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피해 판매자가 시위에서 쓸 피켓을 만들고 있다.

“저보다 훨씬 피해가 큰 판매자가 많아서…. 1억500만원을 못 받았어요.”

지난 7월 30일 서울 강남구 위메프 본사 3층에서 만난 판매자(셀러) 김모(34)씨는 기자와 마주앉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세제, 비누 등의 생활용품을 5년째 팔고 있는 김씨는 그전에 티몬 상품기획자(MD)로 일한 경력이 있다. “당시 제가 일하던 부서에선 판매대금을 수기로 정산했어요. MD가 깜박하고 재무팀에 연락을 못하면 정산이 미뤄지는 거예요. 유보금이 있는지도 모른 채 폐업한 업체도 있었어요. 그럼 티몬이 그 돈을 다 가져가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볼 때 유보금은 그냥 이자놀이예요.”

티몬은 주 단위로 정산하는 셀러들의 경우 80%만 정산하고 나머지 20%는 고객 환불 요청에 대비하기 위한 유보금으로 쌓아뒀다. 유보금은 판매(딜) 종료를 해야 돌려받을 수 있다. 이날 만난 농산물 셀러 한모(63)씨는 5년간 유보금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고백했다. “딜 종료를 해야만 돈을 주는지 몰랐어요. 누적된 유보금만 7000만원이에요. MD한테 딜 종료하겠다고 했는데 자꾸 종료를 안 시켜주고 판매를 많이 할 수 있도록 유도하더라고요. 3개월 밀려서 5월 말에 겨우 딜 종료를 했는데 50일 뒤인 7월 초에 2000만원만 입금됐어요. 그러고는 이번 사태가 터졌죠.”

한 피해 판매자가 상주하는 위메프 본사 회의실 책상.

“택배비로만 1억 넘게 줘야 하는데…”

한씨는 “제 돈이면 차라리 괜찮은데 전부 줄 돈이라는 게 문제”라며 “택배비로만 1억원 넘게 줘야 하는데 위메프 미정산액이 4억원”이라고 말했다. “택배 업체에서 1000만원이라도 먼저 보내달라고 계속 문자 오고 말일이라 직원들 월급도 줘야 하는데 정말 미치겠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무작정 경북 상주에서 여기까지 운전해서 왔어요. 남에게 악하게 한 적 없이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런 시련이 닥치는지….” 담담하게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던 한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한씨는 베개 하나에 담요를 두르고 3일 밤을 위메프 본사에서 보냈다고 전했다. ‘도전’이라고 쓰인 회의실 안 책상은 한씨의 침대가 됐다. 회의실 구석에 놓인 의자 위에는 씻을 거리와 수건, 옷가지가 담긴 쇼핑백이 있었다. ‘왜 여기서 며칠 밤을 보냈느냐’고 묻자 한씨는 “위메프 관계자들이 중요한 서류를 빼 갈까봐 지키고 있다”며 “여러 피해 판매자들과 함께 힘든 부분을 공유하며 유대 관계를 쌓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사무실에는 직원들이 쓰던 노트와 컴퓨터, 옷가지를 비롯해 간식거리까지 그대로 놓여 있었다.

환불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엄청난 인파가 몰렸던 며칠 전과 다르게 이날 위메프 사옥은 한산했다. 오전 11시가 되자 피해를 입은 판매자 3명이 나갈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날 오후 2시 국회 정무위원회의 긴급 현안질의에 구영배 큐텐 대표가 출석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위메프 글씨가 새겨진 뒷면에 붉은색 매직으로 ‘구영배 구속’ ‘줄도산’ 등의 문구를 쓰고, 마스크와 모자를 챙겼다. ‘소상공인을 위한 온라인홍보 지원사업’이라고 적힌 포스터 뒷면은 ‘소상공인 죽어난다’는 내용이 적힌 피켓이 됐다.

