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영 팀장입니다. 고객님께서는 최저 이율로 최고 5000만원까지 20분 이내 통장 입금 가능합니다.’ 이와 같은 대출 문자로 사람들을 속여 수백억원을 뜯어낸 이른바 ‘김미영 팀장’ 일당의 총책 박모(53)씨가 최근 필리핀 교도소에서 탈옥한 것으로 8일 파악됐다. 박씨는 한국에서 사이버 범죄 업무를 담당하던 경찰 출신이다. 뇌물 수수 혐의로 2008년 해임됐다. 경찰 근무 당시 접했던 범죄 수법을 토대로 ‘김미영 팀장’ 사기 수법을 고안했다고 한다.
경찰과 외교부에 따르면, 박씨와 조직원 3명은 지난 1일 필리핀 나가시(市) 카마린스 수르 교도소에서 탈옥했다. 경찰 관계자는 “1일 밤에서 2일 새벽 사이 교도소를 탈옥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박씨 일당이 어떻게 도주했는지 등 범행 수법에 대해선 필리핀 수사 당국이 조사 중”이라고 했다. 박씨 일당은 불법 고용과 인신매매 혐의 공범으로 기소된 뒤 재판을 위해 작년 11월 카마린스 수르 교도소로 이감된 상태였다.
박씨는 지난 2012년부터 소위 ‘김미영 팀장’ 문자를 무차별적으로 보낸 뒤 대출 상담을 해오는 이들에게서 수백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지난 2013년 이 조직의 국내 조직원 28명을 검거했지만 총책 박씨와 주요 간부들은 필리핀 등 해외로 도피했다. 박씨는 필리핀에서 수영장이 딸린 대저택에 사설 경호원을 두고 호화 생활을 했고, 가명 2개를 사용하며 경찰 추적을 피해 왔다. 경찰은 도주 8년 만인 지난 2021년 10월, 필리핀 수사기관과 공조해 현지에서 박씨를 검거했다. 하지만 2년 넘게 국내 송환 절차가 지연됐고, 그 사이 박씨 일당은 필리핀 교도소를 탈옥했다.
박씨는 국내로 송환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인신매매 등 추가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 현지에서 죄를 지어 형(刑)을 선고받게 되면, 그만큼 국내 송환이 지연된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필리핀으로 도피한 범죄자 중 상당수가 국내 강제 송환을 피할 목적으로 필리핀 현지에서 추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에 따르면 필리핀 현지 교도소엔 한국인 80여 명이 수감 중이다. 이 중 절반이 넘는 50여 명이 국내 송환을 피하기 위해 현지에서 사건을 일부러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필리핀 교도소 수감자 상당수가 현지에서 붙잡힌 뒤 한국 송환을 앞두고 조력자에게 본인을 다른 사건의 피고소인으로 신고하라고 지시한 정황이 발견돼 필리핀 수사 당국과 공조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