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이웃을 흉기로 100차례 이상 찔러 살해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0년을 받은 60대 남성 A씨가 선고 직후 “형이 무겁다”며 항소한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검찰은 즉각 “죄질에 비해 형량이 가벼워 더 중한 형의 선고를 구한다”며 맞항소했다. 검찰은 1심 재판 당시 A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해 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지난 7월 18일 오전 8시 34분 경남 함안군의 조용한 한 마을이 발칵 뒤집혔다. 마을 이장인 50대 여성 B씨가 자신의 집 마당에서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던 것. 고추를 말리며 평화로운 아침을 맞이하던 B씨의 집 마당은 끔찍한 살해 현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병원으로 옮겨진 B씨는 복부의 다발성 찔린 상처(자창·刺創) 및 베인 상처(절창·切創) 등에 의한 저혈량성 쇼크 등으로 숨졌다. 검찰은 “피해자가 흉기로 100차례 이상 찔려 살해됐다”면서 ‘난도질’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만큼 범행이 참혹했다.
B씨를 살해한 범인은 이웃 주민 A씨였다. A씨는 범행 직후 인근 야산으로 달아났다가 경찰이 추적해오자 2시간여 만에 자수했다.
수사기관 조사와 재판 과정을 들여다보면 피해자 B씨는 A씨에게 원망을 살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평상시 선의를 베풀어 준 고마운 이웃이었다. B씨는 마을 이장으로, 아들과 단둘이 사는 A씨 부자(父子)를 위해 공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A씨 아들에게 밥과 반찬을 챙겨주는 사람이었다.
같은 마을 이웃 주민은 수사기관에 “B씨는 평소에 행정복지센터에서 나오는 물품이 있으면 A씨 부자에게 챙겨줬고, 행정복지센터에 이야기해 A씨 집 쓰레기를 치워주거나 도배도 새로 해줬다”고 진술했다. B씨는 범행 한 달 전쯤인 6월 22일에도 A씨 아들에게 ‘11만원이 지원되는 문화누리카드를 만들어주겠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며 살뜰히 챙겨줬다.
그러던 B씨는 A씨가 부적절한 행동을 해오자 A씨를 피하게 됐다. 판결문 등에 따르면 A씨는 B씨를 갑자기 뒤에서 끌어안거나, 동의 없이 B씨 주거지 마당에 들어가는 등 접근했다. B씨는 이 같은 일을 겪고 나서 A씨에 대한 두려운 감정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B씨 주변 사람들은 수사기관에 “B씨가 ‘A씨가 무섭다’는 말을 자주 했고, 집에서 혼자 일을 할 때나 갑자기 A씨가 찾아왔을 때 이웃 주민을 집으로 부르는 일도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검찰은 A씨가 자신을 피하는 B씨의 모습에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고 원망해오다 사건 당일 B씨와 말다툼 끝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했다.
A씨는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다. 평상시 B씨가 자신과 아들을 도와준 사실이 없고, 자신이 B씨에게 부적절한 방법으로 접근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오히려 “B씨가 고의로 소음을 냈다” “B씨가 집과 차량 내부 공기에 독성 물질을 뿌리고, 집 수돗물에 독극물을 넣었다”는 식으로 B씨가 자신을 괴롭히고 죽이려 해서 범행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형량을 줄이기 위해 모두 25차례 반성문을 법원에 제출했다.
재판부는 이런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창원지법 마산지원 형사1부(재판장 강지웅)는 지난 20일 A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당시 판결문에서 “피해자가 사망해 진술을 들을 수 없으나, 피해자 신체에 남은 상처는 A씨의 범행이 얼마나 잔혹했고, 피해자가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처절하게 저항했는지 짐작하게 한다”고 밝혔다.
이어 “평온한 일상을 영위하던 중 갑자기 들이닥친 피고인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당한 피해자가 느꼈을 극한의 공포와 육체적·신체적 고통은 가늠하기 어렵고, 평소 자신을 위해 선의를 베풀어 준 피해자에게 반인륜적인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피고인에 대한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유족의 피해와 고통을 치유하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았고, 사태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등 개전의 정(改悛의情)이 없다”며 “유족이 엄벌을 탄원하는 점, 폭력 범죄로 수차례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점, 유족의 고통 등에 비춰볼 때 그 죄책에 상응하는 중형에 처함이 마땅하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A씨는 선고 다음날인 지난 21일 바로 항소했다. 자신의 범행에 대해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검찰도 곧장 항소했다.
창원지검 마산지청 형사2부(부장 김수민)는 “부적절한 접근으로 피고인을 두려워하던 피해자가 접촉을 피하자, 원망하며 피해자의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계획적으로 범행한 점, 범행 수법이 잔혹한 점, 유족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한 점 등을 고려해 피고인에게 더 중한 형의 선고를 구하기 위해 항소한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앞으로도 국민의 생명과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살인 등 강력 범죄에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