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모산은 맨발걷기의 성지란 이명이 무색하지 않게 걷기길이 잘 조성돼 있다. /김용재 기자

“선생님, 제가 작년 췌장암 진단받고 진짜 죽을힘을 다해서 맨발걷기 하고 있거든요…. 하루에 7시간씩 하는데 도저히….”

말끝에 울음이 묻어나왔다. 가볍게 즐기자고 생각하고 나왔던 마음을 바로 고쳐 잡았다. 사실 맨발걷기 현장은 하하호호 할 줄 알았다. 기분 좋게 발바닥 맨살을 간지럽히는 황토를 느끼면서, 산들바람에 땀을 식히고, 주변 사람들과 환담을 나누는. 그런 장면들이 이어질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막상 실제로 와보니 그렇지 않았다. 전국에서 맨발걷기를 배우고자 찾아온 이들은 모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잡은 것이 지푸라기가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기를 거듭 확인하고자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수원에서 온 한 참가자는 맨발걷기에 푹 빠졌다며 아예 ‘맨발걷기’ 글자가 적힌 자체 제작 티셔츠를 입고 나타났다. /김용재 기자

◇암, 난치병 고치려 전국에서 온 인파

대모산은 지금 우리나라에 휘몰아치는 맨발걷기 열풍이 시작된 곳이다. 그리고 이 폭풍을 일으킨 사람이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 박동창 회장이다. 그가 처음 맨발걷기를 시작했던 2000년대 초중반만 해도 찻잔 속 태풍으로만 여겨 졌는데 지난해 맨발걷기가 KBS TV ‘생로병사의 비밀’에 나오고, 또 유튜브에서 여러 효과를 봤다는 영상들이 속속들이 올라오면서 걷잡을 수 없는 흐름이 형성됐다.

“제가 폴란드 LG페트로은행 은행장으로 있을 때 건강이 무척 안 좋았어요. 스트레스가 많았죠. 의사는 ‘이러다 죽는다’고 말했고요. 그때도 걷는 걸 좋아해서 근처에 있던 카바티 숲을 자주 걸었어요. 그래도 딱히 좋아지는 게 없었죠. 그런데 TV에서 맨발로 걷는 걸 보고 뭔가 울림이 있어 다시 카바티 숲을 찾아 맨발로 걸어봤죠. 걷고 나니 스트레스도 줄고, 잠도 잘 왔어요. 간 수치도 떨어지고, 이명도 자취를 감췄죠. 그렇게 모든 게 시작된 겁니다.”

박 회장은 2006년 맨발걷기에 대한 책도 썼다. 그리고 2016년 길었던 금융인 생활을 접고 은퇴한 이후 서울 대모산에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 힐링스쿨을 개설했다. 그렇게 대모산은 맨발걷기의 성지가 됐다. 지금도 매주 토요일이면 전국 각지에서 박 회장에게 맨발걷기를 배우러 사람들이 찾아들고 있다. 그 현장을 직접 찾아봤다.

“처음 오신 분 한 번 손 들어보시겠어요?”

지난 7월 어느 토요일 대모산 한솔공원. 40여 명의 참석자들 중 여럿이 손을 든다. 안산에서 온 한 중년 여성은 “피검사를 할 때마다 혈소판 수치에 문제가 있다고 하고, 지금은 또 골수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너무 골치 아파 맨발로 걸어보려고 유튜브 보고 찾아왔다. 무릎도 아프다”고 했다. 박 회장은 “안산이면 안산중앙공원에 좋은 황톳길이 있으니 앞으로 거기서 하면 된다”며 “맨발걷기 2주 만에 무릎에 물이 찼던 사람이 호전된 사례가 있다”고 위로의 말을 전했다.

지난해 췌장암 진단을 받고 올해 2월 수술을 받았다는 다른 중년 여성의 사연은 모두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그는 항암치료를 12번 받았고, 작년 7월부터 꼬박 1년간 맨발걷기를 하고 있다. 심지어 매일 6~7시간씩 했다. 또 일주일에 2번은 암 환자들이 많이 찾아 효과를 봤다는 무의도 하나개해수욕장까지 다녀왔다. 그의 집이 강동이니 서울을 가로질러 다녀온 셈이다. 그런데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근 검사에서 안 보이던 혹이 보이기 시작했다며 가느다랗게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마쳤다. 박 회장은 “얼굴은 건강한데 표정이 안 건강한 것”이라며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문제. 조금도 걱정하지 말고 이대로 계속하면 된다”고 말했다.

