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9년 모든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 결정의 취지는 일정 기간 이내 특수한 사정 때문에 하는 낙태도 있으니 해당 조항을 현실에 맞게 고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국회는 4년이 넘도록 낙태 허용 범위 등을 규정하는 조항을 만들지 않고 있다. 낙태가 합법도 불법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일부 산부인과에서는 ‘30주 이상’의 임신 말기 낙태 수술이 암암리에 이뤄지는 것으로 21일 나타났다. 만약 낙태 관련 법이 정비돼 있었다면 처벌 대상이 됐어야 할 행위들이다.

본지가 이날 서울에 있는 A 산부인과 관계자로부터 확보한 내부 자료에 따르면, 이 병원은 매년 평균 400여 건의 낙태 수술을 하고 있으며 이 중 약 30%가 임신 30주 이상 산모들이 대상이었다고 한다.

본지에 관련 자료를 제공한 A 병원 관계자는 “낙태 공장 수준”이라고 본지에 밝혔다. A 산부인과는 30주 이상 낙태 수술비로 1000만~2000만원을 받는다. 300만~400만원 수준의 보통 낙태 수술에 비해 3~5배가량 비싸다. 비싼 수술비에도 A 산부인과는 인기가 많다고 한다. 대부분 산부인과는 최대 24주 미만에 한해 수술을 하고 있는데, 이곳은 임신 30주가 넘어도 수술이 가능하다고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그래픽=이철원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위헌 결정을 내면서 ‘임신 22주’를 낙태 허용의 상한선으로 판단했다. 그 이후에는 어떤 이유로든 낙태해선 안 된다고 했다. 임신 22주 이후의 낙태는 불법성이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A 산부인과는 낙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다 되는 곳’으로 불린다. 본지 기자는 상담 앱을 통해 A 산부인과에 ‘33주인데 낙태가 가능하냐’고 문의했다. 신분을 숨긴 채 ‘22세 산모’라고 소개했다. 그러자 상담 실장은 “가능하다”며 “다만 비용은 감수하셔야 한다”고 했다. 상담 예약을 잡는 데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산모들은 주로 낙태 정보 앱, 인터넷 커뮤니티 광고를 보고 전화한다. 원장과 상담 후 바로 수술 날짜가 잡히는 방식이다. 산모는 낙태 약을 두 차례 먹고 산부인과 인근 모텔에서 잔 뒤, 다음 날 낙태 약을 한 차례 더 복용 후 수술에 들어간다. 병원 관계자는 “수술실엔 오직 원장과 10년 넘게 함께 일해온 간호사들만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사산아는 폐기물 업체가 현금 8만원을 받고 검은색 쓰레기봉투에 수거해 간다. A 병원 관계자는 “임신 36주 낙태 수술도 한 적 있다”고 했다.

그러나 A 산부인과 측은 “30주 이상 낙태 수술을 하고 있는 게 맞느냐”는 본지 질문에 “우리는 24주 이하만 수술한다”고 부인했다.

임신 말기 낙태 수술은 일부 다른 산부인과에서도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업계의 한 관계자는 “A 산부인과뿐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30주 이상 낙태 수술 병원만 5곳”이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임신 말기 낙태는 돈이 더 되기 때문에 더 많은 병원들이 뛰어들고 있다”고 했다. 본지 기자가 확인해 보니, 낙태 정보 앱에 올라온 산부인과 중 상당수가 30주 이상 낙태 수술을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관계자는 “30주 이상 낙태 수술은 윤리적으로 문제 될 뿐 아니라 산모의 생명까지도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A 산부인과에선 30주 이상 낙태 수술로 과다 출혈이 발생해 인근 대형 병원으로 산모가 긴급 이송된 경우도 있었다.

국회가 낙태를 규정하는 법 개정을 미루는 사이에 낙태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21 낙태 실태 조사’에 따르면 낙태 건수는 2019년 2만6985건에서 2020년 3만2063건으로 증가했다. 의료계에선 “낙태가 합법인지 불법인지를 판단할 수 없는 지금과 같은 상태가 장기화되면 영아 살인과 다름없는 낙태 수술이 더욱 성행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임신부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낙태는 대부분의 나라가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미혼·미성년 임신, 출산 환경 등 사회·경제적 요인에 의한 낙태를 법으로 인정하는 범위는 나라마다 다르다. 독일·이탈리아 등 상당수 국가는 임신 12주까지 낙태를 허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