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2070년에는 생산가능인구와 고령인구의 역전 현상이 발생할 것이다. 젊은 사람 한 명이 노인 한 명을 업어야 한다. 이런 상태로 나라가 유지될 수 있을까? 정부는 출산율 제고를 위해 지난 15년간 280조원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합계출산율은 오히려 낮아졌다. 다양한 정책을 펼쳤는데 효과를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방법은 딱 하나다. 다른 나라에서 사람을 데려오는 것이다.”

문병기(60) 한국이민정책학회장(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은 ‘노동력을 원했는데 사람이 왔다’는 이민 관련 격언을 소개하며 이민을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는 정책으로만 생각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노동력을 가져오는 것은 필요 없어지면 돌려보내는 개념이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대해서는 안 되는 존재다.” 지난 10월 16일 서울 종로구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문 회장을 만났다.

- 이민이 꼭 필요한가. "그렇다. 현재 우리나라가 매우 다급하다. 작년에 합계출산율 0.78이라는 결과가 나오면서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그러면서 이민이 국가적으로 이슈가 됐다. 외신들은 '한국이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 대한민국이 사라진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민 정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노무현 정부 때부터니까 20년 이상 됐다. 당시 장관들이 '앞으로 인구가 감소할 겁니다'라고 하니 노 전 대통령이 '답은 이민밖에 없네'라고 말했다고 전해 들었다. 20년 이상 된 논의를 일반 국민들이 잘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 우리나라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이민자로 봐야 하나. "지금 우리나라에 있는 외국인들 중 상당수는 가능하다면, 또는 법망을 피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에 계속 있고 싶다는 이들이 많다. 이민자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학술적으로 1년 스테이냐 2년이냐 이런 건 별 의미가 없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법제적으로는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나라가 아니었다. 이민이라는 개념 자체를 별로 생각하지 않는 나라다. 주로 외국인 근로자 형태로 이야기했고 실질적인 주무 부처도 고용노동부였다. 그나마 이민이라는 개념이 살아있는 곳이 여성가족부다. 국제결혼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소정의 절차를 거치면 영주, 그다음 바로 국적 취득으로 넘어가는데 그게 바로 이민이다. 유일하게 정식으로 이민의 개념에 맞는 정책을 폈고 지금도 하고 있는 곳은 여가부밖에 없었다."

- 사실상 노동력의 개념으로만 외국인을 대해 온 것 아닌가. "소수의 결혼이민 여성 외 2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은 그냥 노동력이다. 노동력으로 들어왔는데 원래 말한 입국할 때의 그 약속을 어기고 남아있는 사람(미등록 체류자)이 250만명 중 20% 가까이 된다."

- 단순 노동력이 아니라 우수 인재를 유치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들어온다고 지적하는 이유는 한국이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더 좋고 임금 수준이 높기 때문에 그런 거다. 10년 이상 통계를 살펴보면 고급 인력 유치에는 변화가 없다. 외국인 정책 기본 계획을 내놓고 대략 10년 전부터 국제적 우수 인재를 유치해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겠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왜 그럴까. 국제 인재가 찾을 만한 임금 수준과 같은 인프라가 모자란다."

- 그 정도로 한국이 매력이 없는 건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저(底)숙련 외국인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의 보호를 받는다. 그러면 모국보다 많게는 3~4배를 벌 수 있다. 외국에서 명문대를 졸업한 석·박사가 있다고 치자. 미국에서는 기본 10만달러 이상을 번다. 조금만 경력을 더하면 바로 15만~20만달러로 몸값이 뛴다. 우리 돈으로 2억6000만원이다. 그 정도 줄 회사가 많을까. 한국이 그다지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다. 차라리 싱가포르가 낫고 다른 유럽 국가가 더 괜찮은 거다. 그러니 저숙련 노동력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고 그 사람들은 악착같이 체류하고 나아가 정착하고 싶어 한다. 현장에서는 인력이 급하니까 그 사람들 중심으로 자꾸자꾸 열어주게 된다."

- 우리 문화 자체의 배타성을 지적하는 사람도 많다. "이민자들이 무조건 편하지는 않을 거다. 내가 이민정책학회장이니까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조금만 결을 달리하면 무조건 열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대책 없이 열어야 한다는 말과는 다르다. 철저하게 준비해서 꼭 필요한 사람들을 선별해서 잡아야 한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과제가 있다. 우리가 누구를 잡아야 할지 판단해야 한다. 인력 수요 분석과 활용 계획이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작업이다. 그게 되면 문을 활짝 열어도 우리한테 큰 타격이 없다."

- 어느 정도 수준의 분석이 필요할까. "우리나라에서 만약 용접공이나 프로그래머가 몇 명 필요하다고 치자. 이 사람들이 오게 되면 '어느 공장, 혹은 어느 기업으로 가서 이런저런 일을 하게 될 것이다'라는 수요 분석에 따른 활용 계획이 세워져야 한다. 일종의 직무 분석이고 모집 광고 같은 것이다. 맞는 사람이 없으면 다른 기관이나 대학에서 보완해주고, 자질이 부족하다면 일정 기간 교육을 거친 뒤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사전교육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으면 한국에 들어와도 된다. 이 친구는 도망갈 필요도 없고 도망갈 수도 없다. 딱 짜인 틀 속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 지원자가 많을 경우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을 어떻게 골라낼 수 있나. "주도권은 우리나라가 갖는다. 입국자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우리한테 있는 거다. 그것까지 상대국에 주면 안 된다. 주권의 문제다. 지금 법무부에서 입국 비자를 받는 사람의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동안은 이런 게 없었다. 그동안은 출입국관리소에서 쓰라고 하는 종이로 돼 있었다. 자기 나라 글씨로 꾸불꾸불 쓰는데 읽기도 어렵다. 연락처 하나 쓰고 들여보내는데 시간이 지난 뒤 그 번호로 전화하면 거의 절반 정도가 연락이 안 된다. 사실상 불법체류로 가는 길이 열려 있는 건데 그걸 막자는 거다. 정교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데려올 때 이미 갈 곳이 정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요 분석과 활용 계획이 정교하게 돼 있으면 많은 지원자 중에서 딱 필요한 사람만 우리가 권한을 갖고 뽑으면 된다. 그런 식으로 문호를 개방하면 10년 아니라 20년을 살게 해도 된다."