맨발로 걸을 땐 발을 뒤꿈치부터 천천히 내딛는 것이 중요하다. /김용재 기자

◇완치, 개선, 재활… 맨발걷기의 기적?

맨발걷기를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체력증진이 목표가 아니다. 목적은 완치다. 한국산림휴양학회에 따르면, 숲길을 맨발로 걷는 사람들의 목적은 첫 번째 건강, 두 번째가 질병치유다. 운동화를 신고 걷는 이들은 첫 번째 건강, 두 번째가 기분전환, 깊은 수면인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있다. 맨발걷기를 통해 몸이 조금 좋아지는 정도를 노리는 것이 아니다. 낫기를 원하는 것이다.

실제로 맨발걷기를 한 뒤 병이 나았다는 사람들이 있다. 당일 현장에서도 그런 이를 만날 수 있었다. 부천에서 온 70대 강제원씨는 “10년 동안 신장이 나빴다. 약을 먹어도 크레아티닌 수치가 줄곧 정상범위 이상이었다”며 “그러다가 6개월 맨발로 걸으니까 바로 정상이 돼 놀라웠다”고 말했다. 분당 야탑동에서 온 60대 김모씨도 “2년 전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 친구가 맨발걷기를 권해 재활을 겸해 아침 6시에 일어나 분당 영장산을 맨발로 다녀왔다. 맨발걷기 덕에 2년 동안 재발은커녕 어떤 문제나 후유증도 겪지 않았다”고 했다. 박 회장이 전해주는 사례들은 더 놀라운 것들이다.

“박성태 교수란 분은 전립선암 말기 판정을 받았어요. 의사도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죠. PSA 수치란 것이 4 이하여야 하는데 935가 나왔고, 흉추 9, 10번에도 전이돼 새까맣게 썩었어요. 그런데 맨발걷기를 하고 단 몇 달 만에 기적적으로 호전됐어요. 흉추도 돌아왔고, PSA 수치도 정상이 됐죠.

저와 같이 걸었던 사람들 중에도 같은 케이스가 몇 분 더 있어요. 만성두통으로 9시간 뇌수술을 받은 분은 수술은 잘 됐다는데 통증이 영 가라앉지 않았죠. 진통제를 달고 살았는데 맨발걷기 하고 두 달 만에 냉장고에 가득 있던 진통제를 다 버렸다고 했습니다. 또 족저근막염이 없어진 사람이 있고, 충수암에 걸린 분도 있었는데 늘 와서 조용히 맨발걷기만 하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5개월 만에 암세포 반이 사라지고, 9개월이 지나자 완치됐어요. 모두 다 저희 맨발걷기운동본부 카페에 결과를 공유해 줘서 알게 된 사실들입니다.”

대모산 맨발걷기는 한솔공원에서 출발해 대모산유아숲체험원 방향으로 나아간다. /김용재 기자

◇지압효과와 접지효과

맨발걷기가 어떻게 이런 기적을 만들 수 있는 걸까? 박 회장의 설명은 이렇다. 지압과 접지다.

“발바닥에는 모든 장기의 지압점이 분포돼 있습니다. 발마사지를 받으러 가면 지압사가 20~30kg의 힘으로 안 좋다고 말하는 기관과 연결된 지점들을 눌러 주죠. 그런데 맨발로 걸으면 우리 몸무게 60~70kg으로 자연스럽게 모든 장기의 지압점을 지압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혈액순환이 왕성해지죠.”

