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29일 탄소중립기본법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직후, 이번 ‘기후 소송’을 제기한 청구인과 법률 대리인단은 서울 종로구 헌재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번 소송은 태아·어린이·청소년 등 미래 세대가 주축이 된 아시아 첫 기후 소송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이들은 “이번 판결은 끝이 아닌 기후 대응의 시작”이라며 “오늘 판결은 기후 위기 속에서도 안전하게 살아갈 우리의 삶이 여기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했다.
2020년 3월 청소년기후행동에서 기후 소송을 제기한 지 4년 5개월 만에 나온 판결에 소송 참가자들은 감격한 모습이었다. 일부는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보였다. 서울 흑석초 6학년 한제아(12)양은 “저희는 미래 세대라고 불리지만 지금 여기 존재하고 살아가고 있다”며 “앞으로 저와 같은 어린이들이 헌법 소원에 나서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번 판결이 더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번 소송은 2020년 3월 청소년 환경 단체 ‘청소년기후행동’ 19명이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당시 정부의 ‘탄소중립기본법’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청소년의 생명권·환경권을 침해한다며 헌법 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2021년 10월에는 시민 단체, 정당도 비슷한 내용의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2022년 6월 당시 태명이 ‘딱따구리’인 20주 차 태아(2022년 10월 출생)를 비롯해 2017년 이후 출생한 아기 39명, 6∼10세 어린이 22명 등 ‘아기기후소송단’ 62명이 헌법 소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는 첫 청구 후 4년 만인 올해 4월 이 소송들을 병합해 처음 공개 변론을 열었고 심리 절차를 밟아왔다. 청구인단은 ‘수십 년 뒤 이 땅 주역으로 살아갈 미래 세대가 현재 국가에 책임을 물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논리를 폈다.
한제아양은 이날 본지 인터뷰에서 장래 희망이 가수·프로게이머·군인·농부 네 가지라고 했다. 그는 “커서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은데, 이런 기후 위기가 계속되면 제가 할 수 없는 것도 많아질 것이고 행복하지도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제주도에 사는 정두리(9)양도 소송에 참여했다. 정양은 “서울은 냄새가 많이 나는데 제가 사는 곳은 나무도 많고 시원한 느낌이 든다”며 “환경이 망가지면 나무들도 나쁜 공기를 마실 것이고 어린이들 살 곳도 다 파괴될 것 같아 걱정됐다”고 했다.
2020년 헌법 소원 제기 당시 18세였던 김서경(22)씨는 이제 대학생이 됐다. 그는 “위헌 결정은 기후 위기 속 보호받을 기본권을 인정하는 판결”이라며 “이 판결로 시작될,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를 기대한다”고 했다. 김씨는 “법적으로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것이 기본권이란 게 인정됐으니 기후 위기 속에서 어떻게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을지를 앞으로 고민해 보겠다”고 했다.
‘청소년 기후 소송’ 법률 대리를 맡은 이병주 변호사는 “독일 기후 소송처럼 우리나라 국회의 후속법 개정 과정에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 전체에 대해 실질적인 강화가 이뤄질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윤세종 변호사도 “오늘 판결로 우리는 기후변화가 우리의 기본권 문제이며 누구나 기후변화 문제에서 안전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정부와 국회는 기한 내에 헌법 불합치 결정 취지에 따라 탄소중립기본법 관련 규정을 개정하고 미래 세대 권리를 고려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시민 단체 ‘기후솔루션’도 이날 입장문을 내고 “아시아 최초의 헌법 불합치 결정은 기후 대응의 중요한 이정표”라며 “돌이킬 수 없는 임계점을 앞둔 엄중한 시기에 국회·정부는 미적대지 말고 후속 조치를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