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을 오가는 시내버스. 이곳 노인들 대다수의 유일한 발이다. photo 정주원 인턴기자

동쪽으로 여주시, 서쪽으로 초월읍, 남쪽으로 도척면과 마주하고 있는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스키 시즌인 요즘, 중부고속도로 곤지암IC와 연결된 ‘곤지암 리조트’로 잘 알려진 곳이다. 지난 1월 22일 오전 11시에 찾은 곤지암터미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버스터미널과는 사뭇 달랐다. ‘ㄱ’자 모양의 낡고 작은 상가 건물 틈 속에 덩그러니 놓인, 유리 덮개도 없이 성인 대여섯 명이 간신히 앉아 있을 수 있는 정류장에는 ‘곤지암터미널’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엉덩이가 따뜻해서 버스 기다리기가 전보다 한결 편해졌지 뭐야.” 춥지 않냐는 기자의 물음에 버스를 기다리던 한 할머니는 ‘온열의자’라서 괜찮다고 했다. 이날도 여느 겨울날처럼 살을 에는 추위가 정류장을 에워쌌지만 온열의자의 온기는 할머니에게 마법 같은 선물이었다. 정류장에 온열의자가 설치된 건 불과 3년 전이라고 한다.

이날 곤지암을 찾은 건 올 초 정치권에서 벌어진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논란이 단초가 됐다. 지난 1월 18일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도발적인 정책을 하나 내놓았다. 그는 “65세 이상 노인들의 도시철도 무임승차를 폐지하겠다”고 공언했다. 대신 연 12만원의 교통카드를 지급하고 이를 소진하면 40%의 할인을 적용하겠다는 대안을 내놨다. 이 대표는 형평성을 꺼내들었다. 도시철도가 운영되지 않는 지역 노인들은 그동안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했으니 불공정한 제도라는 주장이다. 그러자 대한노인회 측에서는 격한 단어까지 써가며 반발했다.

이준석이 투척한 노인 교통복지 문제

논란은 동시에 생각할 거리도 낳았다. 노인이동권을 둘러싼 공정성을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수도권이나 대도시에서 조금만 떨어진 곳으로 눈을 돌리면 지하철은커녕 하루에 몇 대 다니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그조차 쉽게 이용하기 힘든 노인들을 만나게 된다. 하루에 버스가 두 번 들어가는 시골 노인들의 불편은 누구나 그려볼 수 있는 일이다. 하물며 노선버스가 다니는 경기도 외곽만 해도 이런 노인이동권 격차의 민낯을 만나볼 수 있다.

앞선 온열의자 위 할머니는 한 손에 검은 봉지를 들고 있었다. 곤지암터미널에서 도보로 300m 떨어진 곤지암우체국 골목길에서는 매월 2일과 7일에 5일장이 열린다. 동네 마트보다 싼 가격에 농산물을 구매할 수 있어서 추운 날씨에도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데 할머니도 장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집에서 장 보러 오는 길이 귀찮고 번거롭긴 해도 싸니까 자꾸 오게 돼. 별 수 없어.” 할머니의 집은 곤지암읍 진우리다. 곤지암터미널로부터 5㎞ 떨어진, 그리 멀지 않은 곳이지만 노구를 이끌고 버스를 타는 일은 인내를 요구한다. 꽤 고단한 일이다.

버스를 기다리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40분 넘게 흘렀다. “몇 번 버스를 타고 가세요”라고 물으니 “잘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번호는 잘 모르고 그때그때 오는 거 타. 한 시간에 하나 정도 오는데 시간이 매번 달라. 잘 안 맞으면 1시간 넘게 기다리는 때도 있더라고.”

40분을 기다리는 새 버스가 두세 대 지나갔다. 곤지암에서 서울 방향으로 가는 붉은색 광역버스다. 딱 봐도 젊은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광역버스는 이처럼 촘촘히 노인들 앞을 오고 간다. 경기도 교통정보센터에서 알아보니 성남으로 가는 300번, 서울 잠실로 가는 500-1번, 서울 강변역으로 가는 1113-1번과 같은 광역버스는 배차 간격이 20분 내외다.

광역버스가 아닌, 곤지암터미널에 멈추는 로컬 시내버스 노선은 12개다. 하지만 상당수는 시간당 1대꼴로 이곳을 지난다. 그보다 더 길어질 때도 있다. 이런 듬성듬성한 간격은 경기도 소재 읍면리에서도 새삼스럽지 않다. 정차하는 노선이 12개라는 건 일견 많아 보이지만 겹치는 노선이 대부분이다. 36-5, 36-6, 36-7, 36-8번과 같은 식으로 번호는 다르지만 비슷한 경로를 밟아나가니, 사실상 그 버스가 그 버스인 셈이다.

할머니는 곤지암터미널에서 약 1시간 정도를 기다리고서야 ‘도척성당 행’이라고 적힌 39-7번 버스에 간신히 오를 수 있었다. 버스가 도착하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 줄지어 차에 오른다. 시간당 한 대꼴, 그것도 불규칙하게 오다 보니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노인들이 한꺼번에 버스로 몰렸다.

