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군의날 행사를 위한 집단 강하 연습 당시 일부 장병들이 군 수뇌부의 무리한 지시를 따르다 최소 9명이 골절과 슬개골 파열과 같은 중상을 입은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이들은 연습 강하 시 일렬 대오를 맞추기 위해 위험고도에서 ‘낙하산줄을 놓으라’는 명령을 따르다 부상을 당했다. 실제 공중침투에서는 낙하산 조종줄을 놓거나 200여명이 한꺼번에 낙하하는 경우가 없어 ‘보여주기식’ 행사를 위한 부상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장병은 부상으로 군을 떠나야 했다.
주간조선이 단독 입수한 2023년 9월 8일 자 ‘집단강하 훈련간 환자발생 원인분석/후속조치 계획’(작전참모처 작성)에 따르면 지난해 9월 7일 국군의날 행사를 위한 4회 차 집단강하 연습 도중 중상을 입은 ‘환자 현황’은 총 9명이다.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국방부로부터 입수한 이 자료에는 이들 ‘환자’의 소속이 ‘2특임대대’ 3명, ‘2신속대응사단’ 4명, ‘공군특수부대 2명’ 등으로 기재돼 있다.
집단 고공 강하 시범은 11주간 준비를 거친 200여명의 군인을 비행기에서 공중 투하시키면서 위력적인 군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준비하는 행사다. 작년의 경우 우천으로 이 행사가 취소됐지만 연습과정에서 부상사가 대거 발생하는 등 큰 대가를 치른 셈이다.
부상자들은 실제 전투와는 달리 공중에서 일렬로 ‘멋지게’ 떨어지기 위해 낙하산 조종줄을 놓았다. 조종줄을 놓으면 전체 낙하자 대열을 일자로 일정하게 유지 할 수 있다고 한다.
생명줄 같은 조종줄… “25초간 놓아라”
주간조선이 단독 입수한 또 다른 자료인 2023년 7월 13일 자 ‘건군 75주년 국군의날 집단강하 시범 준비계획(보고)’에 따르면 ‘행사기획단 지침’에는 △대규모 병력의 위력적인 집단강하로 적에게는 공포, 국민에게는 감동, 군에게는 자부심 선사’라고 기재되어 있다.
지침에는 또한 ‘△실제 공중침투와 동일한 방법으로 강하 실시(강하대형 유지 불필요, 낙하산 조정 가능)’라고 기재되어 있으나,다수의 증언에 따르면 이 같은 지침은 지켜지지 않았다. 군인들은 연습에서 실제 공중침투에는 없는 조종줄 놓기를 10초, 혹은 25초간 해야 했고 이때는 낙하산을 조종할 수 없었다.
부상자 A씨(30대)에 따르면 “일렬로 ‘멋지게’ 떨어지기 위해 조종줄을 놓는 것이 관행이다”라며 “1·2회 차에서는 조종줄을 놓지 않았지만 3회 차 연습부터 ‘강하 후 10초간 조종줄을 놓아라’라는 명령이 있어 우측 비골(발목) 골절 부상자가 1명 발생했다”고 밝혔다. A씨는 또 “4회 차 때는 돌풍이 심해 연습이 취소될 줄 알았는데, 그대로 진행됐고 오히려 시간을 늘려 ‘강하 후 25초간 조종줄을 놓아라’는 명령이 있었다”면서 “고속도로에서 운전자에게 핸들을 놓으라고 하고, 새의 날개를 꺾은 채 날도록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유했다. “너무 위험한 일이라 실제 공중침투에서는 절대 조종줄을 놓으면 안 된다. 그러나 훈련에 참여하는 특전사들은 강도 높은 임무를 목숨 바쳐 수행해온 사람들이다. 돌풍이 불고 신호가 지연된 날에도 이 같은 명령을 어기지 않았다.”
