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모(36)씨는 지난 4월 일자리를 찾던 중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캄보디아에서 현지 통역 등 사무 업무를 도와주면 월 600만원을 준다”는 취업 공고를 봤다. 공고에는 ‘학력, 나이 무관. 간단한 영어 회화 실력만 갖추면 된다’고 적혔다 공고에 나온 이메일로 직접 물어보니, 본인을 인사 담당자라고 밝힌 한 한국인이 직접 전화가 왔다고 한다. 담당자는 “캄보디아에 오기만 하면 왕복 항공권 값 뿐 아니라 거실과 화장실이 딸린 직원용 숙소도 6개월 간 무료 제공하겠다”고 했다.
알고보니 ‘취업 사기’였다. 신씨는 캄보디아 프놈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중국인 4명의 손에 이끌려 2시간 떨어진 한 시골 마을로 끌려갔다고 한다. 면접을 위해 신원을 확인해야 한다며 여권, 신분증을 빼앗았고, 보이스피싱 전화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고 한다. 그는 지난 5월 중순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지인에게 연락을 취했고, 캄보디아에 있는 한인들 도움으로 탈출했다. 신씨는 “감금됐던 한 달 동안 수차례 폭행도 당했다”며 “밤마다 악몽에 시달린다”고 했다.
신씨처럼 캄보디아에서 납치, 감금됐다는 피해는 올해 급증하고 있다.
국민의힘 김건 의원이 외교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재외국민 납치·감금 현황은 2022년 48건, 지난해 98건, 올해 상반기 97건으로 증가 추세다.
피해 대부분은 아시아에서 발생했다. 특히 캄보디아에서 납치·감금 피해 건수는 2022년 11건, 2023년 21건, 2024년 상반기 76건으로 폭증했다
경찰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를 겨냥한 캄보디아 리딩방 조직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취업 사기를 빙자한 납치 감금이 증가하고 있다. 피싱 조직원이 국내 커뮤니티 등에 월 500만원 이상의 높은 급여를 약속하는 취업 공고가 적지 않다고 한다. 지난 1월 우리나라 국민 7명이 캄보디아 내 불법 업체에 여권과 짐을 뺏긴 채 강제로 이동 중이라는 신고가 접수돼 현지 경찰에 의해 구출된 바 있다. 이들은 해외 취업 사기 피해를 입었지만 주재국 이민청으로부터 조사받은 후 불법 취업 혐의로 해당 국가로부터 추방조치됐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작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얀마에서는 약 12만명, 캄보디아에서는 약 10만명이 온라인 사기에 동원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온라인 사기 단체에 납치된 한국인 19명이 미얀마 경찰에 구조된 일이 있었다. 사기 조직은 한국인, 미국인, 중국인을 가리지 않는다. 이들은 특정인·기관 사칭 범죄인 피싱, 로맨스 스캠, 투자 사기, 쇼핑 사기, 신원 도용, 기프트카드 사기에 동원되면서 2차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 조직은 주로 중국계가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인권사무소는 “중국계 갱단이 운영하는 사이버 사기 조직은 이제 두바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조지아를 비롯한 세계 다른 지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 외교부는 지난 2월 ‘동남아 지역 취업 사기 범죄에 대한 유의’라며 이례적으로 주의를 당부했다. 외교부는 “골든트라이앵글(미얀마, 라오스, 태국)과 캄보디아 같은 일부 동남아 국가에서 우리 국민을 상대로 불법행위를 강요하는 취업 사기가 일고 있다”며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을 통해 고수익 해외 취업이 가능하다고 꼬신 뒤 보이스피싱, 온라인 도박과 관련한 불법행위를 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건 의원은 “해외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납치 및 감금 사건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라며 “이러한 사건들이 취업 사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재외국민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외교부와 유관 기관의 강화된 조치가 절실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