- 저출산 등으로 사람이 부족하니 나라 밖에서 사람을 끌어오자는 개념으로 이민을 이해하는 것 같다. "거기까지만 말하면 노동 정책이다. 그런데 이민 정책은 인구 정책이다. 인구는 한국에 들어와서 대한민국 국민이 될 잠재적 존재를 말한다. 근대국가 개념으로 보면 한반도라는 땅에 붙어 살면서 '우리'라는 생각을 하면 그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대한민국에 충성심을 가지고 세금을 내고 전쟁이 일어나면 내 아들 내 딸을 보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살면 그 사람이 얼굴이 까맣든 코가 크든 그 사람은 한국 사람이다. 다만 남은 것은 법적으로 국적을 줄 것인지 여부다. 누가 오든 간에 이민 정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 나라를 계속 유지할 뿐 아니라 더 성장하게 하는 데 필요한 사람을 확보하는 거다. 순수라는 표현이 그렇지만 순수 한국 사람이 줄더라도 대한민국의 국민이 줄어들 일은 없다."

- 보통 이민은 경제적 효과로 논의되는 경우가 많다. "이민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생기고 사회 유지와 발전이 보장될 수 있다. 이민 정책의 궁극적인 베네핏이다. 하지만 전제가 있다. 걸맞은 역할, 그리고 한국인과 똑같이 살 수 있도록 준비된 사람이라는 말이 붙는다."

- 최근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언급하면서 최저임금을 주지 말고 들이자는 얘기도 있었다. "최저임금을 벗어나는 저임금으로 데려오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일부는 싱가포르도 최저임금보다 낮게 주는데 우리는 왜 안 되냐고 말하지만 그 근거가 빈약하다. 싱가포르는 국가라기보다는 서울보다 작은 사실상의 도시다. 국격을 논할 필요가 없는 나라다. 국격이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 있는데 꽤 심각한 의미를 내포한다. 예를 들어 서로 경쟁하는 한·중·일 모두 숙련된 인구가 부족하다는 공통의 문제를 갖고 있다. 모두 인력이 필요하다. 세 나라 중 우리가 최저임금제도가 있는데도 이를 어긴다면 미래에는 이 사람들의 국제 이동이 일어날 수 있다. 한국에서 일본 또는 중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이건 치명적인 후폭풍이 생긴다. 이런 나쁜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우린 도태될 수도 있다."

- 그동안 해왔던 이민 정책은 무엇이 문제였을까. "'진짜' 이민을 생각하지 않고 노동력 부족을 채우는, 노동력 정책이었다는 게 첫째다. 그다음에 유사중복이다. 이민 정책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결혼이민은 여가부에서 책임지고, 근로자들이 부족한 부분은 고용부에서 책임지고, 필요한 교육적인 부분은 교육부에서 책임지라고 나뉘어 있었다. 우선순위가 질서정연하게 돌아가면서 하나의 큰 그림으로 그려져야 하는데 이게 각자 놀았다. 예산 중복과 낭비도 생겼다. 그래서 이민청이 필요하다."

- 일단 이민청부터 세운 후 사람부터 들여오자고 하면 안 되나. "급한 대로 일단 진행한다? 프랑스처럼 폭동이 일어나고 갈등이 증폭된다. 프랑스는 그나마 아프리카에서 식민지를 거느렸고 그곳의 민족성도 말살시켰다. 그쪽에서 이민자들이 들어와 적어도 50년 정도는 지냈는데도 지금 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런 것도 없는 상태에서 사람만 그냥 데려오면 30년도 못 가서 문제가 터질 수 있다. 프랑스보다 더 심각한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 이민청은 무엇을 해야 하나. "단기적으로는 부처 간 유사중복을 털어내야 한다.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 거다. 그리고 수요 조사와 활용 계획을 치밀하게 해서 국내에 부족한 생산성을 보완해야 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만 해도 '청(廳)'으로는 역부족이다. 청장은 차관급이다. 학자들은 더 높은 '부(部)'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물론 '청'이라도 과거 식약청(현 식품의약품안전처)처럼 독자적인 정책 결정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괜찮다. 대통령의 강력한 교통정리가 있으면 그런 역할이 가능하다."

- 들을수록 이민 정책은 신중히 진행해야 할 문제로 보인다. “하지만 빨리 열어야 한다. 수요조사나 활용계획을 짠 다음에 인프라 보완부터 해놓고 문을 바로 열자는 거다. 법무부도 사전교육의 중요성 등 사전 준비에 대한 아이디어를 충분히 갖고 있다. 그걸 바탕으로 외부에 용역도 준다. 그런데 돈과 조직이 없다. 조직과 사람은 예산에서 나오니 유사중복을 털어내 여유분을 확보한 다음 얼른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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