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영 팀장'으로 악명을 떨친 1세대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조직 총책 박모 씨는 지난 1일 필리핀 현지 교도소에서 탈옥했다./연합뉴스

대출 문자로 사람들을 속여 수백억원을 뜯어낸 이른바 ‘김미영 팀장’ 일당의 총책 박모(52)씨는 지난 1일 필리핀 교도소에서 탈옥해 3주 넘게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박씨는 지난 1일 필리핀 나가시(市) 카마린스 수르 교도소에서 탈옥했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1일 밤에서 2일 새벽 사이 교도소를 탈옥했다”고 전했다. 박씨는 불법 고용과 인신매매 혐의 공범으로 기소된 뒤 재판을 위해 작년 11월 카마린스 수르 교도소로 이감된 상태였다.

박씨가 3주 넘게 경찰 추적을 따돌릴 수 있었던 데에는 박씨가 그동안 은닉한 범죄 수익이 상당하기 때문이라고 필리핀 경찰은 보고 있다. 2012년 보이스피싱으로 당시 확인된 피해자만 2만여 명, 피해 금액은 400억 원에 달했다. 이 돈으로 탈옥부터 도주에 필요한 차량, 숨어 지낼 집 등을 미리 마련한 것이다.

특히 박씨는 지난 2021년 10월 필리핀 현지에서 검거된 이후에도 교도소에서 수억원 가량을 비트코인으로 환전해왔다고 한다. 그는 필리핀 교도소에서도 자유롭게 휴대폰을 이용해 불법 도박, 보이스피싱 등 사기 행각을 사실상 진두지휘 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김미영 팀장' 일당 신모(41)씨가 필리핀 교도소에 있던 모습. 신씨 손에 핸드폰이 쥐어져 있다. 신씨는 필리핀 교도소에서 자유롭게 핸드폰을 이용해 '김미영 팀장' 박씨의 환전을 담당해왔다./독자 제공

특히 박씨는 교도소에서 전과 9범 신모(41)씨 도움을 받아 수억원 가량을 비트코인으로 환전한 것으로 파악됐다. 신씨는 박씨가 2021년 검거될 당시 함께 붙잡히는 등 측근으로 통한다. 신씨 역시 교도소에서 핸드폰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박씨의 범죄 수익 수억원을 비트코인으로 환전하는 등 사실상 오른팔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신씨는 2017년 9월 필리핀에서 호송 중 탈주하는 등 필리핀에서만 두 차례 탈옥한 인물이다. 신씨의 탈옥, 도주 경험이 더해져 박씨가 수월하게 경찰 추적을 따돌리는 셈이다. 과거 신씨에게 사기 피해를 당했던 A씨는 “신씨는 바카라 등 불법 도박에 빠진 중독자”라며 “도박 돈을 구하기 위해 한국인들을 상대로 사기를 벌여왔다”고 했다. A씨는 “사기꾼답게 말 주변이 좋고 머리 회전이 빠른 편”이라고 했다. 신씨는 이번 박씨 탈옥엔 가담하지 않고 현재 교도소에 수감된 상태다.

박씨는 과거 자신의 경찰 경험을 살려 도주하고 있다. 박씨는 한국에서 사이버 범죄 업무를 담당하던 경찰 출신이다. 뇌물 수수 혐의로 2008년 해임됐다. 경찰 근무 당시 접했던 범죄 수법을 토대로 ‘김미영 팀장’ 사기 수법을 고안했다고 한다. 그는 경찰 재직 당시 조직 폭력배들에게 서슴없이 대하는 등 강단있는 인물로 유명했다고 한다. 박씨는 2008년 해임된 후 친하게 지냈던 경찰들과는 연락을 끊었다. 대신 경찰 재직 시절 알게 된 범죄자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이후 불법 다운로드 공유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돈을 벌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박씨는 지난 2012년 필리핀에 보이스피싱 거점을 마련했다. 소위 ‘김미영 팀장’ 문자를 무차별적으로 보낸 뒤 대출 상담을 해오는 이들에게서 수백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지난 2013년 이 조직의 국내 조직원 28명을 검거했지만 총책 박씨와 주요 간부들은 필리핀 등 해외로 도피했다. 박씨는 필리핀에서 호화 생활을 했고, 가명 2개를 사용하며 경찰 추적을 피해 왔다. 경찰은 도주 8년 만인 지난 2021년 10월, 필리핀 수사기관과 공조해 현지에서 박씨를 검거했다. 하지만 2년 넘게 국내 송환 절차가 지연됐고, 그 사이 박씨 일당은 필리핀 교도소를 탈옥했다.

박씨는 국내로 송환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인신매매 등 추가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 현지에서 죄를 지어 형(刑)을 선고받게 되면, 그만큼 국내 송환이 지연된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필리핀으로 도피한 범죄자 중 상당수가 국내 강제 송환을 피할 목적으로 필리핀 현지에서 추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박씨 일당의 움직임이 수상하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작년 12월과 지난달 두차례에 걸쳐 교도소 측에 탈옥 가능성을 경고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필리핀 교정당국은 해당 교도소에 CCTV가 설치돼있지 않아 탈옥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일부 훼손된 철조망을 찾아냈다고 한국 정부에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