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밀양에 사는 설모(67)씨는 최근 스마트폰으로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포기했다. 집 근처 복지센터에서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찾지 못한 설씨는 지인 권유로 한 인터넷 구직 사이트에 들어갔다. 하지만 처음 시도한 설씨의 인터넷 구직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고 한다. 사이트 회원으로 가입하려면 본인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인증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구직 사이트 이용 방법도 생소했다. 설씨는 “옛날엔 수기로 이력서를 써서 직접 냈는데, 요즘은 인터넷으로 내라 하니 일자리에 지원하는 것조차 자신이 없다”고 했다.
고령화 사회를 맞아 65세 이상 ‘실버 세대’의 구직 희망률이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이들은 디지털 격차로 취업 시장에서 소외되고 있다. 자신들이 원하는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정부의 일회성 일자리를 전전하거나, 온라인 절차가 복잡해 구직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대구에 사는 박문근(67)씨는 지난달 지인을 통해 집 근처 한 가구 공장에서 자재 관리자를 구하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박씨가 연락하자 업체 관계자는 “지원자가 많으니 온라인 이력서를 넣어두면 연락 주겠다”고 했다. 박씨는 주변 도움으로 온라인 이력서를 써보려 했지만 포기했다. 박씨는 “그동안은 지역 신문이나 구인 광고 전단, 지인 소개를 통해 일자리를 구해왔는데, 이제는 앱이나 인터넷을 이용 못 하면 취직도 못 한다”고 했다.
본지가 지난 16일 SM C&C 틸리언프로에 의뢰해 만 60세 이상 노인 707명에게 ‘일자리 찾을 때 가장 어려운 점’을 물었더니, 68.1%가 ‘일자리 정보를 어디서 구해야 할지 몰라서’라고 답했다. 다수 노인이 일자리는 ‘가족 및 지인 소개(33.1%)’로 얻었다고 답했다. 인터넷을 통한 구직은 28%로 최근 대부분 기업이 인터넷을 통해 구인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호승 전국시니어노조 위원장은 “구직 앱 이용이 어렵다는 사람은 그나마 나은 경우고, 아예 앱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경북 김천에 사는 이모(70)씨는 “딸에게 도움을 받아 올해 초 처음 인터넷 채용 정보 사이트에 들어가 봤는데, 시급이나 복리 후생 정보가 자세히 나와 있어 깜짝 놀랐다”며 “주변인들에게 소개받는 것보다 대우가 더 좋은 곳을 고를 수 있었다”고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고령층(55~79세) 10명 중 7명은 계속 일하길 희망했다. 올해 5월 기준 고령층 인구는 1년 전보다 38만4000명(2.5%) 늘어난 1548만1000명인데, 이 중 68.5%(1060만2000명)가 일을 원한 것이다. 하지만 고령층 중 지난 1년간 구직 경험이 있는 비율은 19.8%에 그쳤다. 일하고 싶은 노인은 많지만, 이 중 상당수는 ‘일자리 정보 부족’ 때문에 구직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분석된다.
결국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무작정 업체에 전화를 거는 노인들도 적지 않다. 경기 군포시에 사는 김은덕(69)씨는 보름 동안 40곳 이상 중소기업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최근 남편의 사업 부도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이곳저곳 이력서를 냈지만 불합격했다. 전화로 구직 활동에 나선 김씨는 몇 곳에서 합격 소식을 들었지만, 막상 찾아가니 급여가 적거나 출퇴근 거리가 너무 멀어 결국 포기했다. 김씨는 “스마트폰 앱에 일자리 정보를 한 데 모아놓은 곳이 있다는데, 회원 가입부터 어려워 포기했다”며 “취직하려는 곳이 어떤 일을 시키는지, 급여는 얼마인지 쉽게 볼 수 있으면 이 고생은 안 했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격차로 취업 시장에서 소외되는 노인들을 위한 디지털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그동안 노인을 돌봄의 대상으로만 봤지만, 본인 의사에 따라 일하고 싶은 노인은 예비 근로자로 대우하고, 맞춤형 구직 정보를 한눈에 보기 쉽게 정부 차원에서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