이 지압효과를 최대한 살리기 위한 걸음걸이가 존재한다. 첫 번째 두꺼비걸음이다. 자연과 완전히 일체화된 느낌으로 어깨를 늘어뜨리고 천천히 무겁게 걷는다. 두 번째 활새걸음이다. 경쾌하게 어깨를 쭉 펴고 팔을 휘적거리면서 리드미컬하게 걷는다. 세 번째 까치발 걸음이다. 박 회장은 “발가락 끝은 머리, 발바닥 중간은 몸통 장기들, 뒤꿈치는 대퇴부 아래에 연결된 지압점”이라며 “까치발로 걸으면 머리 쪽 혈액순환에 도움이 된다. 어떤 분은 맨발 까치발 걸음 3일 만에 안구건조증 약을 다 버렸다고 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이 맨발걷기 중간 쉼터에서 어싱 효과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김용재 기자

네 번째 발가락 만세 걸음이다. 발가락을 세워 발바닥 중간이 땅에 먼저 닿도록 한 뒤 짓이기듯이 걷는다. 몸통 장기가 좋아지는 걸음이다. 다섯 번째는 반대로 발가락을 오므리는 걸음이다. 발끝을 지압하는 것이다. 또한 도장 찍듯 밟고 발가락을 쫙 벌려 땅을 잡아채듯 걷는 스탬프걸음, 뒤로 옆 사람과 손을 잡고 걷는 사랑의 걸음 등이 있다. 박 회장은 “어디가 안 좋은지에 따라 다른 걸음을 적용해 걸으면 된다”고 했다.

그 다음은 접지, 어싱 효과다. 박 회장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

“각종 만성질환의 원인은 활성산소입니다. 이 활성산소는 성질이 양전하죠. 땅에는 음전하가 무궁무진해서 맨발로 걸으면 이 음전하가 몸으로 올라와서 활성산소를 중화시켜 소멸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줍니다. 이게 어싱 효과 첫 번째 항산화죠.두 번째 땅속에서 올라온 전자는 적혈구의 제타전위를 2.7배 높여 줍니다. 밀어내는 힘이 세졌다는 의미인데 그러면 혈류의 속도가 빨라지고 혈액이 끈적이지 않고 묽어지게 돼요. 그러면 혈전도 안 생기고 혈액 순환도 왕성해지죠. 세 번째 미토콘드리아에도 자유전자가 전달돼 아데노신삼인산ATP 생성을 촉진해 힘이 더 솟게 만듭니다. 네 번째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안정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집과 신발로 인해 접지된 삶을 살지 못하니 병을 달고 살게 되는 거죠.”

대모산 현장에서는 접지되는 순간의 전위차 테스트도 경험할 수 있었다. 전극봉 중 하나는 손에 쥐고, 다른 하나는 땅에 꽂은 채 부도체 위에서 한 번, 맨발로 땅을 밟은 채 한 번 전위차를 측정하는 것이다. 부도체 위에 있으면 계기에 숫자가 40~100밀리볼트를 가리키는데, 땅에 내려서면 0에 가까워졌다. 맨발걷기운동본부 관계자는 이를 두고 “40~100으로 측정된 것은 몸속에 축적된 양전하를 띤 활성산소다. 맨발로 걸으면 이제 땅의 음전하가 올라와 중화돼 계기판이 0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위차 테스트. /김용재 기자

◇“의사 말 듣지 말라”고 한 적 없어

이 기사가 나간 뒤 댓글은 “유사과학이다”와 “맨발걷기 해보고 말해라”로 나뉘어 한바탕 설전을 펼칠 것이다. 일단 대부분의 주장은 현대의학계에서 인정하지 않는 내용이 맞다. 특히 어싱과 관련돼 그렇다. 전위차 테스트에서 40~100에서 0으로 숫자가 바뀐 것은 기존의 과학으로는 단순히 접지돼 전하가 빠르게 이동하면서 전위가 같아진 물리적 현상일 뿐, 활성산소 감소 등 생리적 현상을 만드는 건 아니라고 설명된다.

박 회장은 “최근 건강보험공단 고위직을 만났는데 그분도 지압효과는 인정하지만 접지효과는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하더라”며 “실제로 접지한 후 혈액이 맑아졌다는 연구결과 영상을 보여 줘도 예외적 현상이라고 일축했다”고 했다.

여기선 다만 지압효과나 접지효과 모두 맨발걷기를 하고 나서 몸이 좋아진 사람들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하는 가설이란 것으로 갈음해 두고자 한다. 실제 타임라인도 그렇다. 박 회장은 2001년부터 맨발걷기를 시작했고, 그때 이미 몸이 좋아졌다고 느껴 2006년 맨발걷기 홍보에 나섰다. 그리고 접지효과는 2010년 클린턴 오버, 스티븐 시나트라 등이 책 <어싱>을 통해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한 바 있다. 박 회장은 이런 말도 덧붙였다.

