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0일 경남 진주시의 한국국제대학교 보건복지관 건물. 폐교된 이후 학생들과 교직원이 모두 떠나 텅 비어 있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누군가에게는 추억이고 기억일 테니 쓰레기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보존하려고 해요.”

폐교 대학 캠퍼스를 떠나지 못하고 샅샅이 뒤지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10월 20일, 폐교된 지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은 경남 진주시 한국국제대학교 캠퍼스. 축구장 60개 크기(약 40만㎡)의 거대한 학교 부지 곳곳에는 쓰레기더미가 쌓여 있었다. 부식되어 글자가 떨어진 안내판과 무너져내린 벤치, 누군가 몰래 버리고 간 듯 찌그러진 폐차가 눈에 들어왔다. 학생과 교직원이 모두 떠난 이곳에서는 기록물 이관 작업이 한창이었다. 길고양이만이 오가는 텅빈 교정, 16명의 사학진흥재단 직원들과 재단이 고용한 기록관리 전문업체 직원들이 머물며 기록물 수거작업을 하고 있었다. 수명이 다한 학교에서 살아숨쉬던 역사를 찾아 정리하고, 학생들의 방치된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모습은 흡사 ‘유품 정리사’ 같았다.

녹슬어버린 한국국제대학교 농구장과 테니스장.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최대 규모 기록물 보유 대학, 폐교 그 후

교육부 산하 기관인 한국사학진흥재단은 사학교육기관 경영 개선을 지원하는 곳이다. 2012년부터 폐교 대학이 대거 발생하면서 폐교대학의 학사·인사기록물(DB, 문서) 이관, 통합증명발급서비스 운영, 특별편입학 업무 지원 등 폐교 기록물 관리도 맡고 있다. 교육부가 공식 확인한 폐교 대학은 2000년 이후 총 21개. 문을 닫은 국립대학이 주변 학교에 흡수되며 통폐합되는 것과 달리 사립대학은 대부분 폐교절차를 밟게 된다. 이 대학들이 남긴 기록물은 비(非)전자 기록물 7540상자(7만2372권)와 학생 51만8134명, 교직원 1만6720명 학사·인사 전자 자료(DB)다. 재단 직원들이 폐교 대학 건물을 직접 돌며 캐비닛을 열고 기록물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고 분류하는 ‘수작업’을 한 결과물이다. 여기에 한국국제대의 비전자기록물 약 3만권, 전자문서 13만건, 학생 9만명, 교직원 2000명의 자료가 더해진다. 이는 폐교 대학 기록물 이관 사상 ‘가장 많은 기록물’ 이관이라고 한다.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을 따라 한국국제대학의 H동, 보건복지관 건물을 찾았다. 허리까지 자라난 잡초를 건너 출입금지구역의 자물쇠를 열자 먼지 쌓인 로비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한국국제대학의 대표 학과였던 간호학과 학생들이 공부하던 건물이다. 불 꺼진 강의실에는 해골 등신대가, 물리치료 실습실에는 수십 개의 병원용 침대가 남아 있어 스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침대 위에 마네킹이 그대로 누워 있었다고 한다. 학생들이 사용하던 책상과 사물함에는 시간표와 이름표, 전공 교재가 고스란히 남아있고, 폐교 이후 개인소지품을 찾으러 왔던 학생들이 칠판에 적은 듯한 문구 ‘김○○ 왔다 감’도 폐교를 실감하게 했다.

한국국제대학교는 1978년 개교한 사립대학으로 2003년 4년제로 전환했으나, 재정난으로 파산해 지난 8월 31일 45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변인영 사학진흥재단 대학구조개선지원센터장은 “오랜 역사나 4년제라는 특성, 가장 많은 기록물 등 지금까지의 폐교된 21개교 중 최대 규모의 폐교 작업”이라고 밝혔다. 2000년대 초, 한때 3000여명에 육박했던 이곳의 학생수는 폐교 직전 400여명까지 줄었다. 올해 입학한 신입생은 고작 27명. 폐교 후 한 달 사이 이들의 특별 편입학이 진행됐다. 재학생 359명이 1차 편입학을 신청했고, 그중 347명이 경남과 부산, 경북지역 (전문)대학으로 편입학을 마쳤다. 나머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2차 편입학 절차 또한 계속될 예정이다.

