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의사 박언휘(70) 진료실 한편에는 손편지 수십 장이 쌓여있다. 박씨 의료 봉사로 건강을 되찾은 이들이 보낸 감사 편지들이다. 울릉도에 사는 한 초등학생이 보낸 편지에는 “선생님 덕분에 할머니가 이제 건강해지셔서 우리 가족은 요즘 매일 웃어요”라고 적혀 있었다. 박씨는 “의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 조금이나마 사람들을 도울 수 있어 오히려 내가 너무 행복하다”며 “난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경찰청과 조선일보사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58회 청룡봉사상’ 인(仁)상 수상자인 박언휘 내과의사는 10일 대구 수성구 박언휘내과의원에서 편지들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박씨는 지난 1996년부터 28년간 울릉도, 독도 등 도서 산간 지역과 베트남, 필리핀 등 해외 의료 사각지대에서 1만5000명 넘는 환자를 무료로 돌봤다. 또 2004년부터 소외 계층에 매년 1억원 이상 독감 백신도 기부하고 있다. 지금까지 기부한 독감 백신은 금액으로 따지면 20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2012년부터는 장애인 합창단과 봉사단에 정기 후원을 하고 있다. 박씨는 지난 2016년 1억원 이상 개인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에 가입했다.
박씨는 4녀 1남 중 장녀로 태어나 어린 시절 울릉도에서 살았다. 당시 울릉도 의료 시설이 열악했던 탓에 주민들은 감기, 맹장염에 걸려도 목숨을 잃곤 했다. 수시간 배를 타고 육지로 나가야만 진료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가까운 친구, 이웃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아파하는 것을 보고,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울릉도에서 중학교 졸업 후 대구로 건너와 경북대 의과대학에 진학해서는 아버지 사업 실패로 등록금을 제대로 못 낼 정도로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의사 꿈을 접으려 했던 박씨에게 손을 내민 건 지도교수였다. 교수는 박씨에게 “의사는 돈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고, 돈을 버는 직업도 아니다”라며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좋은 의사가 될 수 있다”고 격려했다. 이 말에 박씨는 의사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박씨가 의료 봉사를 처음 접한 건 1996년 경상북도 성주 나병촌 보건소였다고 한다. 박씨는 “당시 독일인 수녀가 나병 환자들 곁에서 하루 종일 돌봐주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며 “초심을 잃지 말고 의사로서 아픈 사람들 곁을 지켜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이었다”고 했다. 이때부터 박씨는 의료기관이 없는 지방을 누비며 진료 봉사를 했다. 지방의 시·군 보건소, 복지기관 등을 찾아다니며 주로 노인, 장애인들을 치료했고, 약값뿐 아니라 수술에 따른 인건비는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매달 한 번꼴로 고향인 울릉도를 찾아 무료 진료 봉사를 해왔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울릉도엔 내과 전문의가 없었기 때문에 박씨를 애타게 기다리는 주민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박씨는 의료봉사단과 함께 울릉군보건의료원에서 주민들을 치료했다. 박씨는 “포항에서 금요일 밤 12시 여객선을 타고 출발해 울릉도엔 아침 7시쯤 도착했다”며 “섬에 발을 내딛자마자 진료를 시작, 일요일 밤 12시 배를 타고 다시 대구병원에 오는 강행군이 이어졌지만, 날 기다리는 환자들이 있다는 생각에 힘든 줄 몰랐다”고 했다.
박씨는 봉사, 기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한 달에 두 번만 쉰다. 그는 “원래 한 달에 한 번 쉬었는데, 병원 직원들이 너무 힘들어해 제가 양보했다”며 웃었다. 박씨는 후배 의료인들에 대한 애정도 컸다. 최근 의료 파업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긴 한숨을 쉬더니 10초 넘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박씨는 “의사직을 영어로 ‘Job(직업)’이라 하지 않고 ‘Calling(소명)’이라 부르는 것만 봐도, 의사는 사명감을 갖고 봉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며 “정부, 의료계 모두 이권 다툼에 매몰되기보다는, 환자를 우선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