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산시 반월공단 소재 공장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 photo 박성원 조선일보 기자

지난 6월 26일 저녁 6시를 넘은 시각 경기 안산 정왕역. 인근의 반월·시화공단서 퇴근한 노동자들이 통근버스에서 속속 내리고 있었다. 시화공단의 화장품 제조업체에서 일했다는 조선족 여성 A씨 역시 화성 일차전지 공장에서 일어난 참사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는 “동포가 그렇게 돼서 안됐다”며 “동포협회에서 희생자를 아느냐는 연락을 받은 사람도 있다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오늘 일하셨던 공장에서 사고가 났을 때 대피할 수 있는 비상구, 출구 위치를 알고 계셨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인력 소개업체를 통해 오늘 처음 출근했다”며 “안전교육은 30분 정도 들었지만 한국어로 진행되어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했다”고 했다. 그는 “비상구는 물론이고 화장실 위치도 헷갈려가지고 오후에나 좀 눈에 익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24일 일어난 화성 일차전지 공장 ‘아리셀’ 화재 희생자 23명 중 대부분은 A씨처럼 조선족 일용직 노동자들이었다. 사고가 난 아리셀은 인력파견업체 ‘메이셀’로부터 인력을 공급받았다. 경찰과 고용노동부 등은 외부 인력파견업체인 메이셀이 아리셀 본사에 주소지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양측 간 불법파견이 있었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이번 참사 희생자들 대부분은 리튬 배터리를 포장하고 용접하는 작업을 맡았다.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업무에 파견직을 쓰는 것은 불법이다. 2017년 헌법재판소는 ‘제품을 검사 및 포장하는 업무’도 제조업의 근간이라며 직접생산공정업무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사고 당시 아리셀에서 근무하던 103명 가운데 53명이 파견직이었다.

관련업계에서는 이러한 일용직의 불법파견 관행으로 인해 인명피해가 더 커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고가 난 화성 일대는 물론 반월·시화공단의 제조업체 상당수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안산 반월·시화공단의 경우도 대체로 안산 시내의 직업소개소를 통해 일용직 노동자들이 공급된다. 정규직이 아닌 파견직, 일용직 노동자를 고용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제조업의 특성상 이처럼 매일매일 노동자들이 바뀌며 업장을 오간다면 사고 대처에 미숙할 수밖에 없다. 제조업은 업태 특성상 위험 물질을 다루는 경우가 많거나 공정상 안전사고 위험이 높은데, 공장의 지형지물에 익숙하지 못하거나 안전교육도 미비한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파견업체 따라 오전엔 안산, 오후엔 평택”

일용직 파견근로자 가운데는 안전교육이나 사고 시 대처 방법을 알기 어려울 정도로 ‘급히 투입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반월·시화공단 노동자를 아우르는 지역노조인 ‘월담노조’ 이미숙 위원장은 “파견업체를 통해 오전부터 일하다 오후에 퇴근하려는데, 물량이 급하게 필요하다며 평택 석문단지로 실려가 야근을 했던 사례도 있다”며 “이런 행태가 예전보다 줄었지만 지금도 아예 없지는 않다”고 했다. 업무의 특성상 장기적으로 일하는 것이 어렵다는 증언도 나온다. 시화공단의 한 화장품 제조업체에서 통근버스를 운행하는 B씨는 “일감이 떨어지면 일용직부터 줄이니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불법파견이 또 다른 참사의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는 셈이다.

이날 반월·시화공단 주변에서 만난 인력사무소 직원들은 일용직 근로자의 경우 안전교육을 받기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안산역 근처에 위치한 한 인력사무소 소장 C씨는 “(현장에는) 80~90%가 외국인 근로자”라면서 “1개월에서 2개월 정도 장기 근무를 하는 경우에는 안전사항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지만, 당일 근무하고 빠지는 일용직은 교육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매일 새롭게 출근하는 사람들을 1시간씩 교육을 시키면 작업장 근무 투입이 너무 늦는다고 한다”면서 “그러니 ‘그냥 일하면서 배워라’ 하는 식”이라고 덧붙였다.

외국인 노동자를 현장에 파견하는 인근 인력사무소 관계자 D씨 역시 “당일 아침마다 출근하기 바쁜 탓에 교육이 어려운 건 사실”이라면서 “(한국)말이 안 통하는 경우에는 이미 근무해 본 외국인 중 같은 언어를 쓰는 동료를 통해 (교육 내용을) 전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전했다. 이들에 따르면 당일 근무 인력을 수급하기에 바쁜 현장에서 안전교육은 뒷전이다. 특히 언어가 통하지 않는 외국인의 경우, 오늘만 이곳에서 일하고 내일은 다른 곳으로 출근하는 탓에 교육이나 비상상황 대응 방안 등은 숙지하지 않은 채 주먹구구식 근로가 이어지고 있다.

한편 현장의 목소리와 달리, 통계자료상 일용직 노동자들은 잘 드러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발표한 ‘상반기 근로자 파견 사업 현황’에 따르면, 전체 파견 사업체 2148개 중 파견근로자 규모가 50인 미만 업체는 995개(46.3%)로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으며, 0명인 업체도 851개(39.6%)에 달했다. 파견 기간별 현황의 경우 ‘6개월 미만’ 근로자의 비율이 48.1%를 기록했다. 제조업체로 근로자를 파견하는 것이 대부분 불법인 것을 감안하면 통계에 잡히지 않는 근로자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제조업체들은 ‘일시·간헐적 사유(사고 등으로 인한 결원)’로는 파견직을 3개월 이하 근무 조건으로 채용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의 ‘상반기 근로자 파견 사업 현황’ 자료에서는 ‘일시·간헐적 사유’로 인한 종사자 수 가운데 ‘제조관련 단순노무 종사자’가 지난해 하반기 기준 54%로 절반이 넘는다.

하루하루 ‘땜빵’… “현장 안전교육 힘들다”

특히 현장에서는 높은 외국인 근로자 비율과 불법체류자 등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안산역 인근 인력사무소 소장 C씨는 “시흥·안산 지역은 80~90%가 외국인”이라며 “불법체류자도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C씨는 불법체류자에 대해 “처음엔 비자를 받고 들어오지만 재발급을 받아야 하는 시기에는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고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하는데, 그냥 안 가고 눌러앉는 식”이라며 “현장 외국인 10명 중 7~8명이 불법이라는 곳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불법체류자들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을 업체에 소개해주는 브로커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관련 부처에 등록을 한 공식 인력사무소나 직업소개소가 아닌 불법 브로커들이다. 국내에서 일자리 알선을 하려면 관할 지자체, 국외의 경우 고용노동부에 등록해야 한다.

브로커들을 통해 비정상적으로 업체에 출근하는 일용직 근로자들은 불법 신분인 탓에 안전문제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C씨는 “업자들이 불법이다 보니 인력 업체보다 훨씬 싸게 (불법체류자들을) 현장에 공급한다”면서 “(신분이) 불법이니까 교육은 못 받고 그냥 투입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외국인들 없으면 공장이 안 돌아가는 게 문제”라면서 “내국인 비율이 10~20%인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라도 안 하면 (공단 자체가) 마비되기 때문에 불법이나 편법을 써서라도 싸게 인력을 공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 많은 기사는 주간조선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