6~7명에게 빗자루나 대걸레로 맞았다”고 했다. “아버지가 파키스탄인, 어머니가 한국인이셔서 혼혈이다. 가해자들은 패드립(부모에 대한 욕설과 비하) 등 인신공격도 많이 했다.” 그는 “지금은 가해자들과 입장이 반대가 됐다”며 “종종 길에서 마주치는데 지금 제 몸집이 크다 보니까 말을 일부러 안 걸고 오히려 저를 피한다”고 말했다.
관계 단절을 경험했던 피해 학생들은 해맑음센터에서 ‘다툼을 해결하는 방식’을 배웠다고 입을 모았다. 최씨는 “학생 간의 다툼이 생겼을 때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서로 기분이 나빴던 점이나 불편했던 점을 듣고 그걸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를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어줬다”며 “싸우더라도 쌓였던 감정을 풀고 화해하는 시간이 있어 좋았다”고 했다.
음악교사 윤석진(40)씨는 “실제로 학생들이 다투거나 싸우면 바로 상담 자리를 마련한다”며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알아보는 상황극을 하기도 하면서 아이들이 갈등을 대하는 방식을 스스로 깨우치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서로 다른 사람이 한 공간에 있다 보면 갈등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저희는 오히려 갈등이 조금씩 생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며 “다툼 상황을 직접 해결하는 경험을 해봐야 학교로 다시 돌아갔을 때 비슷한 사례에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학폭 피해자들은 자신을 공격한다
해맑음센터에서 10년째 피해 학생들과 소통했던 윤씨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내 편’”이라고 했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 어디에도 화를 분출하지 못하고 있다가 결국에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구나’ ‘내가 뭔가 잘못했구나’ 하면서 본인을 공격하는 학생이 많다. 심리적으로 위축돼 자해를 하기도 한다. 피해 학생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러한 상황에서 ‘네가 잘못한 것은 없어’ ‘잘했어’ 등의 말을 해주며 공감하길 원한다. 피해 학생의 상처를 어루만져줄 수 있는 말이 필요한데 학교에서는 조금 어렵다 보니까…. 부모님께 털어놓으면 감싸주시는 부모님도 있지만 ‘네가 왜 그렇게 대처했느냐’며 편을 들어주지 않는 부모님도 계시다 보니 그런 부분들이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 같다.”
국어교사인 김서영(28)씨도 “피해 학생들은 어른에 대한 신뢰감이 떨어진 상태로 오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학교폭력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려는 교사의 모습에 상처받은 학생들이 많다. 피해를 입은 학생의 부모는 오히려 아이를 탓하거나 본인이 더 우울해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가정에서 불화가 일어나고 사이가 안 좋아진다. 이렇게 어른에 대한 신뢰가 깨진 아이들을 위해서 저희 교사들은 피해 학생의 목소리를 많이 듣고 지지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피해 학생에게 어른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해맑음센터에선 보호자를 위한 프로그램도 월 2회 진행한다. 윤씨는 “피해 학생에게 부모님이 어떻게 접근하고 대화를 해야 하는지를 알려드리기도 하지만 부모님 위로를 많이 해드린다”고 했다. “장기간 학교폭력 피해에 노출되어 있는 학생의 부모님을 보면 굉장히 힘들어하신다. 부모님이 지칠 대로 지쳐서 오시는 경우도 많다. 그런 부모님께 ‘이렇게 하셔라 저렇게 하셔라’ 하는 건 더 힘들 게 만드는 것일 수 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고 위로해드리고, 학부모 음악 치료도 하고, 이야기도 듣고, 펑펑 우실 때는 함께 울어드리고 있다.” 하지만 임시 거처가 접근성이 낮다 보니 이러한 보호자 치유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도 많다. “부모님이 여길 오시려면 하루 연차를 쓰셔야 한다. 정말 필요한 프로그램인데 강제로 오시게 하기 어려운 위치라서 여러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17개 시도교육청이 공동 위탁한 기관