위메프 본사에서 국회의사당 정문까지 40여분이 걸렸다. 피해 판매자들은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붉은색 매직으로 피켓을 만들었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생활용품 판매자 김모(63)씨는 “8억을 물렸다”고 했다. 티메프로부터 못 받은 판매대금이 8억원이라는 뜻이다. “금요일부터 4일 내내 위메프 본사에서 지냈어요. 금리 7% 사채 끌어다 임시로 막고 강원도에서 버스 타고 올라왔어요. 직원 20명 권고사직 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30년 동안 마진 2~3% 보고 팔아온 우리가 뭔 죄가 있어요? 티몬과 위메프의 기업회생신청은 돈을 안 주기 위해 계획적으로 한 거 아닙니까. 셀러들은 다 소상공인이라 사실 투쟁할 여유도 없어요.”

지난 7월 29일 티몬과 위메프는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양사는 같은 날 입장문을 내고 “판매회원과 소비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부득이하게 회생개시신청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법원은 지난 7월 30일 티메프에 대해 보전처분과 포괄적 금지명령을 내렸다. 보전처분은 재산을 도피·은닉할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재산을 묶어두는 것이고 포괄적 금지명령은 모든 채권자에 대한 강제집행을 금지하는 조치다. 이에 따라 회생 개시여부 결정 전까지 판매자들에 대한 미정산금 지급이 중단됐다. 정부가 파악한 미정산금은 지난 5월 기준 약 2134억원이다. 6·7월 판매분까지 포함하면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류화현 위메프 대표의 방에 피해자들의 항의문이 붙어 있다.

미정산금 최소 2134억… 최대 1조원 예상

판매대금을 받지 못한 셀러들이 국회 앞 시위를 벌이는 동안 정무위에 참석한 구 대표는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그룹이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800억원이지만 바로 정산 자금으로 쓸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정무위 소속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긴급회생 신청은 의도적 상환 회피이자 사기행위”라며 “피해 판매자들에 대한 미정산액이 1조원 가까이 된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셀러들이 입은 피해를 정산할 의지가 있냐”고 묻자 구 대표는 “티몬과 위메프를 구조조정 및 합병해서 정상화시키겠다”며 “약간만 도와주시면 피해 복구를 완전히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답했다.

이날 2시간 넘게 이어진 정무위를 실시간으로 보고 있던 셀러들은 ‘판매자에 대한 조치가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피해를 입은 소비자에 대한 조치는 이뤄지고 있는데 판매자에 대해선 관심이 덜한 듯하다. 셀러들이 티메프로부터 판매대금을 2개월 뒤에 받는 것이 문제인데 왜 이런 부분들이 잘 안 다뤄지는지 모르겠다”며 “셀러가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 당장은 드러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곧 줄도산 얘기가 나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피해 판매자는 기자에게 “정부가 5600억원 유동성 투입 얘기했지만 저희에겐 이자를 내야 하는 대출”이라며 “왜 우리가 빚을 져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선정산 대출을 통해 일부 판매대금을 미리 받은 셀러들의 고심도 깊다. 선정산 대출은 전자상거래 플랫폼에 입점한 판매자에게 은행이 판매대금을 먼저 지급하고, 정산일에 은행이 전자상거래 플랫폼에서 대신 받아 자동으로 상환하는 상품이다. 경남 창원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취급하는 한 판매자는 “‘셀러론’을 이용하고 있어 일부 정산금을 미리 받았다”며 “하지만 대출 상품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제가 갚아야 하는 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은행에서 상환 유예한다고는 하지만 저희가 빚을 떠안아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며 “못 받은 돈도 7000만원”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7월 30일 국회 정무위에 구영배 큐텐 대표가 출석한 가운데 피해자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photo 김연진

선정산 받아도 “결국 다 빚”

