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지법 전경. /조선일보DB

수십억원을 빌리고 잠적한 채무자를 찾아내 폭행하고 감금한 채권자들에게 법원이 징역형과 벌금형을 각각 선고했다. 거액을 편취당한 사정은 있지만, 적법하지 않은 ‘사력 구제’ (私力救濟)를 시도한 것에 대해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울산지법 형사6단독 최희동 판사는 특수감금 및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A(40대)씨 등 5명에게 각각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B(30대)씨 등 5명에게는 각각 벌금 500원을 선고했다고 15일 밝혔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 등은 지난 2020년 8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C(49)씨에게 총 47억6000만원 상당을 빌려줬다. 이들은 많게는 18억 8000만원, 적게는 3000만원까지 C씨에게 빌려줬다고 한다.

돈을 빌린 C씨는 지난해 5월쯤부터 약속한 이자를 지급하지 못했고, 한 달 뒤인 지난해 6월부터 모든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A씨 등은 C씨의 소재를 파악해 직접 변제를 요구하는 등 추심행위를 하기로 공모하고, C씨 소재 파악에 나섰다. 그러다 지난해 6월 29일 오후 4시쯤 C씨가 부산 기장군의 은신처에 숨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현장을 찾았다. A씨 등은 C씨를 은신처에서 끌어내 얼굴을 때리고 발로 수차례 차는 등 폭행을 했다. 그러면서 C씨에게 “돈을 어디에 숨겼느냐” “마누라, 아이들 다 죽인다”고 협박했다.

이들은 C씨를 차량에 태워 양산에 있는 C씨의 사무실로 이동하려다가 경찰에 신고됐다는 소식을 접하자 목적지를 바꿔 한 정자(亭子)로 데리고 가 “너 하나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다” “돈 내놓지 않으면 살아서 못 나가”라며 위협하며 붙잡아뒀다.

검찰은 A씨 등이 다중의 위력을 통해 피해자를 감금하고, 불법적인 채권추심 행위를 했다며 유죄 의견으로 기소했다.

재판부의 판단도 비슷했다. 최 판사는 “피고인들이 피해자로부터 거액의 돈을 편취당해 이 사건에 이르게 된 경위에 참작할 만한 사정은 있다”면서도 “다수가 위력을 사용해 채권 추심한 것은 국가를 통한 형벌권 행사와 손해배상청구 등 법치국가가 허용하는 민·형사상 적법한 구제 수단이 아닌 이른바 ‘사력구제’(자력구제)를 시도한 것이어서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지적했다. 사력구제란 자기 권리를 확보 등을 위해 사법 절차를 따르지 않고 스스로의 힘을 사용하는 행위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