간호학과 생활공간에는 앳된 표정의 대학생들이 MT, 축제 등을 기념해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파산관재인이 ‘교직원 등 모든 근로자 및 학생들은 개인용품을 챙겨 비워주길 바라며 향후 외부인 출입을 금한다’고 공지하며 폐교 시점으로부터 보름 남짓 시간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처 찾아가지 못한 추억들이다.

이관 후 재확인 절차를 기다리고 있는 이관상자들. photo 한국사학진흥재단

출석표부터 학사 가운까지 “다 쓰일 데가”

김현정 사학진흥재단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은 “졸업 앨범, 학과 현수막 등은 쓸모없다고 여길 수 있으나 당사자에겐 대학생활의 추억이 기록된 소중한 기록물”이라며 “이들은 재단에서 수거해야 할 목록 중에서도 후순위지만, 최대한 챙겨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보존·관리해야 하는 폐교 대학 기록물의 범위는 상상 이상이었다. “공공기록물법에 따르면 관리 대학에서 운영 중에 생산 접수한 모든 기록물들은 이관 대상이에요. 유형별로 수거 방법과 보관 방법, 보존기간도 달라요.” 출석부, 성적전표, 학점포기신청서, 교수평가표 등 학적부, 인사 기록, 지출회계가 최우선적으로 챙겨야 할 물건들이다. 그 외에 대학에 남은 감사패와 트로피, 학사 가운 등 행정 박물(博物)까지도 챙긴다. 언젠가 있을지 모를 ‘쓸모’를 위해 재단이 보관해두는 것이다. 그 쓸모는 크게 역사적 가치와 현대적 서비스로 나뉜다. 예컨대 쥐를 가지고 실험했던 연구일지는 추후 또 다른 연구데이터에 활용될 수 있고, 지출회계는 학교와 관련한 행정소송에서 요청되는 경우가 많다. 김현정 요원은 “한국국제대학이 단순히 대학 하나라기보다 50년이 가까운 세월 동안 진주시라는 지역사회와 맞물려 각종 희로애락을 겪었다는 점에서 바라보면 더욱 기록사적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0월 20일 수거작업이 한창인 한국국제대 대학본부 로비.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폐교 후 관리 안 되는 기록물들

김 요원은 교수 연구실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도둑이 다녀간 것처럼 캐비닛이 온통 열려 있고, 어질러진 책상 주위로 모니터도 냉장고도 켜져 있는 상태였다. 조심스레 연구실 문을 연 김 요원은 아무것도 손대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교수 연구실 안에 있는 것들은 사적인 영역으로 가져가지 못하게 되어 있어요. 여기 놓인 학술지는 기록물이며 저희 관리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교수연구실 내부에 있기 때문에 수거해갈 수 없어요. 학교 측에서 취합해 건네주어야 하는데 아직 인식이 부족해요. 학생들의 성적표와 과제물을 본인 소유라고 생각해 가져가거나 임의로 처분하는 교수님도 있어요.” 그는 이렇듯 ‘대학과 개인 중 누구의 소유인지’ 경계가 애매한 기록물들이 여전히 많고 사람들이 기록물법을 잘 알지 못하기에 기록물이 유실되는 등 관리가 어려운 문제가 존재한다고 했다.

