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3년 3월 30일 서울 중랑구 망우로 상봉지하차도 앞 도로에 신호과속단속장비 및 후면 무인교통단속장비가 설치되어 있다. /뉴스1

수원에서 택배 기사로 일하고 있는 정모(45)씨는 교통법규 위반 과태료를 수차례 내지 않은 ‘상습 연체자’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도 과태료를 낼 생각이 없다”고 했다. 최근 3년간 속도 위반으로 세 차례, 총 12만원 과태료 통지서를 받았다. 그는 “택배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힘든 마당인데 어떻게 과태료를 매번 내겠냐”며 “주변 택배 기사들도 ‘소액 과태료는 단속을 잘 하지 않으니 걱정 말라’고 해서 일단 버텨볼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양인성

경찰이 물린 과태료 중 실제 내는 비율은 절반을 겨우 넘는 53.6%(지난해)로 4일 나타났다. 과태료 부과액 2조2293억원 중 1조2284억원가량만 걷혔다. 누적 미수납액도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1조609억8600만원)했다. 정씨처럼 과태료를 내지 않고 ‘나 몰라’식으로 나오는 사람이 수십만 명이기 때문이다. 경찰청이 부과하는 과태료는 속도나 신호, 주·정차 등 교통법규 위반에 따른 것이 가장 많다.

그래픽=양인성

2022년 교통법규 위반으로 경찰이 징수한 과태료만 1조831억원이다. 2018년부터 무인(無人) 교통 단속 카메라를 대폭 늘려 부과 액수가 늘었다. 하지만 과태료는 벌금이나 과료(科料)와 달리 형벌이 아니다. 고액·상습 체납을 해도 강제 구인되는 일은 거의 없다. 전과도 남지 않는다. 단속 카메라에 찍힌들 운전자를 확인할 수 없으니 벌점도 부과되지 않는다. 현장에서 운전자를 확인해 부과하는 범칙금은 미납하면 면허를 정지당하기에 납부율이 90%에 이르는 것과 대조적이다.

과태료를 체납하면 첫 달은 3%, 이후 매달 가산금 1.2%가 최장 60개월까지 부과된다. 가산금 상한선은 과태료의 75% 수준이다. 비교적 소액이기 때문에 무시하는 사람이 많다. 주차 위반으로 과태료 4만원이 부과됐다면 2년 동안 내지 않고 버틴다 해도 가산금은 1만2720원에 불과하다.

이렇게 과태료를 내지 않는 사람이 수십만 명이나 된다. 경찰은 “이렇게 많은 사람을 하나하나 제재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2022년 현재 30만원 이상 교통 과태료를 체납한 사람은 누적 55만여 명, 100만원 이상 체납자는 16만여 명에 이른다. 경찰 관계자는 “과태료는 안 내더라도 벌점이 붙지 않아 차량 소유자들이 ‘내지 않아도 되는 돈’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며 “수십만 명을 일일이 찾아가 ‘꼭 납부해야 한다’고 독촉하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현행 질서위반행위규제법을 보면 1000만원 이상 고액, 3회 이상 1년 경과 상습 체납자는 유치장 등에 감치(監置)할 수 있다. 하지만 경찰에서 부과한 소액 과태료가 가산돼 1000만원 이상 고액이 되는 일은 거의 없다. 또 일선 범죄 수사에 바쁜 경찰이 검찰청에 과태료 체납자 감치까지 신청할 여력도 거의 없다고 한다. 결국 국세징수법에 따라 차량 등 재산을 압류하는 방안을 써야 한다. 하지만 “경찰이 서민을 상대로 과도하게 법 집행을 한다” “생계 수단인 차를 압류하면 뭘 먹고 사느냐” 같은 반발에 부딪힐 때가 많아 쉽지 않다고 한다.

과태료가 미납된 지자체가 압류한 차량도 폐차해 버리면 그만이다. 출고 11년이 넘은 차량은 ‘차령 초과 말소 제도’를 이용해 압류 상태에서도 폐차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과태료 기록은 남지만 폐차하거나 새 차를 구입하는 데도 지장이 없다.

누적 과태료 30만원 이상, 미납일 60일 이상이면 자동차 번호판을 압수하는 ‘영치’ 제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매년 수만 명인 과태료 체납자를 찾아가 번호판을 압수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한다. 경찰과 지자체가 합동 단속팀을 매년 운영하지만, 상습 체납자가 소재 불명일 때도 흔해 실효가 거의 없는 조치다.

전문가들은 “현행 제도는 과태료를 낸 사람만 바보가 되는 구조”라며 “범칙금 중심으로 반드시 필요한 단속만 하거나, 과태료 미납 시 자동차 등록을 취소하는 등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