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밤 서울 중구 시청역 부근에서 한 남성이 몰던 차가 인도로 돌진해 최소 1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번 사고로 파손된 차량이 현장에서 견인되고 있다. / 박상훈 기자

시민 9명이 죽고 6명이 다친 서울 시청역 역주행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은 운전자 차모(68)씨를 교통사고 처리 특례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라고 2일 밝혔다. 지난 1일 밤 사고 직후 음주 측정, 마약 간이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은 차씨는 본지 통화와 경찰 조사에서 “급발진 때문에 사고가 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급발진 근거는 현재까지 피의자 진술뿐”이라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차씨 차량 감식을 의뢰했다. 경찰 관계자는 “차씨 차량의 EDR(사고 기록 장치)에 남은 전자 기록을 토대로 볼 때, 사고 직전 가속페달을 90% 이상 강도로 밟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경찰에 따르면 1일 오후 9시 26분쯤 차씨가 운전하던 제네시스 G80(2018년식) 차량이 시청역 인근 웨스틴 조선호텔 지하 주차장에서 빠져나온 후 일방통행 4차선 도로를 역주행하다 왼편 인도로 돌진했다. 차량은 인도에 설치된 가드레일을 뚫고 보행자 11명을 덮쳤다. 이후 다른 차량 2대를 연쇄 추돌한 뒤에야 멈췄다. 역주행 거리는 200m가량이었다. 사상자 상당수가 현장 인근에서 회식을 하거나 퇴근 후 귀가하던 중 참변을 당했다. 사망자는 모두 30~50대 남성 직장인이었다. 은행 직원 4명은 동료 승진과 인사 발령을 축하하는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인도에 있다가 희생됐다.

경찰은 목격자 진술, 사고 지점 방범 카메라 영상, 사고 차량의 블랙박스와 EDR을 토대로 운전자 과실이나 차량 결함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특히 EDR 분석은 사고 당시 차량 주행 속도를 판단하는 중요 증거다. 경찰 관계자는 “EDR 데이터만으로 급발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국과수 정밀 감식 결과를 기다릴 것”이라고 했다. 경찰은 차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그는 경기 안산 한 버스 회사에서 근무하는 기사다. 1974년 버스 면허를 취득하고 버스·트레일러 등을 몰아왔다. 차씨와 동승했던 아내는 “남편이 그간 접촉 사고 한 번도 안 냈는데, 유족들께 너무 죄송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