“유사과학이라고 하면 사람들을 꾀어서 돈을 벌 요량이어야죠. 맨발걷기는 돈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 맨발걷기운동본부는 회비를 절대 받지 않습니다. 각자 경비를 부담하고 자발적 후원만 받아요. 뭘 파는 것도 없고, 사라고 하지도 않아요.

그리고 저는 ‘의사 말 듣지 말고 내 말만 들어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병원 가지 말고 맨발로 걸으면 다 낫는다는 것이 절대 아니에요. 의사한테 치료 받을 것은 다 ‘받고’, 그리고 맨발로 걸으면 좋다는 거죠. 말하자면 현대의학과 맨발걷기의 협치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면, 현대의학을 완전히 무시하고, 무조건 맨발걷기하면 다 낫는다는 게 아닙니다. 현대의학 치료를 잘 받고, 맨발걷기도 하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거죠.”

친구 따라 맨발걷기를 체험하러 온 미국 출신 클락슨, 펀크씨가 박 회장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김용재 기자

◇맨발걷기의 기적은 진실일까

한솔공원에서 출발한 이들은 유아숲체험원을 경유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오솔길을 걸었다. 걷는 내내 박 회장에게 질문 세례가 끊이지 않았다. 그는 “맨발걷기를 할 때 스마트폰 등 전자제품을 들고 있으면 어싱 효과가 없다던데”란 질문에 “아니다. 괜찮다. 상관없다”고 답했고 “흙이 아닌 다른 지형지물의 어싱 효과는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는 “야자매트와 나무데크는 효과가 없다. 화강암 바위는 된다”고 했다. “마사토와 황토 중 어떤 것이 더 어싱이 잘 되나”란 질문에는 좀 더 자세히 답했다.

“황토나 일반 흙이나 어싱의 관점에선 다 똑같습니다. 중요한 건 땅이 촉촉해야 해요. 즉 수분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땅속에서 전자가 잘 올라와요. 그래서 요즘 해수욕장에서 맨발걷기 하는 분들이 많죠. 비 오는 날 우산 쓰고 하는 경우도 많고요. 또 마사토는 바싹 마르면 접지가 잘 안 되는 편입니다. 물론 그건 황토도 마찬가지지만 일반적으로 점성이 더 많은 편이죠. 탄력성도 있고요. 대신 마사토는 지압이 더 잘됩니다. 일장일단이 있는 셈이죠. 결론적으로 어디든 맨발로 걸으면 좋습니다.”

박 회장은 최근 평일 5일 중 4일은 전국 방방곡곡으로 맨발걷기 강연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김용재 기자

그래서 박 회장은 “신발은 가장 유용하지만 가장 해로운 발명품”이라고도 했다. 신발을 신으면 발바닥 아치를 둘러싼 근육이 경직되는데, 맨발걷기를 하면 이 근육이 풀어지고, 혈액도 펌핑돼 건강해진다는 논리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간다. 간절하게 건강했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맨발걸음들이 출발지인 한솔공원으로 되돌아간다. 일반적인 산꾼 기준으론 몸이 풀리지도 않을 거리와 속도로 걸은 것이지만 벌써 체력이 소진돼 조용히 자취를 감춘 이들도 제법 많았다. 이들의 뒷모습을 본다. 맨발의 기적을 간절하게 믿어보려는 사람들이자, 실제로 맨발로 걸어서 나았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지켜보는 시선은 두 갈래로 나뉜다. 집에서 우울하게 웅크리고 있기보다는 차라리 밖에서 맨발걷기라도 하는 것이 낫다는 사람들과 비과학적인 이야기를 생산해 환자들이나 가족들에게 헛된 희망을 심으면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과연 맨발걷기의 기적은 진실일까, 아니면 약간의 거짓이 섞여 있지만 묵인해 줄만한 ‘위약’일까, 그간 한국사회를 좀먹어 왔던 유사과학 사례의 연장선일까.

<월간산 8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