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6일 오전 8시 22분 서천공주고속도로 하행선 청양휴게소. 40대 A씨는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차 밖으로 나와 혼자서 비틀거렸다. 반소매 내의와 속옷 차림으로 몸이 흠뻑 젖은 상태였다. 경찰은 마약 투약을 의심해 차량 내부를 수색했으나 마약류와 주사기 등을 발견하지 못했다. A씨는 음주와 수배 상태도 아니었다. 혼자 운전할 수 있다고 했던 A씨는 휴게소를 나와서도 비틀거리며 위태롭게 곡예 운전을 했다. 결국 A씨 차량을 갓길에 멈춰 세운 경찰은 눈에 초점이 없고 몸을 뒤흔드는 행동 등을 토대로 A씨가 이미 마약을 한 뒤 운전대를 잡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마약 검사 결과 A씨 소변에서는 필로폰 양성 반응이 나왔다. 경찰은 A씨를 구속 수사한 끝에 지난 13일 검찰로 송치했다.
지난달 서울 강남의 한 도로 건널목에선 20대 여성이 갑자기 쓰러졌다. 경찰과 함께 출동한 구급대원이 여성의 건강상태를 살폈지만 술 냄새도 나지 않고 맥박도 정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이 여성의 어눌한 말투와 축 늘어진 몸 상태를 보고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 여성의 가족에게 연락하기 위해 소지품을 확인한 경찰은 가방 안에서 2개의 비닐봉지 안에 든 흰색 가루와 빨대를 발견했다. 마약이었다. 경찰은 이 여성이 마약 투약 후 거리로 나와 쓰러져 있던 것으로 보고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검거했다.
마약에 취한 채 대낮에 도심을 활보하거나 운전을 하다 사고를 일으키는 등 2차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경찰청이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마약류 투약 후 살인, 강도, 교통범죄, 강간 등 2차 범죄는 2019년부터 작년까지 최근 5년간 999건에 이른다. 2019년 236건, 2020년 182건, 2021년 230건, 2022년 214건, 작년 137건이다.
마약류 투약후 저지른 2차 범죄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교통 범죄(304건)’다. 마약을 먹고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내거나 인적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경찰은 마약 운전이 심각하다보니 작년부터 처음으로 통계를 잡기 시작했는데, 작년에만 마약류 투약 후 교통 사고 5건으로 13명 부상 당했다. 지난 5일엔 마약을 투약한 상태에서 차를 몰다 사고를 낸 20대 운전자와 동승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20대 남성 A씨는 지난 5일 오후 9시쯤 인천시 계양구 계산동의 한 도로에서 오토바이를 치어 30대 운전자를 다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동승자 B씨와 함께 케타민을 투약한 뒤, 차량을 운전하다가 사고를 낸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5월 31일엔 경부고속도로 양재나들목 인근에서 앞서 가던 차량을 들이받고 40km 가량을 도주한 20대가 구속됐다. 마약 간이검사에서 필로폰 양성 반응이 나타났다.
마약 투약 후 강력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 최근 5년 간 상해 및 폭행 173건, 강간 92건, 강도 39건, 방화 20건, 살인 12건, 살인 미수 8건 등이다. 최근 대전지법은 마약을 투약한 상태에서 동거하던 24세 여자친구를 살해한 B(24)씨에 대해 1심 징역 22년을 선고했다. B씨는 지난 3월 20일 대전 서구 탄방동의 한 원룸에서 여자친구의 목을 조르고 의식을 잃은 피해자를 흉기로 내리쳐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B씨는 과거 우울감 등을 해소할 목적으로 필로폰 0.5g을 구매했고 범행까지 약 2일간 총 5차례에 걸쳐 반복 투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마약류 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초범이거나 투약자의 연령이 어리면 기소유예도 가능했던 과거와 다르다. 대검찰청이 발간한 ‘마약류 범죄 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마약류 사범 중 1심을 선고받은 인원 6030명 중 56.5%인 3409명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최근 3년간 1년 미만의 가벼운 처벌을 받은 비율은 지난 2021년 9.8%에서 지난해 8.3%로 소폭 낮아진 반면 3년 이상~7년 미만의 징역형을 받은 비율은 2021년 29.7%에서 지난해 30.7%로 올랐다.
하지만 마약류 범죄를 가중 처벌하는 등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각에서 나온다.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형량을 적용하는 중국 등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는 처벌이 솜방망이라는 주장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올해 3월 마약류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높인 것은 이러한 관점에서 주목된다. 양형위는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거나 대량의 마약류를 제조·유통하는 경우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것을 권고했다. 또 마약류 중독의 관문이 되는 대마를 단순히 소지하거나 투약하는 범행도 더 무겁게 처벌할 것을 권고하기로 했다. 일선 재판부가 양형 기준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를 벗어나 판결하려면 판결문에 사유를 기재해야 하므로 합리적 이유 없이 양형기준을 위반할 수는 없다.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은 “마약운전 등 타인의 일상과 생명까지 위협하는 ‘마약 후 2차 범죄’ 실태는 더 심각한 사회 문제”라며 “마약탐지 기술개발 및 단속체계를 강화해 일상 속 마약 범죄 확산을 방지하고, 2차 범죄에 있어서는 가중처벌 등 엄정히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