지난 1월 18일 이준석 개혁신당 정강정책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업 및 교통 관련 정강정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여유 있을수록 더 혜택받는 역진성

버스에 오르니 의자 한편에 앉은 박모(75)씨가 한 발을 의자 밖으로 뺀 채 목발을 짚고 있다. 그는 4개월 전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가 부러졌다. 당시 응급처치와 수술을 했고 이후 매일 곤지암읍에 있는 한 정형외과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매일 읍내로 오고 가는, 그닥 길지 않은 이 노정은 그에게 쉽지 않다. 다리까지 다쳤으니 더 불편하다. 택시를 타는 것도 망설여진다. 그가 사는 도척면에서 곤지암읍까지의 거리는 4㎞가 채 안 되지만 왕복 1만5000원이 넘는 콜택시 요금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박씨는 일주일에 한두 번, 버스의 불편함을 도저히 이기지 못할 때 택시를 이용한다. 버스를 기다리며 쓰는 시간 비용이 너무 큰 게 문제다. “병원 진료가 11시라면 집에서 9시에는 나와야 한다. 한 시간이 채 안 걸리는 치료를 위해 병원을 한 번 왔다 가려면 아침에 출발해서 오후가 된다.” 버스를 기다리고, 버스를 타고, 또 다시 버스를 기다리면서 하루가 지나간다. 다리를 다치기 전, 그는 곤지암 읍내까지 30분이면 걸어갔다. 그렇게 짧던 거리는 버스를 타면서 꽤나 멀어졌다.

경기도 외곽만 나가도 나타나는 느슨한 교통망은 서울과 그 인근의 촘촘함과는 사뭇 다르다. 전국 읍·면 지역의 행정리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통계청의 ‘2020년 농림어업총조사’를 보면 2020년 기준 전체 마을 3만7563곳 중 도보 15분 이내에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수단이 없다고 응답한 곳은 2224개(5.9%)였다. 2015년의 879개(2.4%)에 비해 2배 이상으로 늘었으니 시간이 갈수록 퇴보하는 셈이다. 좀 더 사정이 나을 것 같은 경기도만 해도 마을버스 등을 포함한 시내버스가 하루 1~3회에 불과한 행정리가 4194곳 중 241곳이나 됐다.

현실적으로 이런 곳은 농어촌이고 고령 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이 때문에 취약한 교통망에 노출되는 건 자연스레 노인들이다. 그들의 이동권은 질적으로 열악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농촌진흥청의 ‘2021년 농어업인 복지실태조사’를 보면, 의료기관 이용 시 사용하는 교통수단에 대해 농어촌에 사는 청년 가구는 74%가 ‘자가용을 타고 다닌다’고 답했고 의료기간 도착시간은 평균 19.4분으로 조사됐다. 반면 70대 이상 노인 가구는 59.5%가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고 답했다. 이들의 의료기관 도착시간은 평균 33.3분이다.

이런 현실은 노인 교통 복지의 재구조화를 논하자는 이준석 대표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그리고 이 주제는 교통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줄곧 제기돼 왔다. 유정훈 아주대학교 교수(교통시스템공학)는 “지하철에만 국한돼 있는 현 제도는 형평성의 문제가 크다. 차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한다.

유 교수는 이를 역진적인 제도라고 설명한다. “시골에 있는 분들은 버스를 돈 내고 탄다. 대도시권에도 역세권과 비역세권이 있다. 비역세권 거주자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버스를 타야 한다. 반면 집값이 비싼 역세권에 사는, 그래서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분들은 오히려 무임승차의 혜택을 오롯이 받는다. 여유가 없는 분들이 혜택을 못 받는 문제가 있다.”

다만 그 해법에는 차이가 있다. 이 대표는 지하철 무임승차를 없애고 재편하자고 했다. 반면 전문가들은 무임승차는 유지하는 틀에서 노인 이동권의 격차 해소를 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지금 제도의 효용과 편익을 감안해야 한다는 얘기다.

“전혀 나서지 않던 지자체도 문제”

최진석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지하철 무상 이용 자체를 보편적 복지 차원에서 부적합하다고 볼 순 없다. 지자체와 중앙정부의 명확한 역할 분배를 통한 비용의 효율적 분배가 보편적 노인이동권을 보장할 수 있는 열쇠다”라고 말한다. 유 교수 역시 비슷한 생각이다. “연령을 둘러싼 논쟁은 있을 수 있겠지만 소득이 없는 은퇴자를 위해 최소한의 이동의 자유를 주자라는 점에서 볼 때 기초적인 교통복지가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다”라고 설명한다.

문제는 ‘비용’이다. 역진적이라는 현 제도는 혜택을 한쪽으로 편중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관련 적자가 누적되고 지방과의 격차를 줄일 지출 계획을 세우는 데도 장애물이 된다. 비용의 구조적 해결은 노인 인구가 급증하는 현재 상황과 누적된 재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부분이다. 이준석 대표도 무임승차 폐지의 근거로 늘어나는 적자와 변화하는 인구 구조를 들었다.

예를 들어 서울교통공사가 2022년 무임승차(1억9664만명)로 입은 손실금은 약 3152억원이다. 서울시와 공사는 손실금의 국비 지원을 요구해 왔다. 반면 기획재정부는 형평성 차원에서 이중 지원을 할 수 없다고 맞선다. 보통 철도를 건설할 때 정부가 60% 정도 되는 돈을 지원하는데, 무임승차 적자마저 정부가 지원하는 건 대도시를 위한 이중 지원이라는 주장을 내세운다.

최 선임연구원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전혀 나서지 않는 건 문제”라고 본다. “수도권에서 무임승차가 가장 많은 노선이 어디일까. 일산선과 분당선이다. 두 곳 모두 경기도 내에서 재정자립도가 높은 지자체다. 하지만 일산선과 분당선은 광역철도라서 정부 소유다. 이 때문에 무임승차 손실의 50%를 정부 돈으로 보전하고 해당 지자체는 부담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손실에 있어서 시민들의 동선을 파악해 해당 지자체가 일정 부분 부담을 나눠 지는 게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그동안 정부도 무대응, 지자체도 무대응이었던 노인 교통복지 논의는 이제 막 삽을 떴다. 이준석의 ‘발칙한’ 정책이 케케묵은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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