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대병원이 ‘무기한 휴진’에 돌입한 지난 6월 17일, 서울대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대한의사협회 해체’와 ‘임현택 의협 회장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비대위에 자문을 하는 오주환(57) 서울대 의대 의학과 교수가 던진 돌발 의제였다. 지난 6월 18일 임 회장은 전국의사 총궐기대회에서 ‘무기한 휴진’을 예고했지만 의료계 내부에선 사전 논의가 없었다며 논란이 일었다.

지난 6월 2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 의대 연구관에서 주간조선과 만난 오주환 교수는 “임현택 회장이 품위 있게 행동하고 의사들의 지지를 받았다면 같은 맥락에서 똑같은 발언을 했어도 반응은 달랐을 것”이라며 “품위 문제와 관련해 임 회장은 의정 협상을 지연시킨 책임이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오 교수는 하버드보건대학원 국제보건학과 ‘다케미 펠로우’를 마쳤으며 UN 생식정책조정 위원회의 한국정부 파견대표로 활동한 국제보건·공공의료정책 연구자다.

마침 오 교수와 만난 날은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집단휴진을 종료하고 의료 현장으로 복귀한 날이었다. 다음은 오 교수와의 일문일답.

- 서울대병원 비대위는 왜 무기한 휴진을 중단했나. "비대위가 공식적으로 밝히는 게 좋겠지만 자문을 하는 입장에서 말씀드리겠다. 강희경 비대위원장이 '솔로몬의 재판 같은 심경으로 결정했다'고 표현한 것처럼 정부가 끝까지 버티고 있으니 국민의 건강을 위하는 의사인 우리가 먼저 포기하는 수밖에 없겠다는 심정이었다. 비대위는 중증 환자 피해가 없도록 우선 순위를 섬세하게 재조정하고 파업했다. 누가 국민들을 더 위했는지는 결국 국민들이 판단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비대위의 휴진 중단은 서울대병원·분당서울대병원·보라매병원·서울대병원강남센터 전체 교수를 대상으로 지난 6월 20·21일 양일간 진행한 투표 결과에 따른 것이다. 투표 결과 전체 응답자 948명 중 698명(73.6%)이 휴진을 중단하고 ‘지속 가능한 방식의 저항’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휴진을 지속해야 한다는 의견은 192명(20.3%)에 그쳤다.

- 최근 임 회장이 발표한 '무기한 휴진'이 독단적 결정이란 내부 비판이 나왔다. "노조위원장도 파업이 결의되는 투표를 한 뒤에는 전술적 운영에 관해 상당 부분 위임받아서 발표한다. 임 회장도 사회적 쟁의 행위를 하는 셈이어서 그 정도의 유연성은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사 사회는 임 회장의 그 정도 발언도 인정해주지 않았다. 의사 사회가 '임 회장을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임 회장의 위기다."

- 의협 해체를 언급한 이유는. "이번 수가협상에서 정부가 제안한 '행위 유형별 환산지수 차등적용'을 의협이 반대했다. 하지만 정부안대로 과보상 분야 수가는 조금만 올리고 저보상 분야 수가는 많이 올리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성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으려는 시도를 반대하는 건 논리적 모순 아닌가. 의협은 필수의료 의사들을 제대로 보상하라고 말하면서 보상할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그래서 의협을 해체하면 사회적 합의를 훨씬 빨리 이룰 수 있지 않겠냐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행위유형별 환산지수 차등 적용은 현재 행위별 수가에 곱해지는 ‘환산지수’를 필수의료 등 저평가된 의료행위에 한해 더 올리는 것이다. 그동안은 행위유형과 상관없이 환산지수를 일괄적으로 인상해왔다.

- 의협은 왜 정부의 '차등 보상안'을 반대했나. "의협 회장이 정부의 취지를 이해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보상 분야 수가도 똑같이 올리자는 주장일 것이다. 그러나 저보상된 동료들의 투쟁을 이용해 과보상된 사람들도 이익을 얻겠다는 건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

- 최근 의협이 범의료계 조직인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를 출범했는데. "정상적인 특위를 만들기 위해선 제일 먼저 행동에 나선 전공의와 의대생을 포함시키는 게 맞다. 그런데 반대로 전공의와 의대생 입장에선 들어가고 싶을까. 이들이 장기간 집단행동을 하는 동안 의협은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이 굉장히 성의 있게 답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올특위는 의협 입장에선 많이 노력한 흔적이긴 하나 전공의와 의대생을 불러오기엔 많이 늦은 것 같다."

