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전공의들에게 ‘29일까지 복귀하면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 9000여 명 중 29일 오후 5시까지 565명만 진료 현장에 돌아왔다. 전공의가 이탈한 지 13일째인 3일, 의료 현장은 전임의, 교수, 간호사로 버티며 ‘번아웃 (극도의 피로)’을 호소하는 상황이다. 이들 병원은 이미 수술을 50% 가까이 줄이면서 신규 환자의 입원과 외래 진료를 대폭 축소한 채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3일 중앙응급의료센터 종합상황판에 따르면 서울아산병원은 현재 응급실에서 내과계 중환자실(MICU) 환자를 더는 수용할 수 없다고 공지했다. 세브란스병원은 심근경색과 뇌출혈 등 응급 환자 일부만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성모병원은 얼굴을 포함해 단순히 피부가 찢기거나 벌어진 열상 환자는 아예 응급실 수용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날 오전 기준 병상이 절반도 남지 않은 응급실은 서울 지역에서만 9곳이었다. 병상이 있어도 의료진 부족으로 실제 사용 가능한 숫자를 줄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아산병원은 11개 병상 중 10개(91%)가 찼고, 강남세브란스병원은 15개 병상 가운데 13개(87%)가 찬 상태였다.
병원에 남은 교수·전임의와 간호사들의 피로는 1~3일 연휴를 겪으면서 더 가중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서울대병원 교수는 “남아있는 임상 강사와 막내 교수들의 피로도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외과 주니어 교수 1명이 너무 힘들어 사직하겠다고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날 응급실에서 나온 의사와 간호사들은 벽에 기대 잠시 숨을 몰아쉰 뒤 다시 응급실로 뛰어들어 가기도 했다. 본지가 만난 의사·간호사들은 “남아 있는 의료진 모두 과부하로 지친 상황”이라며 “파업이 끝난 후에는 미뤄졌던 수술이 한꺼번에 몰릴 수 있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이미 쌓일 대로 쌓인 업무를 감당하지 못한 채 이미 사직을 결심한 전임의도 일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광진구의 신모(64)씨는 이날 유방암 수술을 받은 딸의 퇴원을 돕기 위해 서울아산병원을 찾았다. 30대 딸은 본래 지난달 18일 수술을 받기로 했지만, 파업으로 수술이 미뤄져 지난달 28일 수술을 받았다. 신씨는 딸 수술이 미뤄진 것에 대해 “암이 더 진행될까 봐 속이 탔다”며 “그나마 일주일 만에 수술이 잡혀 우린 행운이었다”고 했다. 이날 새벽부터 서울아산병원을 찾은 최영천(66)씨는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심정”이라고 했다. 최씨 아내는 간암 초기인데, 이날 검사가 예약돼 있어 경기 시흥에서 1시간 걸려 왔다고 한다. 최씨는 “빨리 치료를 받아야 되는데 이건 아니지 않나”라며 “환자를 위한다면 의료진들은 병원으로 돌아와 정부와 대화하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