해맑음센터는 교육부가 지정하고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이 공동으로 위탁한 대안교육 기관이다. 교육부 지원을 받아 숙식비를 비롯한 위탁교육비 전액을 무료로 운영한다. 윤씨는 “해맑음센터는 출석 인정이 된다”며 “센터 입소생의 연령대가 다양하고 학업 편차가 있기 때문에 통합 과정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맑음센터는 집단 상담이나 미술·음악 치료 등 상담과 치유 수업의 비중이 높은 편이지만 사실상 모든 수업이 상담과 다름없다. 김씨는 “국어 수업을 하면서도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과 달리 책 한 권을 읽고 난 뒤의 생각을 나누는 등 대화가 많이 이뤄진다”며 “수시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평소에 대화를 하면서 속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날 개소식에는 조정실 해맑음센터장을 비롯해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자문을 맡고 있는 박상수 변호사, 충북 영동교육지원청 관계자, 교육부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조정실 센터장은 “임시시설로 들어오게 돼 언제까지 머물 수 있는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라며 “교육부에서 국가 수준의 학교폭력 치유·회복 전문기관을 만든다고 했지만 여전히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강 의원은 “전국에 학교폭력 피해 학생과 가족이 너무 많다”며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에 해맑음센터 같은 치유기관이 더 많이 생겨야 하고, 정부와 국회가 예산 등의 지원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맑음센터는 학생수련원 공간의 1층과 2층을 활용하고 있다. 1층에는 수업을 진행하는 다목적실과 교무실, 상담실, 카페테리아 등이 2층에는 남·여 기숙사, 교사 기숙사 등의 생활공간과 북카페, 채움터 등 학생들이 시간을 보내고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조성돼 있다. 이전에 비해 좋아진 시설에도 불구하고 해맑음센터 관계자는 “학생들 급식이 가장 걱정”이라고 했다. “여기가 원래 수련원으로 쓰이다 보니까 각 방마다 조리시설이 있기는 하지만 가스레인지가 한 구밖에 없다. 아직은 학생 수가 많지 않아 교사 기숙사에서 밥을 해서 먹이거나 차를 타고 인근 식당으로 이동해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1층 카페테리아에 주방을 만들고 싶었지만 불가능하다고 하더라. 여기가 임시 거처이다 보니 얼른 대체 부지를 찾으면 좋겠다.”
“정책 만들 때 우리 얘기도 들었으면…”
앞서 해맑음센터에 막 입소한 신씨는 “학교폭력 관련해서 법을 바꾸고 정책을 만들 때 어른들끼리 상의해서 정할 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물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특히 피해자 보호조치가 미흡하다. 즉시분리기간을 3일에서 7일로 늘렸다는데 일주일 가지고 기억이 흐려지겠느냐. 일주일이 지나면 피해 학생은 당장 학교로 돌아가지는 못하겠고 그렇다고 학교를 안 가자니 자신의 미래에 영향이 가고. 엄청 부담이 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신씨는 “본질적으로 ‘잘못했으면 처벌을 받고, 피해자는 보호를 받는다’는 것이 확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 가면 ‘여기는 선도 목적의 기관이지 처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선도를 하려면 일단 잘못한 것에 대한 처벌이 있어야 하지 않나. ‘가해 학생의 미래도 생각해야 한다’ ‘선도가 목적이다’라며 계속 (처분을) 깎는데 이건 그냥 봐주기다. 가해 학생 측에선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굉장히 많다.”
인터뷰가 끝나가자 신씨는 “그동안 말할 기회가 없어서 못 했지만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부분이었다”고 했다. 그는 “억울한 부분에 대해서 말을 한다고 들어주는 사람도 없거니와 말을 했을 때 오히려 불리해지는 상황도 생기다 보니 말을 할 수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기자가 ‘꿈이 무엇이냐’고 묻자 신씨는 “꿈이 꼭 장래희망일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며 “아로마테라피, 미술 치유 등 다양한 힐링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힐링센터를 짓고 싶다”고 답했다. 자신이 겪은 피해 상황을 담담하게 풀어내던 신씨의 눈이 가장 반짝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