지난 7월 30일 금융감독원이 정무위 소속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이커머스 플랫폼 입점 업체 대상 선정산대출 규모’에 따르면 전체 대출금액 1584억1000만원 중 큐텐그룹 입점업체의 대출 규모는 839억2000만원으로, 전체의 5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선 농산물 셀러는 “지금까지는 티메프 사태에 대한 소비자 피해가 중점적으로 다뤄졌지만 판매자들의 피해가 가져올 여파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며 “판매자와 연관된 제조사나 1차 생산자들, 선정산 대출을 제공한 은행권 등에 연쇄적으로 피해가 확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주간조선이 만난 피해 셀러 중에는 티메프 사태 발생 한 달 전에 처음으로 티몬에 입점한 업체도 있었다. 침구류를 판매한다고 밝힌 한 피해자는 “티몬에서 좋은 조건으로 행사를 해준다고 해서 지난 6월 말에 처음 거래를 했다”며 “당시 수수료도 10%로 쌌다”고 말했다. “수수료도 저렴한데 15% 할인 쿠폰에 카카오페이 할인을 추가로 붙이는 거예요. 10만원짜리 상품을 수수료 1만원 받고 7만~8만원에 파는 거잖아요. 이해가 안 가서 물어보니까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서라고 하더라고요. 한 달 매출이 2억7000만원이었어요. 원래 7월 29일에 ‘단 하루’ 행사를 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최대한 지원해주겠다면서 22일로 당겼어요. 이날 매출만 7000만원이 나왔어요. 티몬은 큰 회사니까 저희는 믿었죠.”

이 피해자는 “여름 이불이 히트 상품이어서 이걸 팔아서 1년을 버틴다”며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한 달 동안 직원들이 철야 작업을 하면서 물량을 확보했는데 엄청난 사기를 당했다”고 했다. “22일 아침까지만 해도 MD가 프로모션 좋은 조건에 해주겠다고 했는데 오후부터 티메프 사태 관련 기사가 나기 시작하더라고요. 23일에 7000만원어치를 배송해야 하는데 보내질 못했어요. 업체가 두 달 후에 정산받는다는 것을 모르는 소비자들은 ‘판매자도 공범’이라며 비난하고…. 구매자들께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공지하고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는데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상처더라고요.”

“22일에도 MD와 프로모션 논의”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상적인 상거래에서 이 같은 대형 피해가 발생한 것은 IMF 외환위기 때 유통업체 도산 이후로 처음”이라며 “정부가 판매자에게 적어도 30%는 보상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티메프 사태에 세금이 들어가는 건 불가피하다. 기업회생 신청이 받아들여지기 힘들 것으로 보이는데 파산하면 판매자들이 돈을 영원히 못 받는다. 영세 사업자들이 부도가 나면서 승수 효과로 국민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사회적 비용까지 감안할 때 세금을 쓰는 것이 맞다. 이번 사태는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시장 실패의 대표적 사례다.”

국회 정문에서 시위를 마치고 위메프 본사로 돌아온 판매자들은 다른 피해 셀러들과 함께 대책회의를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5월 판매분 미정산금이 5억원’이라는 내용의 글을 올린 한 피해 판매자는 이 회의에서 “피해 금액이 큰 셀러들에겐 채권 추심이 들어올 수 있어서 방어가 우선”이라며 “큐텐은 셀러들이 말을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의도적으로 판을 설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모인 피해 판매자들이 내린 결론은 큐텐을 형사 고소하는 것이었다. 혹시나 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며 이들은 늦은 밤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위메프 본사 3층의 불은 밤 11시가 넘도록 켜져 있었다.

이틀 뒤인 지난 8월 1일 오전 11시, 피해 판매자 17명은 서울 강남경찰서에서 구 대표와 목주영 큐텐코리아 대표, 류광진 티몬 대표, 류화현 위메프 공동대표이사를 전자상거래법 위반과 사기·횡령·배임 혐의로 고소했다. 이들의 피해 금액은 최소 15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검찰은 구 대표 등에게 사기 및 횡령·배임 등 혐의를 적용해 서울 강남구 티몬·위메프 본사, 서울 서초구 구 대표 자택 등 총 10곳을 압수수색했다. 피해 판매자들은 입장문을 통해 “증거 인멸이 걱정스러워 위메프 본사를 피해자들이 지켰는데 빠르게 압수수색을 진행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드디어 저희도 집에 갈 수 있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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