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이 ‘딥페이크 성범죄’ 사태와 관련해 3일 기준 경찰의 수사 협조 요청에 여전히 ‘무응답’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텔레그램은 이날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긴급 삭제 요청한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을 모두 삭제하며 사과 뜻을 전달해왔다. 텔레그램이 최근 딥페이크로 악화된 국내 여론을 의식해 성범죄 영상물을 긴급 삭제하면서, 정작 성범죄 피의자 특정을 위한 정보 공유에는 미온적인 입장을 유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에 따르면, 3일 오후 6시 기준 서울경찰청은 텔레그램 측으로부터 아무런 답신을 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경찰은 딥페이크 성범죄 방조 혐의로 텔레그램 법인에 대해 내사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경찰은 텔레그램이 각종 범죄와 가짜 정보 유통을 방치했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이를 돕는 방조(幇助) 행위를 한 혐의를 들여다보고 있다. 이를 위해 경찰은 최근 텔레그램 본사에 이메일로 성범죄 방조 혐의에 대한 사실 확인 질문 등을 담은 공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 특정을 위한 정보를 요청했다”며 “여전히 텔레그램 측으로부터 아무런 답신을 받지 못해 답답한 노릇”이라 했다. 한 경찰 수사관은 “텔레그램 측의 이중적인 태도가 놀랍다”고 했다.
텔레그램은 9억명 이상의 이용자를 거느린 세계 4위의 온라인 메신저 겸 소셜미디어 서비스로, 영업 본사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있다. 텔레그램을 비롯해 주요 빅테크가 메신저에 주로 사용하는 것은 ‘종단 간 암호화(End-to-End Encryption)’ 기술이다. 메시지를 주고받는 모든 과정이 암호화된다. 수신자와 발신자 외에는 대화 내용을 알 수 없고, 메신저 업체의 서버에도 내용이 남지 않는다. 만약 수사기관이 메시지를 확인하려면 수신자와 발신자를 직접 조사하는 수밖에 없다. 딥페이크(AI로 만든 진짜 같은 가짜 콘텐츠) 사건처럼 범죄에 대규모 인원이 연루되면 사실상 수사가 불가능한 것이다.
경찰청이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경찰이 텔레그램에 수사 협조 요청 답신을 받은 경우는 ‘0′(제로)다. 경찰청은 지난 2021년부터 메타, 구글, 틱톡 등 주요 글로벌 IT 기업들과 수사 협력 차원에서 회의를 열어왔는데, 텔레그램과는 대면 회의를 진행하지 못했다.
텔레그램에 답신을 받지 못한 경찰과 달리, 방심위는 3일 “텔레그램 측이 지난 1일 긴급 삭제 요청한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 25건을 모두 삭제했다며 사과의 뜻과 함께 신뢰 관계 구축 의사를 전해왔다”고 밝혔다. 텔레그램은 이날 동아시아 지역 관계자의 공식 이메일 서한을 방심위에 보내 “최근 한국 당국이 자사 플랫폼에서 불법 콘텐츠를 다루는 데(with handling illicit content on our platform)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언론보도를 알게 됐다”고 밝혔다. 텔레그램 측은 “현재와 같은 상황 전개를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방통심의위와 양측간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면 사과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텔레그램 측은 방심위에 자사와 소통할 전용 이메일을 새로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