수거한 기록물들은 모두 파란 수거상자에 넣어져 대학본부 1층 로비에 모은다. 대학 설립자인 강명찬 박사의 흉상 앞에서 직원들은 수거상자마다 모인 기록물을 꺼내 엑셀파일로 기록하고 이관상자에 재분류해 포장한다. 301, 302… 넘버링된 박스는 로비 구석에 차곡차곡 쌓여 산을 이뤘다. 그렇게 모두 포장된 박스 1900여개는 일주일 뒤인 10월 27일 대구 동구 혁신도시에 있는 한국사학진흥재단으로 옮겨졌다. 기록물을 실은 5t 트럭 5대가 모두 하차구역에 도착하면, 분류정리실로 옮겨 포장된 박스를 풀고 분류가 잘 되어 있는지 다시 한번 엑셀파일과 대조하며 재확인한다. 이 확인 과정이 끝나면 이름을 새로 뽑아 보존상자에 편성한다. 보존상자에는 상자번호, 생산연도, 생산기관, 업무명이 기재된다. 이후 알맞은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폐교대학 문서고에 정리되어 ‘쓸모’를 기다리게 된다. 이들은 공공기록물관리법 등에 따라 짧게는 일년, 길게는 영구적으로 보관된다. 예컨대 학적부와 인사기록카드는 70년 동안 보관된다. 이 보존기간이 지나고 나서야 폐기가 가능하다.

대구광역시에 위치한 폐교대학 문서고.

복도까지 쌓인 기록물… 1년 만에 증축 계획

재단의 이 폐교 대학 문서고는 불과 작년 말에 생긴 시설이다. 지난 10년간 재단은 폐교 기록물을 보관할 데가 없어 경기도 이천 한 물류창고에 월 300만원씩 내고 보관했었다. 그러다 44억원을 들여 재단 옆에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1411㎡ 규모의 기록관을 완공하고 지난 봄 기록물을 옮겼다. 그러나 물류창고에 있는 기록물들을 모두 문서고로 옮기자마자 문서고의 98.6%가 찼다. 남은 1.4%, 두 칸의 모빌랙이 한국국제대의 자리다. 결국 문서고가 차서 넘쳤다. 변인영 센터장은 “한국국제대학교의 기록물이 보관될 장소가 부족해 부득이하게 3층 복도에 일부를 보관하게 됐다. 가장 보존기간이 짧고 덜 중요한 문서들로만 구성한 박스다”라고 설명했다. 필요성을 인정받아 문서고 설립 1년 만인 내년에 정부에서 3층 문서고를 증축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전까지 학생들의 개인정보는 이 3층 복도에, 수거상자인 채로 보관하게 된다.

사학진흥재단 내부의 보관장소 뿐만아니라, 분류장소도 협소한 실정이었다. 지난 10월 30일 운동기구들이 놓인 사학진흥재단의 체력단련실 한편에서는 스캔 작업이 한창이었다. 문서고의 여분 보관 장소 확보를 위해 종이로 된 학적부를 모두 스캔해 디지털화하는 작업이다. 디지털화되어 사본이 보관되면, 공공기록물법 시행령 제29조에 따라 원본을 폐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디지털이 아닌 수기로 종이 학적부를 기록하는 대학이 많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부분의 사립대학이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규모가 큰 사립대학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체 시스템을 구축하기보다 종이 서류를 사용하는 것이 경제적이기 때문이라는 것. 김현정 요원은 “재단에서 사립대학을 위해 구축한 U-ERP(대학정보화시스템)이 있지만, 활용률이 저조하다. 이를 사용하면 보관서고 장소 낭비도 종이 낭비도 줄어든다. 무엇보다도 데이터 이관 작업이 수월해진다. 지금은 사립대학마다 제각각 구축한 시스템이나 종이서류로 관리되고 있어 데이터 환경을 동일하게 만들고, 스캔 작업을 해야 하며 넘버링 도장도 수작업으로 찍어야 하는 등 업무가 많다”고 설명했다. 사립대학들이 이 공공시스템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영세한 대학만이 사용하는 시스템이라는 부정적 인식도 있고, 홍보가 아직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폐교 뒷정리, 정부 예산 고작 5억원

이번 한국국제대학 폐교 기록물 이관 작업에서는 전자 데이터 이관도 최초로 진행됐다. 한국국제대학교는 대학정보화시스템(U-ERP)을 통해 회계, 인사를 관리해왔다. 교직원의 임용, 면직, 승진 등 개인정보부터 각종 공문 등 행정문서까지 12만건의 데이터를 사학진흥재단 자체 시스템으로 옮겼다. 진주시의 대학 현장에서 데이터를 백업할 환경을 똑같이 만들고, 이 데이터들을 복사한 후에 대구 사학진흥재단으로 이동하여 이 데이터를 규격 양식인 pdf로 변환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중 공개자료는 한국사학재단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도록 업로드한다. 이 같은 시스템 연계 작업을 통해 폐교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증명서를 발급하고, 기록물을 열람할 수 있다.

