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디케의 눈물’이 베스트셀러다. “등에 화살이 꽂힌 채 길없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겠다”라며 출간한 에세이다. 구매자의 40%가 50대, 30%가 40대라고 한다. 제목의 디케(Dike)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이다. 신들의 왕 제우스와 율법의 여신 테미스 사이에서 태어난 세 딸 가운데 1명이다. 디케는 로마 신화에서는 유스티치아(Justitia )다. 정의(Justice)라는 영어 단어의 어원이다.

책의 제목에 눈물을 넣은 것은 조 전 장관 본인과 가족을 포함한 검찰 수사가 정의의 여신이 눈물을 흘릴 상황이라는 뜻인 듯 싶다. 그는 책에서 “정의의 여신 디케는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가 아니다. 술에 취해 칼을 휘두르는 망나니는 정의의 상징이 아니다. 법의 이름을 빌린 근육질 권력 행사, 인간에 대한 연민과 배려가 없는 법률 해석과 적용은 법치와 거리가 멀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과 가족들에 대해 연민과 배려가 있는 법을 적용해 달라고 하는 것 같다.

◇정의의 여신과 눈가리개

책의 내용은 제쳐두고 정의의 여신의 모습에 대해 조 전 장관은 잘못 알고 있다. 서양의 대표적인 법의 상징인 정의의 여신은 일반적으로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손에는 주로 칼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다.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눈을 가리고 있느냐, 아니냐다. 조 전 장관은 눈을 가리고 있어야 정의의 여신이라고 한다. 정의의 여신은 (공정한 재판을 위해)눈을 가리고 있고,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는 눈을 뜨고 있다고 한다.

그는 “디케의 경우 눈을 가리고 있다. 심판을 받는 사람의 계층, 계급, 성별 등을 보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반면, 네메시스에 대해서는 “눈가리개가 없다. 저울이 없다. 오직 앞에 있는 사람을 보고 휘두르는 칼만 있다”고 했다. 최근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서 “정의의 여신 디케와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는 그리스·로마 시대에도 혼동되기도 했지만, 정립돼 있는 외양 상의 차이가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겉모습이 다르다는 것이다.

◇눈을 가린, 눈을 감은, 눈을 뜬 정의의 여신들

독일 등 유럽 주요국의 광장이나 시청, 법원 등에 서 있는 동상이나 벽면에 새겨진 부조를 보면, 정의의 여신은 세 가지 경우가 있다. 눈가리개를 하고 있거나, 눈가리개는 하지 않고 눈을 감고 있거나, 눈을 뜨고 있다.

눈을 가리거나 눈을 감고 있는 경우는 빈부, 사회적 지위, 신분 등에 영향을 받지 않고 법과 양심에 따른 공정한 재판을 하겠다는 의미다. 눈을 가리지 않은 경우는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살펴서 정의로운 재판을 하겠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눈을 가리지 않았다

독일의 법철학자 구스타프 라드부르흐에 따르면, 그리스 신화에서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가리지 않고 칼만 들고 있었다. 그러다 중세부터 저울이 등장했고, 눈을 가리기도 했다. 눈가리개는 애초에는 야유의 뜻이었다고 한다. 정의의 여신이 눈이 가려져서 정의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내용은 조 전 장관이 교수였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의 최종고 명예교수가 지난 1994년에 쓴 ‘정의의 상(像)을 찾아서’라는 책에 나온다.

책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뢰머광장의 정의의 여신상, 독일 잘츠부르크의 옛 시청 앞 여신상, 로마의 교황 이노센트8세 묘비에 새겨진 여신상, 미국 워싱턴 D.C.의 연방 대법원 앞 여신상 등 눈을 뜨고 있는 정의의 여신상을 촬영한 사진이 실려있다.

◇대법원 여신상도 눈을 뜨고 있다

국내에도 정의의 여신상이 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 출입문 상단에 정의의 여신은 눈가리개를 하지 않고 두 눈을 뜨고 있다.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고, 앉아있는 모습이다. ‘칼을 버린 여신상’이라며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 등과 관련짓는 농담도 하지만, 해외에도 칼을 들고 있지 않은 정의의 여신상이 있다. 독일 함부르크 시청에 세워진 정의의 여신상은 법전과 저울을 들고 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로비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 왼손에는 법전, 오른속에는 엄정한 판결을 뜻하는 저울을 들고 있다./연합뉴스

국내 정의의 여신상 가운데 눈을 가리고 있는 모습은 서울대 법학도서관 입구에 부조 형식으로 제작된 정의의 여신상이 대표적이다. 오른손에 칼을 들고, 왼손으로는 저울을 높이 쳐든 모습을 하고 있다.

조금 다른 것은 서울 세종문화회관 근처에 있는 옛 대한변호사협회 회관 앞에 세워진 여신상이다. 눈가리개를 하지 않고 있지만, 눈을 감고 있다. 변호사 비리 등이 터질 때마다 ‘변협 회관에 있는 여신상이 실눈을 뜨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돌기도 했다.

정의의 여신상은 반드시 눈가리개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조국 전 장관의 말과는 다르다. 여신상의 모습은 여신상을 만든 사람들의 바램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눈을 부릅뜨고 있기를 원하던 시절도 있었을 것이고, 눈을 가린 채 빈부와 지위 고하에 따라 판결이 달라지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시기도 있었을 것이다. 정의의 여신이 어떤 모습이든 정의가 구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