부상자 A씨는 이 같은 명령이 윗선의 욕심에서 기인됐다고 설명했다. “현장 통제자가 ‘군 통수권자 VIP에게 최대한 멋있고 강인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강하하는 걸 보니 안전 확보는 된 것 같은데 갓길로 움직이다 보니 공중에서 군기가 없어 보인다’라고 설명하며 조종줄을 놓으라고 명령했다”는 것이다. 부상자 A씨에 따르면 현장 통제자는 부상자 발생 이후에도 연습 현장 영상을 찍어 조종줄을 ‘잡은’ 인원을 지명하고 다수 앞에서 ‘왜 조종줄을 잡았냐’고 압박하기도 했다. 조종줄을 놓으라는 명령이 3회 차의 10초에서 4회 차의 25초로 늘어난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확인된 ‘9명’이라는 부상자 수치도 일부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 A씨와 마찬가지로 다리 부위 부상을 입은 B씨에 따르면 이 4회 차 연습 당시 “강하 신호가 평소보다 늦었고 평소 연습했던 곳과 다른 착지지역이었다”고 했다. 부상자를 포함한 이날 훈련 참가자 4명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날 최소 50명의 인원이 목표 지점이 아닌 격납고 지붕, 피뢰침, 철조망, 건물 테라스, 미군차량, 활주로 시멘트, 병역막사, 전봇대 등 위험지점에 비정상 착륙을 하면서 부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연습에 참여한 인원은 모두 138명이었다.
“연습 때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도…”
이 같은 대규모 사고가 난 이후에야 군 수뇌부는 ‘연습서 조종줄을 잡으라’고 지시를 번복했다. 사고가 발생한 4회 차 이후의 연습은 조종줄을 잡으며 비교적 안전하게 진행됐고, 올해 국군의날 연습에서도 조종줄을 놓으라는 명령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해 ‘집단강하 훈련간 환자발생 원인분석/후속조치 계획’에는 △조종줄을 놓으라는 명령이 원인이 되었다는 점과 △사고 이후 조종줄을 잡도록 명령을 번복했다는 내용이 생략돼 있다.
격파, 겨루기 등으로 이뤄진 지난해 국군의날 합동 태권도 시범 연습 과정에서도 다리 부위 부상자 다수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무릎 골절 사고를 당해 전역하게 된 김모 중사(20대)는 “물기가 있는 미끄러운 바닥에서 매트 등 안전장치 없이 3m 높이에서 착지하는 고난이도의 연습이 진행됐고 사고가 났다. 원래 행사 당일에도 매트 없이 시범이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군의날 행사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해야만 한다면 연습할 때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도 구비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군의날 행사 준비를 위해서는 특전사 등 각 군에서 소위 ‘에이스’가 차출돼 2~3개월간 훈련을 받게 된다. 앞서의 김모 중사는 “갈수록 행사 참여 인원이 늘어나고 있고, 특전사 등 에이스 인원이라면 거의 대부분 강제로 참여해야 한다. 군 간부 전역이 갈수록 늘어나는 상황에서 행사 준비로 유능한 인원까지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
부상자 중에는 최근까지도 여러 차례 수술과 재활치료를 받는 경우가 많다. 다리 부위 부상자인 앞서의 A씨는 사고 이후 자살 기도를 수차례 하고, 정신병동에 입원하기도 하는 등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도 받았다. “지금도 비행기 엔진 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나면 공포스럽다. 전동 킥보드 소리에도 놀란다. 비행기 특유의 가솔린 냄새가 있는데 잠을 자다가 그 냄새를 맡고 깨기도 한다.” A씨는 사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다 “지금도 말할 때 심장이 너무 떨린다”고 말해 인터뷰를 잠시 중단하기도 했다.
