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육군훈련소 연병장에서 훈련병들이 얼차려(군기훈련)의 일환으로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다. photo 연합

육군 12사단 훈련병이 입대한 지 9일 만에 주검으로 돌아왔다. 훈련소에 입소하고 2주 정도가 지나면 아들의 사복과 편지가 담긴 장정소포가 집으로 배달된다. 이 훈련병 부모는 장정소포를 채 받아보기도 전에 아들의 부고(訃告)를 받았다.

“전쟁터를 보낸 것도 아닌데 왜 아들의 부고 소식을 들어야 하는가.” 지난 6월 4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군인권센터와 군 장병 부모들은 반복되는 군 사망사고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공식적으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촉구하는 자리였지만, 기자회견이 끝나고 주간조선과 만난 부모들은 빼놓지 않고 이번 사건 피의자의 ‘성별’을 언급했다.

입대 3개월 차 아들을 둔 A씨는 “군사 훈련도 받지 않은 여성 ROTC 장교가 왜 신교대에 들어와서 그렇게 얼차려를 줄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 거기다가 (사건 이후) 바로 집으로 휴가를 보냈다”며 “나는 아들도 딸도 있는 사람이다. 젠더갈등을 부추기고 싶지 않다. 그런데 남성 장교나 사병이 그랬다면 과연 이럴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재수생 아들을 둔 B씨는 “이번에 엄격하게 수사되고 처벌되지 않으면 젠더갈등이 더 심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훈련소에 입소해 군복으로 갈아입은 장정들이 입고 있던 개인 옷을 집으로 보낼 소포로 꾸리고 있다. 최근 육군 12사단 훈련병은 입대한 지 9일 만에 얼차려(군기훈련)를 받다가 사망했다. photo 연합

젠더갈등으로 비화된 훈련병 사망 사건

훈련병에게 얼차려(군기훈련)를 시킨 피의자 중대장은 여성이다. 사건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여군이 완전 군장을 안 해봐서 무리한 훈련을 시켰다” “여군이어서 사건 이후 휴가를 갈 수 있었다” 등 확인되지 않은 주장이 확산됐고, 젠더갈등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정치권도 이에 반응했다. 이기인 개혁신당 최고위원은 피의자의 실명을 공개했고, 전여옥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은 “극단적 페미니스트의 남혐으로 인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중대장의 혐의를 철저히 수사하고 엄벌에 처해야 한다면서도 해당 사건이 ‘여성’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익명을 요구한 장교 출신 예비역은 “여군이 소대장, 중대장 되는 과정에서 받는 훈련과 기준은 남군과 똑같다”라고 밝혔다. 지난 5월 31일 “성별과는 관계없이 ‘규정위반’과 ‘안일한 태도 탓’에 빚어진 일”이라고 언급해 화제가 됐던 고성균 전 육군훈련소장(예비역 소장) 또한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장교 양성기관에서 완전군장과 행군 등의 훈련을 남군과 여군이 똑같이 받는다”며 “여군 시스템이 이번 사고 원인으로 지목되기는 아직 이르다”라고 밝혔다.

사고 이후 직무배제된 중대장이 전우조와 함께 휴가를 간 것 또한 젠더갈등으로 번졌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례적인 일’이며 ‘사단 측의 잘못된 조치’라고 짚는다. 전우조는 도움·배려 용사(병사)를 관리하도록 하는 동료 병사를 일컫는 말이다. 육군사관학교 출신 최영기 법무법인 승전 변호사는 “군 사고가 발생하면 부대관리훈령에 따라 피의자는 보충대 등에 즉시 분리조처하고 소환조사 때까지 대기시켜야 한다”며 “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보충대로 우선 분리조처 된 이후에 결정할 사안인데 절차를 어겼다”고 설명했다. 안종민 국가보훈행정사무소 행정사는 “절차를 제대로 따르지 않은 것이 확실하므로 이를 허용해준 주체에 대해서도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면서도 “군 내 사망사고 수사기관이 고 이예람 중사 사망사건 이후 민간경찰에 넘어가면서 진행절차가 느려지고 공백이 생겼다. 여기에 피의자가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보이자 자살 등을 방지하기 위해 ‘집에서 안정하면서 기다리라’는 배려 차원일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했다. 다만 이 또한 여성이어서 배려한 것이라는 정황은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지난 6월 4일 육군 12사단 훈련병 가혹행위 사망사건 규탄 및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 고 홍정기 일병의 어머니 박미숙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photo 연합

여군이어서가 아니라 규정 위반이 문제

군 응급 후송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젠더갈등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고 있지만, 역시 중요한 논란 중 하나다. 투석이 가능한 상급 병원까지 훈련병을 이송하는 데에 4시간40분이 걸려서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메디온(육군 의무후송헬기)을 이용해 신속하게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해야 했다는 지적이다. 국방 환자관리 훈령에는 ‘즉각적인 전문처치가 필요한 응급환자 또는 중환자는 상황을 고려해 헬기를 이용하여 신속히 후송하여야 한다’는 조항(제36조 제1항 제1호)이 존재하며, 환자 후송을 필요로 하는 부대는 언제든지 항공후송 신청서에 따라 국군의무사령부 응급환자지원센터로 지원요청을 할 수 있다(같은 훈령 제37조). 사고 직후 사단 의무대에서 수액을 맞으며 초기 조치를 했는데도 훈련병의 상태가 호전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훈련병에 신부전이 발생하고 있음을 인지했다면 곧바로 헬기를 요청해 투석이 가능한 병원으로 후송해야 했다는 것이다.