이 같은 폐교 대학 후속조치 지원관리 사업에 투입되는 정부 예산은 고작 1년에 5억원이다. 이는 10여년째 동결된 금액이라고 한다. 우남규 사학진흥재단 대학혁신지원본부 본부장은 “한국국제대 1개교의 기록물 이관 및 시스템 연계 작업에만 올해 5억원 중 3억7000만원이 쓰였다”며 “예산이 부족하여 직원들이 일당백으로 고생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김현정 요원은 “국립대학의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은 학교당 1명씩 배정되는데, 재단은 21개교의 폐교대학 후속조치 지원관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원이 저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공공기록물법에 따르면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이 없으면 기록물에 접근할 수 없다. 한국국제대학 폐교 과정에서 요원 1명이 기록물에 대한 이송, 정리, 분류를 총괄하고 있었다. 지방소멸로 인해 벚꽃이 먼저 피는 지역순으로 대학이 문을 닫는다는 ‘벚꽃엔딩’과 학령인구 감소가 현실화하고 있는 지금, 앞으로 더욱 많은 지방의 사립대가 문을 닫을 것이다. 이 같은 예산과 인력으로 폐교 관리 전반을 책임지기에는 버거워 보였다.

'살아있는' 대학의 기록물 관리부터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살아있는 대학의 기록물 관리는 행정안전부 산하 기관인 국가기록원에서 맡고 있다. 이곳은 대학기록물을 관리하는 인력이 일반 행정 주무관 1명 뿐이다. 대학 기록물보다는 중앙부처 기록물 위주로 관리하고 있다. 사학진흥재단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폐교 절차가 건강한 시스템으로 자리 잡으려면 살아있는 대학의 관리부터 제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어느 대학이 어떤 문서와 시스템,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지 등 국가기록원의 기초현황자료가 부족하고, 각 대학마다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의 유무 등 인력 현황과 분류 체계 정도만 관리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살아있는 대학 기록물은 행안부에서, 폐교 대학 기록물은 교육부에서 맡고 있다 보니 행정의 사각지대가 생긴다는 문제제기도 있다.

폐교 대학 21개교 중 1개교만이 청산 종결

폐교대학의 청산 절차가 지지부진한 것도 기록물관리를 어렵게 하고 있었다. 사학진흥재단에 따르면 폐교대학 21개교 중 1개교만이 청산이 종결됐다. 나머지 20개교는 여전히 각종 소송과 부지매각, 재산처분, 채무탕감 등의 문제를 안고 있어 보존기간이 지난 기록물도 폐기할 수 없다. 한국국제대학교는 2011년 정부재정지원 제한대학에 지정된 이후 지금껏 버텨왔다. 올해 7월이 되어서야 창원지방법원 파산부는 채무자인 일선학원에 파산을 선고했다. 법인은 파산 선고에 이의를 제기하며 소송을 진행 중이다. 교직원 체불임금 정산은 장기전이 예상된다. 지난 9월 기준 체불임금 규모는 300억원, 제때 임금을 받지 못한 교직원은 17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 자산 매각 대금으로 체불임금을 정산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자산은 임의매각이 실패하면 경매에 들어간다.

현 정부는 ‘사립대학 구조개선법’을 통해 대학들의 자발적 통폐합과 구조조정을 유도하고, 한계 대학들은 교육부가 폐쇄하는 등 대처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법안은 작년 9월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아직 본격 논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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