앞서의 부상자 B씨 역시 지금까지 재활치료를 받고 있으며 뛰다시피 빠르게 걸을 때마다 부상 부분이 저려오는 등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4회 차가 아닌 다른 회차의 집단 강하 훈련에서 다리 부위 부상을 당한 C씨는 최근 부상 부위 수술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간조선이 심층 인터뷰한 국군의날 부상자는 총 3명이다. 그중 2명은 군생활을 더 이상 이어나가지 못하고 전역하게 됐다. 이들은 모두 군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간직해왔던 20대에서 30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A씨는 기자에게 군에서 받은 표창장과 군대에서 찍은 사진 등을 보여주며 “돌아가신 부모님께서 군인을 너무 좋아하셔서 입대했다. 내가 가족의 자부심이라는 생각에 멋지게 행사에 임하려고 했었다”면서 사고 이후 겪었던 어처구니없는 일도 전했다. “사고 이후 환자 조사에서 ‘도보를 못할 정도거나 신체 일부가 10㎝ 이상 떨어진 것만 환자라고 인정하겠다’는 말을 들은 것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은 상태에서도 상사가 ‘너 내일 강하 때 뛸 수 있냐’고 묻더라. 자대 복귀를 결정하고 돌아가는 길에 눈물이 너무 많이 났다.” 30대 두 아이의 아빠인 그는 “지금은 (부상으로 인해) 아이 신발을 신겨 주지도 못하고, 몸을 씻겨주지도 못한다”고 몸 상태를 전했다. 마찬가지로 두 아이의 아빠인 20대 김모 중사는 “아직 무거운 걸 들지 못한다. 병원에서 뛰지 말라고 권한다. 재활치료를 계속 받고 있다. 아직 수술을 시작하지도 못한 부위도 많다. 몸 안 쓰고 평범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며 기술을 배우고 있다”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전했다.
지난 9월 29일 개혁신당 천하람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의하면 ‘2024년 이전 국군의날 행사 준비 및 당일 행사 진행 간 부상 사고 내역은 존안하고 있지 않다’고 돼 있다. 하지만 기록이 없다는 국방부의 답변과는 달리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자료가 공개됐으며, 지난 10월 1일 국방부 소속 한 공보장교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지난해 집단 강하 훈련에서) 부상을 당해 병원 진료를 받은 인원이 9명이고, 그중 3명이 특전사 대원”이라고 답하며 기록을 확인해줬다.
한 부상자의 경우 국방부 자료에 기재된 부상 정도가 실제 진단서와 비교해 축소돼 있기도 했는데 이 부상자는 “(원인 분석과 부상 정도 축소를 보고) 깜짝 놀랐다. 문제를 이런 식으로 은폐하려고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전했다.
국방부 “2024년 이전 행사 사고 내역 없다”
안종민 국가보훈행정사무소 행정사는 “국군의날 행사는 국방부 부대관리훈령에 따라 시행되는데 이 훈령에 따르면 7명 이상 중·경상자가 발생한 사고는 ‘극히 중한 사고’로 구분하고 지휘보고를 하도록 되어 있다. 국방기록관리훈령에 따르면 행정업무의 참고 또는 사실의 증명을 위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기록물에 해당하므로 최소 3년 이상 보존되어야 하는데 지난해 사고 내역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전했다.
천하람 의원은 주간조선에 “국군의날 시가행진은 원래 5년에 한 번씩 진행되었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2년 연속으로 대규모로 치러지고 있으며, 매년 이로 인한 중상자가 속출하고 있다”며 “국방부는 기존 관례를 어기면서 매년 대규모 행사를 개최하기 위해 행사와 관련된 사고와 부상자 현황을 축소·은폐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렇게까지 장병들의 안전을 희생하면서 대규모 행사를 매년 강행해야 하는지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국군의날 행사는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 취임 첫 해인 2022년부터 올해까지 2년 연속 대규모로 진행됐다. 국방부는 그 이유에 대해 “지난해 우천에 따라 국군의 충분한 위용 과시가 제한돼 올해 역시 대규모 행사를 계획했다”고 설명했다.