육군 측은 “당시 부대는 국군의무사령부 의료종합상황센터에 신고하였고, 이후 센터에서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후송 방법을 안내했다. 부대는 의료종합상황센터의 안내 및 지도에 따라 응급 후송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안 행정사는 “다수의 제보에 따르면 군의관들이 초반 응급조치를 잘 한 이후 여러 번 헬기 요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며 “헬기 후송 규정을 위반하고 차량으로 이동하도록 통제한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엄격히 수사해야 한다”고 전했다.

피의자를 철저하게 수사하고 엄벌하여 일벌백계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이 같은 군내 사망사고가 재발하지 않게 하기 위해 더욱 중요한 것은 시스템의 개선이다. 본질적 원인으로 우선 지목되는 건 군내 법령 교육의 부재다. 중대장이 군기훈련 규정을 어긴 것도, 사고 이후 절차를 어기고 휴가를 간 것도, 군 응급후송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도 모두 군 내 ‘법령 교육의 부재’로 귀결된다. 안 행정사는 “미국의 군인이 법령에 따라 움직인다면 한국의 군인은 상사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고 꼬집었다. 그는 “감찰조사를 하지 않고 휴가를 승인한 사단 인사, 지휘계통, 감찰, 법무참모들을 이해할 수 없다”며 “해당 사단에 법령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지난 5월 30일 전남 나주시 한 장례식장 야외 공간에서 육군 12사단 훈련병에 대한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photo 연합

부실한 군 내 군법 및 인권 교육

실제로 다수의 현직 교관에 따르면 현재 군내 군법 및 인권 교육이 굉장히 부실한 상태다. A교관은 “학군교(ROTC 후보생) 교육에 군법 교육이 1~2시간 편성되어 있으나 소개교육식으로 끝난다”고 전했다. B교관은 “소위, 중위, 대위들이 받는 교육을 초군반(소위 임관 시), 고군반(대위 진급 시, 지휘관교육) 각 병과별로 학교에서 받는다”며 “가장 기준이 되는 보병학교는 ‘군법 및 인권교육 2시간’이 전부”라고 전했다. 이 교관은 “부사관의 경우 초급, 중급, 고급반으로 나누어 초급(하사 임관 시), 중급(중사 진급 시), 고급반(상사 진급 시) 병과별로 병과학교에서 교육하며 ‘군법 및 인권’ 교육은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다”고도 설명했다.

해당 사건에 국민적 관심이 모아지자 당정은 모든 신병교육대 훈련 실태와 병영생활 여건을 긴급 점검해 개선안을 마련하고 불합리한 관행을 개선하기로 했다. 국민의힘은 지난 6월 2일 고위협의회에서 군 안전사고 재발 방지 대책을 추진하기로 했는데, 개인 건강·심리상태·훈련 수준 등을 고려한 장병 관리대책 보강에 중점을 두고 마련될 예정이다. 구체적으로는 우선 ‘군기 훈련 규정 표준 가이드안’을 전군에 즉시 배포하기로 했다. 더불어 불합리한 관행 개선을 위한 ‘신병영문화혁신 가이드북’도 제작해 이달 내로 전군에 배포하고 간부부터 숙지하게 할 계획이다. 신병교육대 교관을 대상으로 1박2일의 ‘특별인권교육’과 신병교육대별 자체 인권 교육도 이른 시일 내 실시하고 군 응급 후송체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그러나 진정한 해결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군 내외 원활한 소통이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고성균 소장은 “군 간부가 너무 부족해졌기 때문에 육군 규정을 들여다볼 시간도 없이 업무를 하게 되는 측면도 있다. 간부 필수 교육 또한 업무량에 비해 적지 않은 실정이다. 이 같은 내부 사정을 공유하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고민해야 할 텐데, 군 조직은 권위적이어왔고 특히 보안을 이유로 뭐든 은폐하기 바빴었다. 앞으로는 예민한 군사기밀 같은 경우만 제외하면 국민 앞에 투명하게 설명하고 소통해야 한다. 교육 문제뿐만 아니라 군 응급 후송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도, 중대장 휴가가 설명되지 않은 채 젠더갈등으로 번진 것도 군 내외 소통의 문제다”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