의협은 의대교수(4명), 전공의(4명), 시도의사회(3명), 의대생(1명), 의협(2명) 등 총 14명을 특위 위원으로 구성할 방침이었지만 전공의·의대생 단체가 모두 불참 의사를 밝히면서 반쪽짜리 특위로 출범했다. 박단 비대위원장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범의료계 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에 대해서는 들은 바 없다”며 “범의료계 협의체를 구성하더라도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표명했다”고 밝혔다. 임 회장은 이번 올특위에서 빠졌다.

- 올특위에 전공의·의대생이 빠지면서 범의료계 '단일대오'도 흔들리는 모양새다. "다원화 사회에서 단일대오는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복수노조 시대이지 않나. 의사 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목소리가 의협에 반영되지 못한다면 2개 이상의 단체가 각각 정부와 협상을 하는 방식도 있다. 예를 들면 서울대병원 교수·전공의·의대생 3자가 긴밀하게 논의해 이 사태를 풀어갈 해법을 신속하게 찾아내고 먼저 정부와 협상하는 것이다. 한 병원이라도 정상화 방안이 나올 수 있으면 큰 성과다. 다른 병원들이 벤치마킹할 수 있게 서울대가 우선 협상을 해야 한다."

- 올특위는 2025학년도 정원을 포함한 의정 협의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는데.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은 교육의 질(質) 문제를 포함해서 정부가 책임을 지도록 하고 2026학년도 의대 정원 논의는 내년 2월로 미뤄야 한다.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남은 1년 동안 의료계가 계속 제기하던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가야 한다. 국민들이 원하는 건 10년 후가 아니다. 의사와 말도 제대로 못하고 나오는 '3분 진료'가 당장 불편하니까 숫자를 늘리면 혹시 나아질까 한 것이다."

- 전공의 이탈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당장 추진해야 할 해법은. "정부가 전공의들을 처벌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의료개혁을 통해 전공의들이 돌아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전공의들은 '주당 52시간' 규정 대신 '전공의 특별법'을 적용받아 주당 88시간까지 근무한다.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병원장이 처벌받지 않도록 노동 착취가 합법화돼 있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전공의들의 노동 착취를 통해 생산된 대학병원 서비스를 진정 받고 싶은 것인지 묻고 싶다. 전공의들에게 나아진 노동·수련 환경을 약속해야 한다."

- '소송 리스크'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사 입장에선 죽을 확률이 높은 환자를 치료하겠다고 나서지 않아야 소송 리스크 측면에서 안전하다. 그래서 중증·필수의료를 아무도 안 하려고 하는 것이다. 영국 종합의료심의회(GMC)는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처벌보다는 공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 환자 보상에 집중한다. 우리나라도 소송 리스크를 어떻게 줄일지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최근 10년간 있었던 소송 판결 금액만큼 위로금을 미리 만들어둔 뒤 사망 사고가 발생했을 때 지급하고 공개적인 위로 메시지로 유감을 표하는 건 어떨까. 환자에겐 보상이 빠르고 사고의 원인이 빨리 밝혀질 수 있는 방식이며 의사는 중증·난치 질환 환자를 살리려고 달려들었을 때 자신이 보호받을 수 있다."

- 행위별 수가제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가치기반 의료'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제안했는데. "의료 행위의 양이 많을수록 수익이 늘어나는 행위별 수가제는 사람들이 건강하면 망하는 이상한 시스템이다. 반면 가치기반 의료는 가치(환자 건강)에 따라 보상을 받는 시스템이다. 총진료비의 일정 비율을 인센티브로 제공하며 환자의 건강상태를 개선시키는 등의 목표를 달성한 만큼 수입을 가져갈 수 있다. 예를 들어 0~1세의 아이 1명을 1년간 관리하는 데 100만원이 든다면 1000명의 아이를 책임지는 비용으로 10억원을 먼저 준다. 아이들이 건강해서 의료 서비스를 많이 받지 않아도 된다면 담당 의사의 수입은 커지며 아이가 아프면 수입도 줄어든다."

- 지역 의료를 강화하는 방안은. “의료기관에 관한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환자들은 중증도와 상관없이 서울의 대형병원을 찾는다. 그런데 동네에 언제든지 나를 봐줄 수 있는 주치의가 있다면? 동네 주치의와 상급종합병원 사이에 소통 시스템이 있어서 환자가 상급종합병원에 갈 일이 있을 때 설명하지 않고도 즉시 적절한 조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보자. 국민 대부분은 가까운 곳에서 의료 서비스를 받으려 할 것이다. 지역 의료를 살리려면 지역의 1·2차 의료기관과 상급종합병원이 연결돼 협진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가치기반 의료는 사실상 의료기관과 의사들의 연합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환자들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 진료를 받으면 지역 의료도 튼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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